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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도 밤나무 물가에 있는 두 개의 성(城)장목면 구율포성 (舊栗浦城), 동부면 율포산성(栗浦山城)

예부터 외침을 대비해 만든 거제칠진은 필요에 따라 장소를 옮기기도 했다. 그래서 같은 지명이 중복될 경우 옛 구(舊)자를 붙여 지명을 구분한 사례가 있다.

조라(옥포)와 구조라(일운), 영등(학산)과, 구영등(장목), 율포(동부면)와 구율포 등이 그 지명이다.

조선시대 수군진이나 육군진이 옮겨가면서 예전의 지명을 그대로 가져갔는데, 구조라는 성종21년(1603) 현재의 옥포 북쪽 조라포로 조라진이 옮기면서 생긴 지명이고, 구영등은 인조 원년(1623년) 장목면 영등진이 둔덕면 학산(영등)으로 옮기면서 생긴 지명이다.

그리고 오늘 소개될 장목면 율천리의 구율포진성과 동부면 율포리에 있던 율포진, 그리고 율포진 뒷산에 쌓은 율포산성도 수군진인 율포진이 옮겨 가면서 생긴 지명 중 하나다.

특히 다른 지명은 진의 이동이 한 번인데 비해 율포진의 경우 여러 번 옮긴 기록이 전해진다.

기록에 따르면 문종 즉위 원년인 1450년 도체찰사 정분의 장계로 옥포와 구영등 사이에 목책을 세우게 되는데 율포진의 시초라 볼 수 있다.

이후 1664년(현종 5년)에는 동부면 율포리로 진을 옮겼다가 1688년(숙종14년)에 가라산 아래로, 또 1724년(경종 4년)에는 다시 장목면 율포(栗川)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장목면 율포를 구율포라하고 동부면 율포를 신율포라 불렀는데 지명이 혼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 장목면 율포는 뒷산의 지명과 앞 계천(溪川)의 지명을 따 율천이라 부르면서 현재까지 이어오고 있다.
거제지역 수군진이 이동한 시기는 모두 임진왜란 이후인데 이는 임진왜란 이후 부산을 중심으로 방어를 하던 경상우수영이 통영의 통제영 중심으로 방어를 한 것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임진왜란 전 거제 동쪽지역에는 영등포진(장목), 율포진(장목), 옥포진, 지세포진, 조라진(일운)으로 4개의 수군진이 있었지만, 이후 영등포진은 한산도와 견내량 인근인 둔덕면 학산으로 옮기게 되고 조라진은 옥포 인근으로, 또 율포진은 경상우수영이 있던 동부면 율포 지역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조라진을 제외한 두 곳은 거제 동북쪽 외해(外海)를 지키다 전략적으로 거제 서남쪽 내해(內海)를 지키기 위해 옮겨진 사례인 셈이다.

수군진의 이동은 임진왜란 전 육군만을 중요시 하던 조선의 군사체계가 임진왜란 이후 수군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옮겨진 사실을 반영하는 역사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206호 - 구율포성 (舊栗浦城)

구율포성은 장목면 연초면 명동마을에서 장목면 소재지로 가다 보면 만나는 율천리에 있다.

이 성은 동쪽 바다를 제외한 나머지 삼면(三面)이 산으로 둘러져 있어 바다에서 성을 확인하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다. 주민에 따르면 예전에는 율천내(川)가 바다와 접해 있을 정도로 바닷물이 마을 앞까지 들어왔다고 한다.

구율포성은 현재 민가와 경작지로 인해 대부분 훼손된 상태지만, 석벽의 잔존 형태 등을 보면 오량성이나 고현성과 같은 양식을 보이고 있어 조선 전기에 쌓은 성인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재 구율포성은 대부분 훼손돼 그 흔적만이 남아 있다. 성의 구조는 남북 양쪽에 반원형의 성문이 있었고, 성문 위에 몸을 숨겨 적을 공격할 수 있는 낮은 담(성가퀴)을 설치했다고 한다.

또 입구는 ‘ㄱ’자 모양의 옹성을 설치해 방어에 유리하도록 만들어졌지만 남쪽 성문만 겨우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주민들 말로는 동쪽과 서쪽에도 성문이 있었다고 하지만, 워낙 훼손이 심해 흔적을 확인할 길이 없다.
지난 1995년 동아대 박물관의 <거제성지 보고서>에 따르면 구율포성의 규모는 둘레 360m, 높이 3m, 폭 3.4m이다.

구율포성의 문화재 안내판에는 구율포성이 원래 외포 바닷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으로 전해지나, 이를 증명할 수 있는 기록은 없다고 돼 있다.

구율포성의 축조 시기는 규모나 형태, 축조 수법 등으로 미뤄 조선 성종(1470~1494)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고 있지만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다만 <신증동국여지승람(1530년) 거제현 관방편>에 “율포보는 현(고현성)의 동쪽 33리에 돌로 성을 쌓았는데 둘레는 900척이고, 높이는 13척이다. 성안에 샘 하나, 시내가 하나 있고 권관(조선시대 변방에 둔 종 9품 무관)을 두어 방어한다”는 기록이 있어 이 시기에 이미 구율포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율포보의 권관으로 임진왜란 당시 원균과 이순신 휘하의 장수로 이름을 떨쳤던 이영남(1563~1598) 장군이 있다.

또 구 율포성은 1592년 7월 15일(음력 6월 7일) 이순신이 이끄는 삼도수사(三道水使)의 연합함대가 거제도 율포만에서 부산으로 향하려던 일본 함대(대선 5척, 소선 2척)를 발견해, 대선 2척과 소선 1척을 불사르고, 나머지는 모두 붙잡은 율포해전(栗浦海戰)의 현장이기도 하다.

율포산성(栗浦山城)

1664년(현종 5년) 장목면에 있던 율포진이 동부면으로 옮겨지고 1724년(경종 4년)에는 다시 장목면 율포(栗川)로 돌아왔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이후에도 동부면 율포진은 방어진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1873년 지방지도에는 동부면 율포진의 진지도가 나타나 있다.

진지도에는 각종의 관아 건물이 그려져 있고 이 시기 설치된 포수청(砲手廳)도 눈에 띈다. 당시 이곳에 있던 전선에 딸린 군사는 한선기패관(翰船旗牌官) 5명, 도훈도(都訓導) 1명, 좌우포도(左右捕盜) 2명, 사부(射夫) 18명, 화포수(火砲手) 10명, 포수(砲手) 24명, 정수(碇手) 3명, 능로군(能櫓軍) 120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동부면 율포진에는 성이 없다고 전해지지만, 율포진 뒷산에는 ‘율포산성’이 있다. 율포산성은 동부면 거리에서 부춘고개를 넘어 율포고개에 인근 봉우리에 쌓은 테뫼식 석성이다.

경상우수영이었던 가배량과 가까운 곳에 있어 인근에 위치한 탑포산성과 함께 가배량진성의 방어성 역할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율포산성의 축조수법은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지만 만들어진 역사는 어느 기록에도 없다. 율포산성 아래에 있는 율포진 터에는 원래 성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율포산성과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는 것이 학계의 설명이다.

율포산성은 노자산 자락 294m 9부 능선(동부면 율포리 산23-3번지)에 위치해 있다. 성의 규모는 둘레 278m, 높이 2.7m, 폭 2.4m로 대부분 무너져 내려 흔적만 남은 상태다.

다만 율포산성은 어떤 형태로든 동부면의 율포진이나 가배량진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유적임은 분명하다.

주민들에 따르면 율포산성 안에는 철마(鐵馬)가있었고 가뭄 때 주민들이 성으로 올라와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참고문헌 <1995년 동아대 박물관 거제성지보고서>, <장목면지>, < 동부면지>,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연구원 고지도>, <거제고문헌총서1>,<거제시지>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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