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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만에 찾아온 손님원순련 /신현초교 교감

연말연시이다. 왠지 누군가가 날 찾아올 것만 같아 목을 쭉 빼고 창문을 바라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간 세월을 떠올려보면서 나도 몰래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는지 걸어온 1년이 뒤돌아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엔 나도 몰래 빙그레 미소가 지어지기도 하는 것은 아마도 계절 탓인 것 같다. 마지막 남은 한 장의 달력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러던 중 지난 토요일 저녁, 내 바램의 소원이 닿았는지 30년 만에 찾아온 손님이 있었다.말이 쉬워 30년이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뀐 3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 손님들의 모습 속에는 옛 그 얼굴이 그대로 숨어있었고, 그들을 보는 순간 30년 전 그들의 모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1979년 5월 나는 7년의 회사원 생활을 청산하고 가슴에만 그려온 교직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그 당시 초임교사의 나이는 대략 스물두어살 정도였는데, 나는 초임교사 치고는 꽤나 나이를 먹었고, 더구나 임산부의 몸으로 첫 발령을 받았으니 교장선생님과 직원 모두에게는 그렇게 반가운 직원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난 아이들이 오늘 30년 만에 찾아온 이 손님들이다.

나를 빨아들인 듯한 눈망울로 나를 쳐다보는 아이들을 보는 순간 현기증이 나는 것 같은 두려움이 앞섰다. 더구나,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나가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밀려오는 학교업무는나를 지치게 했고,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회사원 생활과 전혀 다른 교직원과의 생활이었다. 이런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만난 우리 반 아이들은 모두 60명이 넘었는데 나는 이 아이들을 책임지는 담임교사로서의 자질을 전혀 갖추지 못한 채로 그렇게 하루하루를 담임교사로서의 역할을 꾸려 가고 있었다.

그렇게 첫해를 보내고 났을 때, 교장선생님께선 그 아이들을 그대로 연임하여 4학년 담임을 하라는 분부를 내리셨다. 뿐만 아니라, 다음해는 5학년을, 그 다음 해는 6학년을 담임하게 하여 나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처음 만났던 그 학년의 아이들을 4년간 연임 담임을 하여 졸업을 시키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아이들은 새 학년이 시작되면 담임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있다. 해마다 다양한 소양을 갖춘 선생님을 만나서 그 선생님만의 또 다른 교육적 가치를 배워가며 행복하게 보낼 꿈에 부풀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당시엔 왜 이런 일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그 아이들은 초등학교 4년 동안 똑 같은 담임을 4년이나 만나게 된 것이다. 사실 초임 4년을 지나는 동안에도 나는 좀 새로운 맛이 없긴 하지만 4년간의 담임에 대하여 별다른 반항 없이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열심히 담임역할을 완수했다. 그러나 내 교육경력이 쌓여갈수록 그 아이들에 대한 죄스러움이 마음을 괴롭혔다. 그 귀한 초등학교 생활을 그 아이들은 재미없는, 똑 같은 담임을 4년이나 보아야 하는 괴로움을 당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4년을 맡아오다 졸업을 앞둔 2월이 되었을 때부터 내 가슴속에는 이 아이들이 구석구석 꽉 차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들을 졸업시킬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누구네 집은 할머니가 편찮으시고, 누구네 집은 아버지가 약주만 드시면 학교로 찾아와 아이를 내 놓으라고 야단을 치시고, 누구는 씩씩하게 나서는 일은 없어도 책임감은 대단하고....... .
나는 4년을 그 아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그 아이들은 물론 아버지, 어머니, 그리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까지도 다 꿰뚫고 있었다. 나 뿐 만이 아니다. 아이들과 학부모들도 우리집 일을 훤히 알고 있었다. 4년을 지내는 동안 3학년 담임 때엔 장남을 낳았고, 5학년 담임 때는 둘째인 딸아이를 낳아서 제자들은 아기를 낳을 때마다 수시로 우리 집을 드나들며 우리 아이의 얼굴을 만져보기도 하고, 기저귀를 접어주기도 했다. 이런 아이들이 바로 오늘 나를 찾아온 이 손님들이다.

이들이 30년을 지내는 동안 마흔넷이라는 불혹의 나이을 넘기고 그 당시의 담임을 잊지 않고 이 바쁜 연말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제자들은 줄을 서서 큰절을 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줄 때 우리도 몰래 펑펑 눈물을 쏟았다. 왜 눈물이 그렇게 흘렀는지 나도 모른다. 밤이 깊어지는 줄도 모르고 우리는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야기의 내용은 자연히 30년 전의 그 시절로 돌아갔다. 제자들은 한결같이 그 부족했던 시절이 재미있었다고 했다. 어떤 제자는 봄 소풍 때 역할극을 할 때 찍었던 사진을 갖고 와 친구들을 웃기기도 했고, 어떤 제자는 자신이 그렇게 같이 짝을 하고 싶었던 친구를 한 번도 자기와 함께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노라고 투정을 부렸다.

제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의 얼굴이 갑자기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잊고 있었던 지나간 30년 전의 채 여물지 못한 나의 부족한 모습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지도하는 바른 길을 모른 채 부딪히기도 하고, 돌아가기도 하고, 때론 걸었던 길을 다시 걸어가며 시간을 허비하기도 하고 과오를 저지른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야말로 내 시행착오로 가르친 아이들이 바로 이 제자들이 아닌가?

그런데도 제자들은 4년간이나 저지른 담임선생님의 그 허물을 덮어두고 여인으로서의 무르익은 마흔 넷 절정의 나이를 유감없이 발휘하며 정말 의젓한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들은 내가 가장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도 1년도 아니고. 4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했던 내 잘못을 닮지 않고 반듯하고 아름다운 가정주부로, 건강한 직장인으로, 시부모님을 잘 모시는 귀한 며느리로 우리 사회를 든든하게 지키는 귀한 사람이 되어 내 앞에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이날 나는 제자들에게 내 부족함과, 좋은 담임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 것을 진심으로 사과했다. 그런데도 이렇게 반둣하게 잘 자라 내 앞에 찾아온 사실에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전했다.

세월이 가는 길목에서 나를 뒤돌아보아야 하는 시점이다.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들을 찾아서 안부 전화도 해보자. 무엇보다도 삶의 과정 중 내 부족함으로 인해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던 시린 기억들을 찾아내어 미안하다는 말 한 번 쯤 전해보자. 이 해가 다 가기 전에.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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