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기 힘든데 기초생활지원금 지급이 중단된 게 원망스럽다. 하느님께 죄송하다. 복지과가 뭐하는 곳인지. 법이 사람을 위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사람이 법을 만드는데 이럴 수 있나.”

지난해 8월 거제시청 화단에서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은 어느 할머니의 유서 중 일부다.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 부양의무자 규정의 존폐논란을 불러일으킨 사건이었다. 부양의무자인 딸과 사위의 소득을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실제 부양하지 못하거나 안하는 부양의무자로 인해 수급대상에서 제외되고, 결국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경우에 대한 구제책 마련과 관련 법령의 개정도 논의되었다.

실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득이 기초생계비이하지만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가 되지 못한 경우는 177만명에 이른다. 또한, 국민권익위원회에 지난해 7월에서 9월 사이에만 접수된 기초생활수급자 관련 민원은 539건이었고, 그 중 부양의무를 다하지 않는 의무자 때문에 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민원이 123건(22.8%)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접수된 사례 한 가지만 살펴보자.
민원을 제기한 고등학생은 어머니, 여동생과 함께 교회에서 6년째 생활하고 있다. 어머니는 건강이 나빠 경제활동을 할 수 없어 이들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왔다. 그러다 민원인의 아버지가 일용근로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자격이 중지됐다. 그러나, 민원인의 아버지는 이혼 후 재혼하여 자녀들에대한 부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요지다.

결국 위와 같은 사례에 처한 사람들(대부분은 노인들과 어린이들)은 사회복지단체나 이웃, 독지가들의 도움을 기대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10조)다는 헌법상의 권리가 사문화(死文化)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책이 절실하다.

또한, 이들에 대한 재원조달과 제도의 개선은 다른 복지정책과 달리-예컨대 하우스푸어에 대한 지원책-그야말로 ‘기초생활’에 관한 것임을 명심해야한다. 불요불급(不要不急)의 예산을 줄이고, 담세(擔稅)능력이 있는 계층에 대한 증세(增稅)를 통해서 재원을 확보하는 것도 더 이상 늦출 수 없는 문제다.
우리는 지난 대통령선거과정에서 그 어느 때보다 복지에 관한 공약이 쏟아졌고, 논쟁도 많았음을 기억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이 그 공약을 믿고 투표장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새 정부가 출범한 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공약들이 실행가능하지 않다거나 예산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재원조달방법도 없이 공약을 내세웠다면 그야말로 ‘공약(空約)’을 한 것이다.

복지공약의 후퇴를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옹호의 목소리와 ‘선거사기’에 해당한다는 혹독한 비판이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이 사임했다. 그 속사정이야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국민생활과 직결된 중요한 정책에 대하여 ‘엇박자’가 있음이 틀림없고, 국민에 대한 해명과 설득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이제 정기국회가 열리고 치열한 공방이 오갈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또 수많은 복지공약들이 난무할 것도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정치적 공방도 좋고, 복지공약도 좋다. 그러나, 최소한 경제적,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에 대한 실질적인 복지는 멈추지 말아야한다는 것이 국민의 뜻임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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