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초, ‘엉덩이’ ‘그랩’ 등의 용어가 온 국민의 가십거리로 떠들썩했지만 몇 달 지난 지금은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커텐 너머에서 셀프 가택연금을 즐기고(?) 있는 주인공은 뜨거웠던 냄비의 열기가 더 내려갈 때까지 기다고 있는 모양새다.

아직도 성적 기능의 유효함을 확인하고자 몸부림치는 초로의 사내, ‘윤’의 욕정은 개인의 욕정이자 그 개인들이 모인 남성집단이 공유하는 욕망이 아닐까. 박범신 원작을 각색하여 만든 영화 ‘은교’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넌픽션인 ‘윤’의 마조히즘과 픽션인 ‘이적요’의 그것은 분명 이분화 될 수 없는 동일성으로 읽힐 따름이다.

‘은교’는 부모 자식이 함께 관람하기에 부담스러운 ‘19금’용이다. 소설가는 칠십 대 문단의 거두 ‘이적요’의 심리묘사를 세련된 문장으로, 전지적 시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근육들이 빠져나간 쭈글쭈글한 몸은 검버섯의 비늘을 군데군데 달고 바야흐로 산화를 거듭하고 있었다. 탱탱했던 어깨와 팔은 살이 닿으면서 텔레텔레 해졌고 가슴은 쭈글어들었고 배는 나와 있었다. 그리고 나의 페니스는 죽어 부식하기 시작한 해삼처럼 늘어져있었다.(...) 그것은 동굴보다 어둡고 시든풀처럼 무력해 보였다.” 영화 감독은 원작의 본질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 뷰파인더를 이적요(박해일 분)의 감성적인 감정의 흐름에 맞추고 있다.

시인은 불온한 시대의 리얼리즘과 서정시를 동시에 성취했다는 호평으로 인기를 한 몸에 받는다. 그러나 문학적 능력으로 막아낼 수 없는 것이 노화현상이다. 세월이 성적욕망마저 감퇴시킨 지 오래된 어느 날, 눈앞에 허벅지를 훤히 드러낸 소녀가 나타난다. 고목은 감로수를 들이킨 듯 신선한 충격을 경험한다.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감독은 아직 솜털이 보송보송한 열 일곱살에게 섹슈얼리티를 입힌다. 소녀가 입은 옷은 주로 교복과 핫팬츠인데, 교복착용은 신분대용이고 평상시는 소녀에게 줄곧 속살이 다 보이는 옷만 입혀놓는다. 폭우에 브라우스를 흠씬 젖게 하여 노인의 집으로 찾아들게 하고, 노인의 이불 속에서 소녀를 잠들게 한다.

무릇 감독의 의도는 은교의 천진성과 노인의 늦사랑을 통속적인 범위를 벗어나, 범상치 않은 예술성으로 형상화 하려고 했을 것이다. 점진적인 노화현상에 떠라 시나브로 시적 언어 밖으로 밀려나버린 ‘사랑’이란 것에 주목하고자 애를 쓴 흔적이 역역하다.

노인 외의 또 다른 남자(시인의 제자)가 등장하는 데 이 두 남자는 소녀를 마음껏 취한다. 노인도 소녀를 탐하고, 스승의 제자 청년 또한 은교를 탐한다. 스승은 상상 속에서 은교의 몸 속으로 들어가 놀고, 제자는 실제 소녀의 배 위에서 애욕을 즐긴다. 늙은이는 잃어버린 젊음을, 젊은이는 가질 수 없는 스승의 능력 대신 소녀를 가짐으로써 결핍을 채운다.

이를 두고 혹자들은 ‘서로 사랑하지만 가질 수 없는 젊음과 예술성을 질투한 갈망’이라고들 미화했다. 하지만 두 남성에 의해 발가벗겨진 소녀는 주제를 감당하기엔 너무 왜소하고 민망스러움으로 비친다. 소녀는 감독이 요구하는 대로 꽤 긴 정사를 치루고, 숨을 할딱이면서 “여고생이 왜 섹스를 하는지 아세요? 고독해서예요”라고 깔깔거린다.

기실 소설이든 영화든 모두 예술을 통해 사랑에 대한 문제를 보다 신선하게 풀어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여고생으로 하여금 두 남자와 성적으로 얽히게 만든 영화는 여성 관객에겐 불쾌감을 안겨준다. 우월적인 지위를 사회화해온 남성이 여성을 신체적·정신적·성적으로 학대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다.
원작에 감동적인 구절이 있다면, “너희 젊음이 너희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얻은 벌이 아니다.”이다. 영화가 이 점을 주목했더라면 관객들의 공감을 사지 않았을까.

이미 미국 코미디 방송 프로그램 패러디용으로까지 쓰여 미국인 내지 재외교포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는 '윤'의 사건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떨까? '은교' 수위를 능가할 공산이 크다.
추척컨대 딸또래 여우(女優)의 엉덩이를 ‘그랩’ 하는 정도가 아니라 노팬티 차림으로, 국민이 다 아는 사실(성관계를 요구했다는 피해여성의 진술, 경향신문기사 참조)에 뷰파인더를 맞출 것이다. 창작주체와 관객을 이어주는 눈요기꺼리로, 그 어떤 형식으로든 정사장면을 넣을지 모른다. 물론 “고위공직자 성추행의 언저리에 드리워진 얼룩을 탐색”한다는 합리성을 주장하겠지만 작품성 보다는 관객몰이가 우선인 상술은 19금 코드로써 남성 욕망기제에 국한하리라.

시대마다 표현에 제한을 두는 잣대는 완화되고 있으며, 오늘날을 대표하는 19금 문화콘텐츠는 발전하고 있다. 성적코드를 빼놓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과감해진 추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대통령 방미 중 벌어진 국기문란행위 사건에 흥미와 상술이 앞선다면 곤란하다.
법 보다 영화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이 문제를 점검해 보면 좋겠다. 성충동에서 야기된 권력형 범죄의 유형을 짚어보고 덧붙여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힘센 자가 약한 자를 함부로 해도 된다는 의식의 비참한 말로에 초점을 맞출 때 오히려 흥행에 성공하지 않을까.

'윤'의 사건은 식은 냄비 속에서 꺼내 재론되어야 한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