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해 전에 도쿄에 파견근무를 하고 있던 친구의 초대로 일본에 간 적이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 당시도 나는 소위 ‘골초’였다. 친구가 머물던 아파트 거실에서 여느 때처럼 끽연을 위해 담배를 물었을 때 친구는 정색을 하며 말렸다. 이유인즉 자기소유의 아파트 안에서도 담배를 피워서는 안 되고, 아파트 단지 내 흡연구역에서 피워야한다는 것이다. 실제 아파트 단지 내 구석에 마련된 흡연구역에 가보니 나 같은 처지의 애연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격리된 전염병환자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2013년 대한민국! 나도 이제 집안에서 담배를 피우기 힘들게 됐다. 딸들의 눈치와 핍박(?)으로 베란다에서도 피우지 못하는 상황이다. 오늘 아침에도 아파트 게시판에 붙은 실내에서의 흡연을 자제해 달라는 협조문을 보며 출근했다. 저녁 술자리에는 100평방미터 이상의 식당이라 담배를 피울 수 없었다.
대도시의 경우 곳곳에 금연거리가 생겼고, 공공시설 등 많은 건물이 금연건물로 분류되어 이제 애연가들은 ‘구석’을 찾아야하고, 범죄자인양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야하는 신세가 되었다.

담배-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자신뿐만 아니라 간접흡연으로 인해 타인에게도 폐를 끼치는 백해무익의 물질!- 이렇게 담뱃갑에 적힌 문구처럼 규정지어도 될까? 나 자신을 비롯한 흡연자들을 옹호할 의도는 전혀 없다. 자신을 위해서나 주위 사람들을 위해서나 금연하는 게 좋다는 것을 모를 리도 없다.
다만, 흡연이 불법이 아니고 국가가 독점으로 국민을 상대로 담배판매를 하고 있는 현실을 인정한다면 흡연자들(담배 구매자들)로 인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벌어들이는 수입과 그것의 사용처, 담배값 인상의 파급효과 등 그 뒷면에 숨어있는 불편한 진실도 살펴 볼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정부는 국민건강진흥법을 통해 담뱃값을 단계적으로 인상시켜 보건복지와 국민건강보험의 재정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다는 정책이지만 지금까지 담배소비로 얻은 세수와 그 사용처를 밝히는 것은 꺼려왔다.
성인남자기준으로 약 40%에 달하는 흡연자도 국민의 일부이고, 그들로부터 나온 돈이라면 그들을 위한 금연정책에 우선적으로 사용되어져야 함이 타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6년의 통계를 보면 담배세수 1조3천억 중 금연을 위해 사용된 비용은 205억원 정도로 약 1.6%에 불과했다. 지금도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또한, 금연건물의 경우도 100평방미터 미만의 소규모식당이나 주점이 간접흡연의 위험이 훨씬 높은데도 현재로선 규제대상이 아니다. 이것 역시 선후가 뒤바뀐 것 아닌가 싶다.
정부가 금연정책으로 항상 꺼내는 카드는 담뱃값인상이었다. 그러나, 담배가격의 인상은 흡연율을 줄이는 쉬운 정책이긴 하지만 한편으론 소득격차간 건강불균형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담뱃값 인상을 통한 흡연율 감소에 관한 2005년 통계를 보면 월소득 100만원 미만의 계층은 약 9.5% 감소한 반면 월소득 400만원 이상 계층은 약 13.2%로 나타났다

이는 저소득층의 경우 금연보다는 더 값싸고 질은 좋지 않은 담배로 대체한다는 결론이다. 그 결과 저소득 흡연자들의 건강은 더욱 악화되고 더 나아가면 사회계층간 건강수준의 불평등을 초래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서울대 의대 김용익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하루 평균 타르 흡입량이 월소득 360만원이상 소득계층에 비해 200만원 미만의 저소득층이 약 2.63mg 더 많고, 폐암으로 인한 사망위험도 저소득층이 약 1.47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흡연자들에 대한 단속과 담뱃값의 인상이 주된 골자인 금연정책은 일시적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비흡연자들의 권리도 소중하지만 흡연자들을 위한 금연정책에 예산을 비롯한 실질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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