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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이라는 담론옥문석 /시인, 거경문학회 회원

ㅇ형.
1998년 2월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초 대한민국 건국이 친일파 주도 아래 이루어졌다면서 “대한민국은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졌다"고 말했으며, 노무현 대통령은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가장 감동적으로 읽었다면서 취임사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는 불의(不義)가 정의(正義)를 눌러온 역사라고 매도(양동안, 오인환의 이승만의 삶과 국가)했습니다.

이같이 한나라의 수장이 가지고 있는 역사인식이 우리사회를 이분법 사회의 블랙홀로 빠지게 하는 것입니다. 하기사 조선조 말엽, 그리고 해방공간에서 우리는 역사자료를 통해 이분법으로 국론이 분열되고 끝없는 소모전을 펼쳐온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기도 합니다. 조선조 말엽의 이하응과 민비의 피비린내 나는 권력다툼으로써 이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하는 불운을 맞게 된 것 아닙니까?

ㅇ형.
다음으로 식민지가 되고 난 후에 독립운동은 또 어땠습니까? 무슨 파벌은 그리 많은지. 수많은 파벌로 해서 임시정부는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합니다. 연안파니 무슨 국내파니 우리가 익히 아는 파벌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여기에는 세계사적 흐름도 한 요인이 되었겠죠. 당시에는 사회주의가 유토피아인양 지식인 사회에서 회자되기도 했죠. 그러나 사회주의에 빠져있던 그들은 북으로 가서 거개가 숙청의 칼바람에 넘어졌죠. 어찌보면 미몽의 최후이겠죠.공산주의자도 아닌 최승희는 남편 안막을 따라 북에 갔다가 숙청되고 말죠.

프랑스 드골의 임정이 해방군의 자격으로 그의 조국으로 입국합니다. 이들은 이 같은 힘으로 나치청산을 주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 연합군은 내전을 우려해 군정을 계획했으나, 드골은 각 지역의 레지스탕스 세력이 해방공간에서 행정권을 먼저 접수했고, 드골도 치열한 교전중인데도 귀국해서 프랑스 사람이 프랑스를 구원한 것처럼 상징효과를 과시함으로써 연합군은 군정을 포기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했죠. 임정은 미국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했고, 이렇다 할 전투부대도 없었으니 참전의 기회도 갖지 못했죠. 분열의 역사, 결말은 분단이라는 한스러운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ㅇ형.
이런 형국이니 친일 문제가 제대로 정리가 되겠습니까. 해방군으로 당당하게 섰다면 분단이 없었을 것이며, 친일이라는 덧도 말끔히 거둬냈겠죠. 프랑스의 경우 누가 보아도 나치에 부역한 것이 싑게 드러나게 돼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거의 40여년이고 프랑스는 나치 점령이 4년2개월(1940.6-1944.8)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승만이 “왜적 침략이 길었기 때문에 누가 친일파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다 친일파일 것이다. 3천만이 다 친일파일 것이다. 옥중에 있는 자, 해외에 있는 자 외에는 친일파를 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지적했듯이 뚜렷한 친일행적이 드러나지 않은 수많은 사람을 상대로 친일파 여부를 구분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문제가 내포되어 있었을 것입니다."한반도 안에서 살고 있는 한 일본 총독부에 세금을 내고, 각종 법규를 지켜야 하는 등 기본적인 생활권 안에서의 일상생활도 친일행위 법주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물론 일본의 침략 논리 등을 찬양하고, 글을 쓴 능동적 친일파는 누가 봐도 처벌대상이었다"고 임종국은 지적하고 있습니다.

ㅇ형.
그리고 윤해동(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은 “친일파 문제를 재구성하는 것이 시급하다. 지금은 막연하게 도덕적으로만 재단되고 있다.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활동했는가에 대해서는 거의 맹목적인 평가만 있는 실정이다"라고 했습니다.

해방공간에서 미군정이 대한민국 건국을 위해 활용했던 인사에 대해서, 또 이승만 정권에서 대한민국 초석을 놓던 인사, 창군 과정에서 군출신(일본육사, 만주사관학교) 인사들, 6.25전쟁때 이들의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조명한 적이 있었던가. 막연히 친일이라는 덫을 씌워 매도하기만 바빴던 게 우리 현실 아닙니까. 또 북한에서는 친일 청산이 잘되어서 국가 정체성이 확립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허구라는 사실은 왜 외면하는지. 80년대 대학가, 90년대 이후 중고교에는 ‘북한에서는 철저히 친일파를 청산했다’고 금성출판사판 고교 한국근현대사에 게재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류석춘(연세대교수), 김광동(나라정책연구원)은 북한이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했다는 논리는 허구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친일파 청산은 자의적이었다. 일제에 협력한 사실이 있어도 공산정권에 적극협력하거나 필요한 능력이 있다면 발탁했다”고 지적합니다. 부주석이었던 김영주(헌병보조원), 인민군 공군사령관 이활(나고야항공학교 출신)등 여러 명이 북한 지도부에 주요인사로 참여했다고 합니다.

ㅇ형.
지금 대한민국은 이분법적 사고가 너무 팽배합니다. 아니면 말고, 그리고 완장문화의 망령이 어른거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본보기가 대한민국 국회 같습니다. 언제까지 물고 뜯고 싸울 것인지 참 남새스럽습니다. 이에 뒤질새라 거제시에서는 시의원과 시민단체가 친일이라는 낡은 프레임에 갇혀 뒤엉켜 뒹굴고 있습니다. 지금도 일부단체는 시민들을 이분법으로 편가르기에 혈안이 되고 있습니다. 법원의 판결을 뒤엎겠다고. 시민을 볼모로 서명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김백일 장군 동상 철거를 위하여. 이게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시민 정신입니까.

개입과 철회, 지지와 비난을 반복하기보다는 더디더라도 자기 확신의 벽돌을 제조하는 자세가 더 중요한 시대정신이 아닐까요. 우리나라처럼 분단으로 인한 백척간두의 현실에서 찢고 분열해서 얻는 게 무엇이겠습니까. 적전분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습니까.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 더는 이 나라가 조각나는 역사를 잉태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또한 역사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거제 하늘에 떠도는 이분법적 망령이 사라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역류는 꼭 사고를 탄생시키는 게 만고의 진리입니다. 역사는 흐르지, 멈추지 않습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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