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은 우리의 교육관을 아주 긍정적으로 본다. "한국교실처럼 디지털 혁명 일으켜야 한다"는 지난 6일의 발언이 있기 전(09년 3월)에도 "한국 아이들은 미국 아이들보다 학교에서 보내는 시간이 1개월 정도 더 많다. 21세기 교육의 중요성을 고려해 보았을 때, 미국 아이들 또한 그렇게 해야한다."고 극찬한 적도 있다.

그런데 막상 우리 국민 대다수는 우리교육의 위기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 4월17일부터 30일까지 전국교직원 노동조합 부설 참교육연구소가 전국 초중등교사(1463명), 중고등학생(1154명), 초중등학부모(1250명)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는데, 이들 80%가 공교육 붕괴에 따른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것이다.

입시제도에 포섭된 학교나 부모가 아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미국대통령의 역설(力說)은 역설(逆說)아닐 수 없다.
기실 학생들의 인생 등급은 졸업식장에서부터 매겨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들이 경험한 일반적인 경우를 보자. 학교측은 학생들의 성적 향상을 위해 이러한 저러한 방법으로 노력하였다는 학사보고를 서두에 넣는다. 우수한 대학교 진학률상승을 모교의 최대 자랑거리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소위 ‘SKY’라 불리는 명문대학에 진학한 학생 이름은 이미 현수막에 큼직하게 새겨져 광고를 하였고, 이 학생이 주인공이 되어 식이 진행된다.

졸업장은 회장이 대표로 나가 받는다. “학생회장 OOO 학생은 XX대학교 ○○과에 합격하였습니다.” 학생대표의 성적을 사회를 맡은 교사가 마이크에 대고 공개를 하고, 곧 우등상 수여가 이어진다. 사회자는 ○상을 받는 A학생은 ‘XX대학교 ○○학과’에, ㄴ상을 받는 B학생은 ‘XX대학교 의대’에 합격했다는 멘트를 달아준다. 상장 수여자가 성적이 안 좋아 진학에 실패했을 경우에는 이에 대한 멘트가 생략된다. 학생들은 획일화된 기준이 부여하는 점수를 바탕으로 줄이 세워지고, 이 서열에 따라 부모들까지도 위화감이 조성된다.

고교 졸업식은 초중고 모든 과정의 종(終)이면서 새로운 단계의 시(始)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졸업생에게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다. 학교측은 학생들이 모두 새 희망을 안고 교문을 나갈 수 있도록, 또한 훗날 가장 흐뭇한 추억이 될 수 있도록 최대한 신경을 써야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졸업식은 대부분 ‘수능 잘 본 학생 찬양궐기대회’를 연상하게 하고, 보통이하의 성적을 낸 학생들을 우수한 학생들의 성장을 축하하는 들러리로 만들어 버린다.

오바마는 한국의 교육에 부러움을 나타냈으나 나는 오늘, 미국 고교 졸업식을 접하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우등생과 열등생이 구분되는 행사가 아닌, 개인의 존엄성을 염두에 둔 기획이 참신했기 때문이다.
졸업식은 전날 밤부터 시작되었다. 참석을 요구하는 연락을 받고 부모들이 학교 강당에 모여든다. 유월의 신록 속에서 보랏빛 라일락이 돋보이고, 그 은은한 향내가 축제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시간대였다. 졸업생들이 한 사람씩 무대 위로 등장하면 참석한 하객들이 우레와 같은 함성을 폭죽처럼 터뜨린다. 이 요란한 환영은 새로운 시작을 격려하고 축하하는 의미다.

실내를 밝히던 불이 소등되자 천정에서 영상화면이 내려오고, 졸업생들 모습이 차례대로 나타났다. 그들은 학창시절의 즐거웠던 추억, 존경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헌사, 부모님,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 평소에 가졌던 포부를 밝혔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류의 마무리 멘트에 감격한 부모들이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미리 써 액자에 넣어둔 친필 편지는 낭송직후 부모에 전달되는데, 알고보니 전야제는 학생들이 부모와 스승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만든 자리였다.

다음날 본격 졸업식이 이어졌다. 푸른빛 가운을 입은 학생들이 강당 출구에서 한 사람 한 사람 스텝에 맞춰 입장을 한다. 마치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양새다. 이때 하객들은 또다시 개성 있는 함성과 박수로써 그들을 맞아준다.

알파벳 순으로 이름이 호명되면 학생은 앞으로 나가고, 선생님으로부터 직접 졸업장을 전달 받는다. 두 사람이 깊이 포옹하는데 스승은 제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격려의 메시지를 잊지 않는다. 재학생 대표 누구누구 이하 몇 명, 이런 식으로 이름 한번 불리지 않고 졸업장을 단체로 받은, 우리와는 대조적인 장면이다.

가족 인원수대로 마련된 좌석 끝에 학생 이름이 적힌 표지가 있고, 거기에 장미와 국한 송이가 꽂혀 있다. 이 선물은 학교에서 준비한 것이며 하객은 따로 꽃다발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권위와 겉치레를 일체 배제한, 오직 졸업생 모두를 알뜰하게 챙기는데 주력하고 있었다.

한국의 졸업생들은 식이 끝나면 가장 먼저 교복을 불태우거나 밀가루 폭탄을 쏘아댄다. 재학기간 내내 누적된 억압과 분노를 그런 식으로든 자신들의 졸업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모습이다. 이는 교복이 은유하는 수능점수라는 억압적인 코드에 대해 밀가루를 덧칠함으로써 그동안 숨죽이고 억눌렸던 답답한 마음을 해소하고 싶은 심리의 반영일 것이다.

우리교육의 겉만 본 오바마 대통령의 칭찬처럼 나 역시 미국교육의 단면만 본 부러움일지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적 위주’(과거 결과)가 아닌 ‘사람위주’(가능성)로 진행되는 졸업식은 아이들에게, 보다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는 사실이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