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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너머, 찬란한 슬픔의 봄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언어로 개념화 할 수 없는 벚꽃의 절정을 보며 나는 “봄이 미쳤다”고 중얼거렸다. 바람결에 지리멸렬 흩어지는 낙화를 맞으며 조로인생을 절감 했다. 생성과 소멸이 구획되지 않은 공간에서 끊임없이 진행되는 꽃잎의 풍장(風葬). 경이로운 장면 앞에선 환희보다 가슴 먹먹한 느낌을 받곤 하는, 이런 감정의 극대화 위해 “찬란한 슬픔”이란 표현이 있다.

‘찬란한 슬픔’은 김영랑의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에 나오는 시적 기법이다. 시인은 이 시에서 짙고 섬세한 서정성을 바탕으로 하여 역설적 표현의 진수를 보여준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실 슬픔이란 감정은 찬란함으로 수식될 수 없다. 그러나 시인은 '찬란'이란 밝은 어감의 단어에 '슬픔'이란 어두운 단어를 나란히 배치하여 생사의 아이러니를 돋보이게 한다.

겉으로 드러난 비논리적 표현으로 현실을 깊이있게 나타내는, 이 모순형용으로 근일에 이슈되고 있는 남북한 실정을 직시해 본다.
올해는 벚꽃송이가 유난히 탐스러웠고 도처에서 축제분위기가 요란했었다. 때를 같이하여 북쪽에서도 봄꽃을 피웠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름하여 ‘무수단’, 탱크에 실려 진군하는 핵무기의 붉은 탄두 떼가 내 눈에 전쟁꽃으로 보였다. 버턴만 누르면 봉오리가 만개(전쟁발발)할 것 같은, 그 끔찍한 질서의 화려함 이면에서 ‘찬란한 슬픔’을 보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앵무새처럼 남한을 향해 울어대는 북한 아나운서들 또한 역설적 인물이다. 그들의 음성은 타고난 천성(天聲)이 아니다. 최고의 대우를 보장받는다는 지위만큼 목소리는 당국에 의해 철저하게 길들여지고 학습된 가성이다. “씨도 없이 태워버리는 복수의 불바다” “청와대가 박살나고 서울이 불바다 천지” “분노에 치를 떨며 복수의 피를 끓이고”.

과장된 억양과 말투로서 남쪽 협박에 일생을 소모하는 이들은 오늘도 조선중앙TV 방송을 통해 ‘어두(語頭)’ ‘어미(語尾)’에 독기를 실어 침략조 내용을 쏟아내고 있다. “남조썬에서는 도옥-수리 전쟁연습의 부울-장난이 계속되고 있으며 미국과 괴뢰호 전광들은 우우리의 군사적 대으응조치를 구씰로 부욱침전쟁 도발채액동에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따아.”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르몽드(Le Monde)는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민중을 방치한 채 전쟁준비에 혈안이 되어있는 김정은을 이렇게 표현한다. “늦깎이 소년이 한 손에 핵무기 버튼을 쥔 채 사춘기적 도발을 일삼고 있다.” 세계는, 주체사상이란 미명하에 저지르는 그의 짓을 ‘사이코(psycho) 드라마’로 평가하고 있다. 도대체 그 무슨 이념이 젊은 그로 하여금 살상과 폭격을 '정당화'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

어떤 이유이서든 전쟁의 미학이란 있을 수 없다. 전쟁을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경우는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기실 흥미와 감동을 주는 전쟁소설은 독자들의 인기를 차지하고 있다. 영화로도 재작된 세계1·2차 대전, 태평양 전쟁, 베트남 전쟁, 한반도의 동족상잔 등, 이들 작품들은 대개 전쟁의 내면화 과정에서 전쟁에 대한 인간의 모순된 양상을 보여준다. 작가들은 작품에다 전쟁의 신과 미의 여신이 공존하는 원형의 틀 속에서 인간적인 주인공과 비인간적인 타자를 대치시킨다. 피아(彼我)식별 과정에 사랑, 민족애, 전우애 등이 개입되고 이러한 장치로써 인간의 유일성 내지 존엄성, 삶의 궁극적인 목표를 구현하고 있다.

작가는 전쟁의 끔찍함과 전쟁의 일상성을 받아들이는 입장을 동시에 취한다. 전장터의 죽음과 파괴를 보다 리얼하게 입증하면서도 전쟁 수행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들의 명분에 동조하지 않는다. 전쟁이란 지구상에서 영원히 배척해야 하는 이유를 말하기 위해서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북쪽의 김씨3대 왕조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이다. 지구상에서 유일한 세습정치로써 국가 생존 목표를 한민족 ‘불바다’로 정해놓았으니, 이런 비극의 땅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서울이 멀지 않다. 전쟁이 나면 불바다가 되고 만다" 1994년의 판문점 남북특사 교환 때 시작된 '불바다' 발언이 20년이 지난 지금은 강도를 더하고 있다. 얼마전에도 "정밀 핵타격 수단으로 서울뿐만 아니라 워싱턴까지 불바다로 만들 것이다."는 엄포가 들렸다.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여 바그다드를 불바다로 만들고 영원할 것 같았던 후세인도 죽었다. 간담이 서늘해진 북한은 만만한 남쪽을 겨냥하여 자폭을 종용하는 꼴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떡 달라고 울며보채는 아이 달래듯 그들의 요구를 수용하기만 했다. 그런데도 이 지경이 되고보니 방법론 수정이 불가피하게 된 것 같다. ‘눈에는 눈’ 식으로 맞장 뜰 수는 없고, 그렇다고 마냥 퍼줄 수는 없고. 이 뜨거운 감자를 가장 바람직하게 요리할 레시피가 필요하다.

꽃비가 쏟아지는 4월 내내, 방송 · 언론에서 전쟁소식이 이어졌다. 미국 보스턴에서 테러 사건도 터졌다. 살벌한 뉴스들로 미사일 공격으로 초토화된 국토를 상상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다시금 부상자들의 절규 · 찢겨진 시체들 · 파편화된 도시가 소설 밖에서 재현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이순신 장군의 역설에서 해법을 구할 수는 없을까.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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