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 유치환(1908-1967)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愛憐)에 물들지 않고
희로(喜怒)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 년(億年) 비정(非情)의 함묵(緘默)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雷)
꿈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이 유명한 시를 한 번쯤 읽어보지 않은 이는 드물 것이다. 개인적으로 학창시절에 이 시를 읽고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면서도 그리 가슴에 확 와 닿지 않았다. 만해, 이육사, 박목월 등의 시에 비하여.
애련에 물들지 않고 죽어서 바위가 되겠다는 것이 워낙 단순한 명제와 구성에다가 시적 깊이를 헤아릴 길이 없는 젊은 청춘이었던 탓일 것이다.

최근에 오세영의 유치환을 읽으며 진실로 그 깊이와 의미가 완성되어 내 가슴에 닿게 되었다. 청마는 아시다시피 생명파로 불린다. 그 생명에 대한 치열한 정신의식을 느끼지 못하고서는 깊은 이해를 할 수 없다.
오세영은 이런 생명파, 특히 청마의 시에서 첫째 모든 일상성으로부터 탈피(초연). 둘째 고독과 타협 없이 싸워 이김. 셋째 절망을 회피하지 않은 자세를 들었다. 2행과 3행이 첫째일 것이요, 5,6,7행이 둘째일 것이며, 그리고 마지막 부분이 셋째가 될 것이다.
시인은 죽으면 바위가 되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실상은 바위가 되는 것이 삶의 완성이라고 외치고 있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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