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사화로 이배된 용재 이행(李荇)선생은 유달리 현실 세계에 대해 사실적인 시각을 직시하였다.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자아를 확인하려 했던 선생은 1504년 충주, 함안을 거쳐 1506년 거제시 상문동에 이배된 처음 한 달 동안은, 정치적 경제적으로 아주 절박한 상황이었다. 이후 거제 6달은 몇 년의 귀양살이 중에서도 가장 여유 있는 유배생활을 이어 갈 수 있었다. 이에 거제에서 120 여편의 한시와 기록물을 남겼다. 당시 흉년이 든 거제도에서 그의 애민 의식은 남달리 투철하여, 백성들의 절박한 상황을 가감 없이 몇 편의 시(詩)에다 담아낸다. 1506년 어느 날 때맞춰 내린 비에도 고현천(大川)에 굶어죽은 시체가 있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문제점을 내포한다. 선생은 그 같은 상황에 이르게 된 구체적인 이유를 밟히지 않은 채 현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것으로서도 충분히, 당시 현실세계에서의 비리를 시(詩)속에 암시하고 있고, 유배 체험을 바탕으로 감상적 시작 태도에서 벗어나 현실에 뿌리를 둔 시재(詩材)를 취하였다.

1). 비온 뒤(雨後).

上帝重民稼 상제께서 백성 농사를 중히 여기시어
雨澤勤及時 때맞추어 비의 은택 내려 주시누나
高田水沒踵 높은 논엔 물자국 조차 없고
下田水?? 낮은 논엔 물이 철철 넘치도다.
嗟哉彼蒼生 그런데도 아아 저 백성들은
胡不事耕? 어찌 따비밭(돌밭)이라도 갈지 않느뇨?
溝中有餓死 도랑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어도
莫怨天公爲 아무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구나.

당시 유민의 정황을 가늠케 하는, <雨>라는 제목의 시구에선, "씁쓸히 웃으며 지팡이 짚고 문을 나서니, 창망한 들판엔 밭갈이 한 곳이 없네"라 읊었다. 당시 남쪽 지방 전체가 흉년이 들었고 전염병까지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거제도 유배지에서 참담한 정경에 '기사(記事)'라 제목을 달아 사실 그대로임을 알리고자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2). 기사(記事).

石田賦重歲又荒 돌밭에 과중한 세금 해마저 흉년들고
去冬?疫連死? 지난겨울엔 돌림병으로 줄이어 죽었다네.
數間?屋風雨? 두어 칸의 작은 초가는 비바람에 쓰러져 있고
倂日?粥煎飢腸 날을 걸러 죽 먹자니 주린 창자가 타는 듯,
四隣散盡親戚亡 이웃들 다 흩어지고 친척들도 떠났는데
一身?役安可當 한 몸으로 그들의 부역을 어찌 감당하리.
朝來惡使眞豺狼 아침에 온, 못된 아전 놈 참으로 이리 같아
徵索更到毫與芒 지푸라기 하나 안 남기고 샅샅이 뒤지더니
室中?懸無留藏 집안이 텅텅 비어 낱알이라곤 하나 없자
牽牛負鼎如探湯 소를 끌고 솥을 지고 가도 어쩔 수가 없구나.
主?氣奪空在傍 주인 할미 기가 막혀 속절없이 곁에 서서
?膺?天聲何長 가슴 치며 하늘 부르는 소리 어찌나 슬픈지,
莫?膺恐汝傷 가슴을 치지 마오, 그대 몸 상하겠소.
莫?天天茫茫 하늘을 부르지 마소, 하늘 까마득하오.

위의 시는 작가 이행 자신의 고통을 토로한 작품이지만, 1506년 당시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 듯,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선생의 배소는 삼룡초등학교 옆 하천 동쪽 띠집이었는데, 윗 채엔 늙은 주인할미가, 아래채엔 선생과 몸종이 함께 살았다. 선생은 몸종과 함께 삼거리 구천동 계곡을 구경하고자 계곡을 따라 올라가려하니 주인 할미가 "푸서리 쭉띠기가 쌔삐린 고개"라 소개해 이름을 '망현(莽懸)'이라 지었다. 여하튼 선생은 남달리 현실 사회의 비리와 비행 때문에 고심했던 시인이다. 이러한 현실 인식 태도는 백성들을 대변하는 입장에 서있는, '애민의식'이 현실인식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요소이다. 그러므로 현실파악의 문학으로써 리얼리즘 경향을 띠고 있음을 충분히 입증해 준다.

새거제신문  saegeoje99@hanmail.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