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취재를 위해 거제지역 대표관광명소 중에 하나인 바람의 언덕을 찾았다.

바람의 언덕에는 지난 2009년부터 설치된 인공풍차가 어느새 관광객에게 가장 많이 사랑받는 포토라인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바람의 언덕 자연 그 자체가 볼거리이기도 하지만 비록 전기로 돌아가는 풍차도 나름의 멋이 있었다.

하지만 바람의 언덕 풍차에는 지나는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치명적인 결점이 함께했다. 바로 바람의 언덕 풍차 여기저기 새겨 놓은 관광객들의 방명록 ‘낙서’다. 거제지역 관광지의 낙서는 비단 바람의 언덕뿐만이 아니라 어느 관광지를 가더라도 마찬가지다. 새겨 놓은 낙서를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관광객들은 글씨를 쓸 수 있는 공간이면 낙상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안전데크나 방파제 등대는 물론이고 해수욕장의 몽돌, 심지어 식물의 줄기나 잎에도 사랑맹세나 친구들의 우정을 남겨 놓는다. 보통 이러한 낙서를 접하는 사람들은 아름다운 우정이나 사랑으로 보는 경우 보다는 ‘유치하다’는 반응을 보이거나 “요즘에도 이런 사람이 있나?”라며 혀를 차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문화재까진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이 보고 즐기는 관광조형물에 개개인의 사연으로 뒤덮는 오래된 악습인 공공장소 ‘낙서’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개인주의로 인해 생겼다거나 시민의식 결여가 문제라는 뻔한 이야기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식상해 졌다.

‘호사유피 인사유명’이라는 말이 있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옛말이다. 최근 인터넷 등을 통해 한국인들이 외국 관광지나 문화재에 저지른 낙서로 국가의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다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고사성어다.

자신의 존재 가치는 아무렇게나 써놓은 이름에 남지 않는다. 오히려 아무렇게 써내려간 이름 뒤에 온갖 불길한 상상과 부끄러움만이 남는 다는 것을 시민 스스로가 깨달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호사유피 인사유명(虎死留皮 人死留名), 호랑이는 가죽을 어떻게 남기는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람은 이름을 남겨야 할 장소 정도는 가려야 하지 않을까?

최대윤 기자  crow112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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