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단 7년만에 전국 정상 차지
주부 근로자 축구 1인3역 너끈

<그녀들, 제대로 놀았다. 공을 차는 순간만큼은 한 가정의 엄마, 한 직장의 근로자 신분을 바람에 날려버렸다. 그을린 피부는 땀에 반짝였고 피멍든 발톱은 우승 트로피만큼이나 영광스러웠다.
결혼과 동시에 ‘나’를 잊고 ‘가족’을 위해 살아야 했기에 그녀들의 반란이 더욱 눈부시다. 거제시 여성축구단 25인의 시즌은 이제 막 시작됐다.>

▲(좌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이름과 등번호)박혜란(3), 김민숙(4), 김명선(5), 김은미(16), 조영(17), 유현옥(28), 이선옥(18), 정영숙(14), 조치근 감독, 김민정(15), 이정자(20), 김춘화(19), 이혜영(7), 서의정(25), 신현숙(12) *사진외 선수들: 브이즈니(24), 김미정(11), 김진숙(13), 여성희(9), 이양숙(27), 조상미(10), 장미화(6), 민은경(22), 배말숙(26), 옥은림(2),이병태 코치

-연승 행진, 거제시 여성축구단
올해는 거제시 여성축구단의 기념비적인 해다. 창단 7년 만에 전국 정상자리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축구단은 지난 3월부터 매월 승전보를 전했다. 지난 3월에 열린 ‘제15회 국민생활체육 경남축구연합회장기’와 4월의 ‘제11회 여성가족부장관기 전국여성대회’, 그리고 지난 11일부터 열린 ‘2012년 전국대축전’에서 우승을 싹쓸이해 연승 행진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여성가족부 장관기에서는 장미화 선수가 최우수선수상을, 조치근(65)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면서 3관왕의 영예를 안기도 했다.

축구단 창단 역사는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거제시 축구연합회 회장을 맡고 있던 김치욱 씨가 창단을 결심했고 정용우 현 회장, 옥정포 현 단장 등이 큰 힘을 보탰다.

먼저 닥쳐온 위기는 선수 모집. 거제 여성 중에 공 차본 이가 얼마나 있을까. 그래서 ‘시민의 날’행사에서 피구하던 여성들에게 입단을 권유했다. 그렇게 시작된 축구단은 입소문을 타면서 선수가 늘기 시작해 현재 김춘화(50) 회장을 비롯한 24명의 선수들과 조치근 감독, 배재욱 코치, 이병태 코치가 호흡을 함께 하고 있다.

-운동장에서 만난 樂녀들
여성축구단의 연습은 수요일과 토요일 오전 9시 반에 시작된다. 아침 해지만 매우 뜨거웠다. 그러나 그녀들은 마스크 하나 없이 맨 얼굴을 햇빛에 노출시켰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지만 재미로만 끝낼 순 없잖아요”

몸풀기에 임하는 선수들의 태도가 사뭇 진지하다. 축구화 끈을 질끈 동여매는 주먹에서 전국 정상의 패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역시 대한민국 ‘아줌마’들이다. 스트레칭을 하면서도 서로의 안부를 묻고 소소한 일에도 깔깔대는 수다가 연습 내내 분위기를 한껏 밝게 만들었다.

이날은 얼마 전 치른 경기에서 코뼈부상을 당한 조영(43) 씨가 입원 치료를 끝내고 간만에 연습에 참가해 수다의 중심이 됐다. 골키퍼 이정자(44) 씨도 코뼈 부상을 당했지만 거의 회복해 연습에 임하고 있다. 서의정(42) 씨는 영광의 상처라며 피멍든 엄지발톱을 팀원들에게 자랑했다.

여성축구단은 20대 이상의 여성들로 이뤄져 있다. 20대는 기혼여성이어야 하고 30대부터는 미혼여성이라도 가입이 가능해 다양한 연령층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얼마 전에는 프랑스 국적의 브이즈니(31) 씨가 입단해 다국적 팀이라 해도 무색치 않다.

유현옥(52) 씨가 맏언니로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있고 막내 김은미(28) 씨가 주장을 맡고 있다. 이혜영(31) 씨가 주장을 도와 팀 분위기를 젊게 이끌어 가고 있다.

몸풀기를 끝내고 시작된 연습게임에서 각 선수들의 면면을 관찰할 수 있었다.
김민숙(42)·신현숙(44)·김명선(44) 씨는 불혹(不惑)의 적극적인 공격으로 상대를 압박했고, 김민정(34)·박혜란(35) 씨는 프로선수 못지않은 발재간으로 거침없이 파고드는 기량을 보였다.

이선옥(38) 씨는 팀 내 최장신으로 전술의 관제탑을 맡고 있으며, 조치근 감독과 이병태 코치가 게임에 참가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쉬는 시간에 시원한 수박으로 열기를 식히고 있는 그들을 만나봤다.

-하나된 팀워크가 승승장구 비결
여성축구단 선수들은 대부분이 직장여성들이다. 조선소 외주업체, 식당, 환경미화, 지게차 운전수, 자영업 등 다양한 직업의 그녀들이 입 모아 말하기를 축구가 매우 즐겁다고 한다. 가정주부·노동자·축구선수의 1인 3역을 자처한 것도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란다.

▲조치근 감독

“열악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에 감동해 5년째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선수출신 한명 없는 팀이 승승장구하는 데는 하나로 뭉친 팀워크가 밑바탕이 되고 있기 때문이죠. 무엇보다 선수들의 배우자와 가족들의 지원이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여성축구단은 오는 25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제2회 대통령기 전국축구한마당’에 출전한다. 큰 경기를 치룬지 2주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일부 선수들의 부상도 완전히 낫지 못했다.

이에 그녀들은 주위의 걱정을 물리치며 말한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지역 사회에서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시면 꼭 좋은 성적으로 보답하겠습니다.”

*여성축구단 가입문의
김춘화 회장
010-2588-6894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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