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의 이야기이다.
중학교 2학년인 그 여학생은 어촌마을에서는 그래도 아무도 가지 못하는 중학교를 다닐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어느 집이나, 누구나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어서 학교생활은 어렵기만 했다. 특히 그 여학생은 장학금을 받지 않고는 수업료를 낼 수 없었던 가정 형편이라 한 학기의 수업료를 면제받는 장학생이 되기 위하여 밤을 새워 시험공부를 해야만 했다. 먹을 것이 부족했던 그 시절,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밤을 새워 오랫동안 공부를 하다 보니 영양실조로 학교에서 빈혈로 쓰러지고 말았다.

담임선생님이셨던 처녀 선생님께서는 갑자기 반장이 쓰러지자 너무나 놀란 나머지 쓰러진 반장을 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선생님께서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여학생을 진맥한 후 무슨 나쁜 병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영양실조라고 말씀하셨다. 제대로 먹지 못하고 밤을 새워 공부를 하다 보니 영양실조와 위염이 함께 생겨서 그렇다고 하시며 아침, 점심, 저녁세끼를 굶기지 말고 미음만 끓여서 1주일을 먹이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처방을 주었다.

선생님은 반장의 사정을 잘 알고 계셨다. 3월초에 가정방문을 오신 선생님께서는 반장이 다섯 명이나 되는 동생들 때문에 점심을 가져 오지 못해 언제나 점심시간이 되면 아무도 몰래 학교 뒤편 대나무 숲으로 가서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꿰뚫고 계셨다. 특히 학교와 집이 멀어서 1시간 30분 정도를 걸어야 하는 집까지 이 몸으로 다닐 수 없음을 아셨고, 더욱 1주일 동안 세끼의 죽을 먹기 위해선 결석을 할 수 밖에 없음도 아시고 계셨다.

선생님께서는 병원에서 그 여학생을 업고 자기의 자취방으로 데리고 가셨다. 교복을 벗게 한 후 선생님의 예쁜 플리츠치마와 블라우스를 입혀주시고 곤로에 미음을 끓이기 시작했다. 그 죽을 먹고 그 여학생은 오랜만에 단잠이 들었다.

다음날부터 선생님은 새벽 일찍 일어나 미음을 끓여놓고 학교로 먼저 출근을 하셨다. 급속도로 진행된 위염으로 제대로 걷지를 못하여 끓여 놓은 죽도 선생님과 같이 보조를 맞추어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생님께서 출근을 하시면 천천히 그 미음을 먹고 등교를 했고, 점심시간에도 선생님께서는 자취방으로 내려와 죽을 끓여놓고 먼저 학교로 가시면 그 죽을 먹고 학교로 갔다. 물론 저녁때도 선생님은 선생님의 저녁 식사보다도 그 여학생이 먹을 미음을 언제나 먼저 끓여주시고 함께 이불을 덮고 선생님 댁에서 잠을 자게 했다.

1주일을 그렇게 선생님댁에서 잠을 잤고, 선생님께서는 일주일 동안 아침, 점심, 저녁 세끼를 그 여학생을 위한 미음을 끓이셨다. 그 때 선생님은 생물선생님과 연애를 하고 계셨는데, 밤이면 생물 선생님께서 자취방으로 찾아오시곤 했는데 그런 소중한 시기에도 그 여학생을 데리고 계셨다는 사실이 어린 나이에도 미안하고 감사하기만 했다. 그렇게 1주일을 선생님의 정성이 가득 담긴 치료를 받으며 차츰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8일째 되던 날.

“너는 틀림없이 좋은 선생님이 될 것 같다. 이번 장학금 받지 못하면 선생님이 수업료를 내줄테니 너무 애쓰지 말아라.”
말씀하시며 그 여학생을 꼭 안아주시며 집으로 보냈다.
그 여학생의 어머니께서는 선생님의 고마움을 표할 길 없어 좁쌀 한 되와 무 세 개를 보자기에 싸서 여학생편으로 들려 보냈다.

세월이 많이 흘러 그 여학생은 초등학교의 교사가 되었고, 교사가 되고 보니 그 때 선생님께서 8일 동안이나 자신에게 베푼 그 사랑이 절대 아무나 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평생 그 때의 그 감사한 마음을 잊지 않고 있었지만 사립학교에 근무하신 관계로 어디에 계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선생님을 이제사 연락이 되어 일흔 넷이 된 선생님께 눈물을 흘리며 큰 절을 올렸다.

오월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감사하며 살아야 할 사람이 너무나 많다. 부모, 형제, 직장 동료, 그리고 주변사람들. 평소에 자주 찾아가 뵈어야 하는 사람이 많은데도 살다보면 우린 그 감사한 사람들을 세월 한 쪽에 밀어두고 잊고 살아가고 있다. 이런 많은 사람들 중에서 정말 감사해야할 사람이 있다. 바로 우리를 가르쳐주신 선생님이다. 가만히 돌이켜보면 우리 모두는 우리를 가르쳐 주신 선생님께 보이지 않는 숨은 사랑을 받은 사연이 몇 가지씩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그 때 그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인생의 길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선생님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이 차츰 사라져가고 있는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우린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까?
지금 우리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누구의 가르침 때문일까?
해마다 오월이 되면 나는 그 때 선생님께서 내게 베푸신 그 8일간의 진한 사랑에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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