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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바람에 쓰레기 날리고윤지영 /국제펜한국본부 이사

건강과 친목이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는다는, 등산의 계절이다. 입산 진입로는 새벽부터 몰려든 인파들로 인해 저자거리처럼 왁자했다. 내가 앞사람의 엉덩이만 보고 떠밀려 오르던 그 시간에도, 10월 수림은 몸속의 잠재해 있던 모든 빛깔들을 몸 밖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숲의 월동 준비(근根, 간幹, 묘苗, 엽葉, 화花, 결結, 실實, 종種)가 시작된 것이다.

나뭇잎이 단풍들어 낙엽으로 떨어지는 과정은 자연의 순환원리로써 생명의 윤회로 해석된다. 하지만 인간은 자연의 철칙에 관심이 없다. 다만 산에 의지하여 건강하고픈 욕구만 있을 뿐이다. 원형의 산은 높고 깊으며 멀고 험하다. 시원성은 훼손되지 않을수록 보존 가치가 있지만, 그런 곳일수록 낱낱이 찾아내어 발도장을 남기려든다. 우르르 몰려가 음식을 먹고, 추억의 인증샷을 남긴다.

이 시대의 산은 인간의 시야 밖으로 도망칠 수 없다. 은밀한 속살까지 침범당한 채 기력을 잃어가는 환자 꼴이다. 한국의 산들은 이제, 지치고 상처받은 인생이 기대고 쉬면서 위로 받을 휴식처라는 본래의 의무를 잃었다. 그곳은 다만 계원들이나 동호회원들이 즐길 수 있는 공원 같은 개념이 되고 만 것이다. 새 소리 바람 소리 보다 큰 핸드폰 소리, 여성(女聲)들의 걸걸한 수다는 평일·휴일이 따로 없고, 과자봉지와 생수병 나부랭이들의 바이러스는 태고의 협곡을 감염시킨다. 리본표식 무리가 나뭇가지의 자유를 결박한 지도 오래되었다.

산행 구간마다 총천연색 헝겊 조각이 걸려 무당집을 연상케 한다. 산악회 동호회원 영입을 권유하려는 문구 뿐 아니라, 정욕에 좋다는 약초 광고, 심지어는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고, 자연을 훼손하면 갈 곳이 없다.”라는 현수막까지 걸어두었다. 그것이 쓰레기인 줄 모르는 아둔함이 푸른 하늘아래서 무서운 기세로 펄럭거린다. 기실 리본 표식 본의는 배려와 인정이었다. 험준한 등산로의 길도우미였다. 이제 지자체, 군립 공원마다 위치, 방향표시, 이정표를 친절하게 설치하여 초심자라도 길을 잃을 염려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리본은 늘고 있다.

산 속 뿐만 아니다. 자연 오염도의 심각성이 해안이라고 다르지 않다. 고현만의 풍경은 해안선과 도심이 이어진 고장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거제대로’ 가변도로(깃발군단이 나부끼는 구간) 너머의 해조음은 국도의 매연, 소음, 교통혼잡으로 야기되는 체증 완화에 플러스 요인이다. 바다와 육지의 접경지대를 석축으로 쌓았는데, 먼 바다의 기별에 민감한 이 도심의 주축은 태풍의 방패막이기도 하다. 일기가 고른 날은 해면이라기보다 호수 같다. 어둠이 내리면 갈매기 가등 불빛이 물결을 타면서 해양 도시의 운치를 배가시킨다.

그쪽을 향해 집을 나섰다. 승용차로 스쳐지나가기만 하던 구간이었으나 걷기 운동 겸, 멀리 가지 않고서도 가을 바다의 낭만을 맛보고 싶었다. 횡단보도 몇 개를 건너가는 20여 분 동안, 굉음을 지르며 내달리는 차량들, 대책 없이 뿜어대는 이산화질소, 여기서 생성된 오존, 미세먼지를 뒤집어썼다. 그러나 매캐한 공기 정화제 역할을 해 주는 갯바람이 있어 코끝이 맵지 않다.

난간 너머로, 헤엄치는 물고기 떼가 보였다. 뜻밖의 보너스에 행인들도 합세하여 탄성을 질렀다. 작은 기쁨을 맛 본 순간이었다. 그것도 잠시, 투명도 낮은 수질 속으로 고기들이 사라졌다. 그때서야 방파제에 붙어있는 생활오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묵은 계절의 분량까지 쌓여있었다. 내항 매립지 고현만은 외항과의 해류소통이 어려워서 오염이 축적될 가능성이 짙은 데도 해안 청소를 수시로 하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여객선터미널 간판이 붙어있는 건물 안에도 폐기물 따위가 묵혀있었다. 용도를 상실한 채 길가에 방치된 건물 자체가 쓰레기라 결국 국도변이 쓰레기를 보존하고 있는 꼴을 하고 있다.

푸른 신호등이 들어올 때, 도로 안쪽으로 조성해 놓은 산책로로 들어섰다. 꽃과 조경수를 심고 벤치까지 마련해 둔 오솔길이다. 가을꽃들을 감상하며 낙엽 위로 걸었다. 입은 다물고, 시청각을 열었다. 놀랍게도 자동차의 경적소리, 근처 상가에서 쿵쾅거리는 오디오 소음이 들리지 않았다. 친환경적인 분위기 속에서 마음을 집중시키면 금속성에서 발생되는 불협화음마저도 차단되는, 놀라운 체험이었다. 이는 분명 우울증 치료에 탁월하다는 ‘낙엽 밟는 소리의 효과’일 것이다. 한 대학의 연구진들이 낙엽 밟는 순간의 ‘바스락’ 울림을 녹음 분석해 본 결과 8000~1만 3000Hz의 고주파 소리 성분이 감지됐었다고 한다. 삶에 찌든 시민들의 심신안정을 위해 도로변에 만든 이 길은, 굿 아이디어 행정이다. 문제는 쓰레기였다. 낙엽 위로, 들꽃 사이로 휴지, 과자봉지, 캔들이 날아다닌다. 보이는 곳과 보이지 않는 곳의 표리의 차이는 컸다. '지구상의 동물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쓰레기를 남긴다'고 했던가.

경제력이 나아진 현세의 질곡 속에서 산과 바다의 호흡은 차츰 가빠지고 있다. 동맥경화 증이 염려되는 자연은, 그 배신감을 인간에게 그대로 표출할 것이다. 몸의 순환원리는 자연의 원리이므로 순환이 막힌 사람은 자연 보다 먼저 죽는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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