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 2차 행정심판까지 간 끝에 '불허처분' 받아내
청년들, 직장따라 한 둘씩 떠나 장년에도 궂은일 감내

지난 3월 둔덕면 소재 S교회는 신도로부터 기증받은 연초면 송정 일원 9553㎡부지에 약 3000기에 이르는 기독교인 공동장지를 짓는다며 시에 허가신청을 냈다.
이에 송정주민들은 공동장지가 들어설 경우 혐오시설로 인한 마을 이미지 훼손, 방문객으로 인한 교통혼잡, 오수로 인한 식수원 오염 등 실생활에 미칠 문제를 제기하며 강력히 반대했다.
시청 역시 주민들의 민원에 설치 불허가로 답했다. 그러나 S교회는 법적하자가 없다며 경남도청에 행정심판을 요구, 6월 29일 1차 행정심판에서 4대 4 동수가 나와 2차 행정심판으로 이어졌다.
2차 행정심판에 참석하기 위해 연초면 상송마을 청년회장 김광식(남·59)씨는 마을 주민 윤명원·윤명술 씨와 함께 경남도청을 찾았다.

이날 도청에서 열린 행정심판은 모두 36건. 김씨는 “복도에서 심의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어두웠다. 그러나 ‘나’와 ‘우리’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씨의 손에는 공동장지 설치를 반대하는 연초면 26개 마을 1340명의 서명서가 들려 있었다.
김씨는 “교회 측 변호사가 가타부타 말도 없이 위원들에게 자료를 건네며 읽어보라고 했다. 너무나 당당한 모습에 주눅이 들었다”면서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법도 중요하지만 주민들 생존권과 재산권을 지켜달라고 호소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심의가 끝나고 김씨 일행은 아무 말 없이 거제로 향했다. 4개월간의 힘든 싸움이 한차례 끝났다.

김씨 일행은 복잡한 심정을 가누기 위해 술집에 들렀다.
술잔을 기울이며 그간 고생했던 부분을 서로 격려하던 중 도청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과반수의 위원들이 장지반대에 손을 들어준 것. 김씨는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불구하고 아이처럼 소리 지르며 기뻐했다고.

지난 15일 보름여만에 김씨를 다시 만났다.
2차 행정심판을 앞둔 긴장된 표정과는 달리 한결 편안하고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김씨의 집 뒤로 장지가 들어서려 했던 부지가 보였다. 꽤나 가까운 거리였다.
마주앉은 김씨에게 물었다. 왜 이 일에 김씨가 나서야 했냐고.

김씨는 멋쩍게 웃으며 상송마을 청년회장임을 다시 밝혔다. 청년회라면 당연 젊은 사람들로 구성돼 마을 안위를 지켜야 하나 사정이 여의치 않다는 것. 김씨는 “이 마을 젊은 사람들은 죄다 일하러 나가고 노인들밖에 없다. 청년회가 지난 4월 만들어졌지만 젊은 사람이 없어 내가 회장을 맡게 됐다”며 “이 나이(59)에 이런 고생을 할 줄 몰랐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김 씨는 심의위원들에게 제출할 두 장의 진정서를 만들기 위해 아내와 밤을 새며 컴퓨터와 씨름했다고 한다.
또한 장지의 위치가 거제출입문인 송정IC에서 훤히 보이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인근 철탑에 올라가 마을 전경 사진을 수백 장 찍어 가로로 이어 붙였다.

1차 행정심판에서 동수가 나오자 대책마련이 시급했다. 26개 마을 이장들에게 반대서명서를 배포해 주민협조를 구했다. 이장의 손이 미치지 않는 아파트 단지 경우 직접 배포해 서명을 받아내기도 했다.
김씨는 “청년회장을 맡자마자 큰일을 감당하게 돼 부담이 컸다. 마을을 대표하면서도 마을에 미안했던 것은 어르신들이 모은 마을기금을 현수막 제작과 교통비 등에 쓴 것”이라며 “이번 일이 원만하게 해결되면 마을 어르신들과 큰 힘을 실어준 지역 단체장, 시의원들에게 잔치상을 대접하고 싶다”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S교회에 대해서도 화해를 청하고 싶다고 말했다.

조행성 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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