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 태권 역사 산 증인…최고 경지 ‘공인 9단’ 올라

태권도의 최고단은 ‘9단’이다. 겉으로 보이는 실력만으로 오를 수 없는 경지다. 육체와 정신의 수양까지, 오랜 시간 단련을 거듭해 온 일심동체의 무도인이라야 9단의 경지를 넘볼 수 있다. 한 평생을 갈고 닦아도 쉽지 않은 경지일 터다. 거제도에 태권도를 최초로 도입했던 부친을 뒤이어 무도인으로 살아온 김덕용(59.장승포.거일체육관장)씨가 서부 경남에선 최초로 ‘공인 9단’에 올랐다. 경남에서도 10명 미만이다. 부친과 마찬가지로 한 평생을 태권도에 바쳐온 김 관장은 퇴색해가는 태권도의 가치를 안타까워하는 사람들 중 한 명 이기도 하다.

“지난 6월 말 국기원으로부터 공인 9단을 인증받았습니다. 쉽지 않았지요. 공인 8단을 따낸 뒤 9년이 지나야 9단 승단시험을 볼 수 있습니다. 논문도 별도로 준비해야 하지요.”

김 관장의 부친을 설명하지 않을 수 없다. 현재 팔순을 넘긴 부친 김태진 옹은 지난 1957년 거제도에 태권도를 첫 보급한 장본인이다. 군 교관으로 근무했던 부친은 이승만 전 대통령 앞에서도 시범을 보이는 수준이었다. 공인 8단인 김 옹은 한국 최초의 태권도장으로 알려져 있는 ‘청도관’ 경남본관장을 맡았을 정도로 한국 태권도 역사에서 뚜렷한 족적을 지닌 인물이다. 부친으로부터 자연스레 태권도를 익히게 된 아들 김 관장도 그렇게 태권도장을 이어 받아 지금까지 운영해왔다. 김 관장의 아들도 공인 5단에 딸은 4단이다. 가히 ‘태권 명가’라 할만하다.

“국제심판도 맡았었습니다. 소중한 경험이었지요. 86 아시안게임과 88 올림픽 당시 태권도 종목에서 심판을 했습니다. 해외에서 열린 국제대회에도 수차례 참여했었습니다.”

김 관장은 학교 교사로도 근무했었다. 지난 70년대 후반 고현중학교 등에서 체육교사로 활동했고 태권도를 교기로 지정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청년 시절, 교사를 사직했단다. 왜일까. 거제지역 태권도 활성화를 위해 사표를 던졌었다고 했다. 거제시태권도협회의 기틀을 다진 것은 물론, 도농통합 이전의 장승포시에서도 태권도협회 창립을 주도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거쳐 장년기까지 한 우물만 판 것이다. 올곧은 정신이 있었기에 공인 9단의 경지에 올랐으리라 싶다. 꾸준한 연마 없이는 승단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담담하게 털어놓는다.태권도의 가치는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강인한 정신력에 있겠지요. 그래서 요즘은 아이들을 가르치기가 무척 힘듭니다. 아이들의 자립심과 정신력을 배가시키는데 태권도가 적합한데도 입시 과열에 밀려 여간 힘들지 않습니다.”

지금은 아예 성인 선수를 눈 씻고 참기 힘들다. 감독이나 사범을 빼고서다. 조선소가 거제에 들어서던 초창기만 해도 말 그대로 바글바글했단다. 어린 학생들부터 성인들까지 체육관이 늘 꽉꽉 찼었다고 회고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다지 수련생들이 늘지 않는 게 현실이다. 학교와 학원만을 오가며 입시 경쟁으로 내몰리는 게 요즘 우리 아이들의 현실 아니던가. 갈수록 심약해지는 게 아닌지, 김 관장도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체육관 운영을 떠나 순수하게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다. 초등학생 시절에 태권도장에서 수련하다 금세 관두는 사례도 많다고 했다.

“요즘은 예전에 교과서에 수록돼 있던 태권도 수련 과정이 사라졌지요. 참 아쉽습니다. 선수층 저변도 좁아지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요.”

수련하는 사람도 줄어들다보니 2대째 이어온 체육관의 현실도 녹록치만은 않다. 장승포에 있던 체육관을 고현동으로 이전할 계획도 검토중이란다. 김 관장은 특히 꿈이 있다. 공인9단의 꿈을 이뤘는데 또 꿈이 남아 있을까. 부친과 함께 거제 태권도 역사의 한 축이었던 만큼, 거제지역 태권도를 조명하는 기념관을 곁들인 체육관 건립도 행정 차원에서 적극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수련도 하고 태권도역사를 익힐 수 있는 공간 마련이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는 것이다. 환갑이 가까운 연세에도 최고 경지에 올랐으니, 그 꿈도 쉽게 꺾일 꿈이 아니다.

“태권도에도 분야별 강점을 갖고 있는 관장과 사범들이 있습니다. 품새면 품새, 스트레칭이면 스트레칭, 기초체력 배가 등.. 각 개별과정에 걸맞는 지도자들과 함께 태권도 전용체육관에서 힘을 모은다면, 진정한 수련이 되지 않겠습니까.”

전의승 기자  zes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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