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올레길’ 등 바야흐로 길 전성시대다. 거제에서도 지난 2009년부터 ‘걸어서 거제 한 바퀴’ 모임이 결성돼 호응을 얻고 있다. 거제시도 이 같은 붐을 호기로 보고 관련 정책을 준비중이다. 이른바 ‘명품길’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할까. 행정이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행정 주도는 전시성 사업에 그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해답은 시민사회에 있다. ‘시민이 주도하고, 행정은 보조하자’는 것이다. ‘걸어서 거제 한 바퀴’ 2기 발대식을 앞두고 지난 4일 열린 토론회에서 주창된 메시지다.

거제도서관에서 열린 이번 토론회는 거제시 관계자를 비롯해 시의원 및 국립공원관리공단 관계자, 일반시민, ‘(사)좋은벗’ 관계자,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관계자 등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걸어서 거제 한 바퀴’에 영감을 주고 있는 도법스님은 “도보순례는 자신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행위”라며 “거제를 순례하면서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했는지 성찰하고 무엇을 느꼈는지 짚어보자”고 서두를 열었다. ‘좋은벗’ 박기련 대표의 발제에선 1기 순례를 돌아보는 한편, 순례 중 발견한 문제점들과 2기 순례 계획 등이 발표됐다.

패널로 참석한 거제에코투어 김영춘 대표는 “길을 만들면서 명칭도 고민해야 할 것 같다”면서 ‘거제 갈래길’이란 명칭을 제안했다. 김 대표는 “명칭을 두고 여러 가지 얘기들이 나오는데 통일성이 필요하다. 길을 잘 포착해야 하고 포장을 어떻게 잘 하느냐를 고민해 공론화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거제시 산림녹지과 윤갑수 과장은 “거제명품길 조성을 위해 용역을 착수한 상황”이라며 “거제 한 바퀴 모임의 활동을 용역에 참고시킬 계획이다. 자연적인 길을 테마화해야 할 것 같다. 많은 의견을 내달라”고 말했다.

전기풍 시의원은 “박기련 대표의 발제문에도 거제를 사랑하는 마음이 듬뿍 담긴 걸로 보인다.거제엔 옛성이 28개나 되는 사실도 참고하면 좋겠다. 길 명칭을 두고 의견이 분분한데, 개별 길목에 고유명칭을 부여하는 게 낫단 생각이다. 저도 걸어서 거제 한 바퀴에 동참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영수 시의원은 “80년대에 해금강에서 학동까지 걸었던 적이 있다. 명품길 조성과 관련해 의회도 좋은벗과 상의를 계속해 여러 의견들을 수렴, 관련 정책에 반영토록 하고 저 역시 거제 한 바퀴에 동참하겠다”고 말했다.

1기 순례에 동참했던 반정규 거제축협 상동지점장은 “발제문에서 ‘거제섬길’이라고 명칭을 잠정적으로 정해놨는데 특색이 없어 보인다. 아름다운 명칭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며 “발제문에서도 지적됐듯, 안전하게 걸을 수 있는 길이 있느냐가 관건이다. 잿길을 발굴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거제시 계획은 어떤지 알고 싶다. 임도를 걷다보면 골짜기마다 버려진 비양심(쓰레기)이 눈에 띈다. 부피가 큰 쓰레기도 있어 계속 걸어야 하는 우리도 난감할 때가 많다. 거제시와 연계한 수거체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윤영옥 거제도서관장도 “행복 여부는 감동의 횟수에 달렸다는 생각”이라며 “거제 한 바퀴에 참여하면서 감동을 많이 느꼈다. 감동지수가 높아져 전보다 행복해졌다. 걷고 싶은 길의 포인트는 ‘감동’에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지찬혁 사무국장은 “걷는 사람들이 길을 만들어야 한다. 행정은 보조역할을 하면서 자연과와 조화를 고민해야 한다. ‘브랜드’로 만들어진 길은 수명이 정해져 있다. 좋은 길을 만들기 위해 깊이 있는 고민을 계속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걸어서 거제 한 바퀴 모임에 열 차례 동참했던 국립공원관리공단 임명배 감사는 “걷는 행복을 거제에서 느꼈다. 걸을 수 있는, 걸으면 좋은 길을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임 감사는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북한산 둘레길을 조성했었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산을 무조건 올라야만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려 했다. 등산을 버거워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래서 ‘둘레길’을 만들었다. 연간 200만명이 찾고 있다. 이런 사례처럼 거제에도 멍석을 깔아보자. 거제는 여건이 충분하다”고 힘을 실었다.

지리산 숲길 조성을 주도했던 도법스님은 “행정이 주도해선 안된다. 시민이 주체가 돼야 좋은 길을 만들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는 “자연스런 길이 우릴 편안하게 하고 행복하게 한다. 행정은 관광객들을 끄는데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상업주의에 다름 아니다. 지리산 숲길은 생명과 평화에 대한 고민의 산물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시민에게 행복을 주는 길이 돼야 한다. 시민이 좋아하면 외지인도 찾게 된다. 거제시는 이를 감안해 선구적인, 선도적인 관점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의승 기자  zes200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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