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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라니 노니는 숲길 따라 걷고
바닷길 밝히는 새하얀 등대에서 쉰다
'쥐의 귀 끝' 닮았다는 서이말 등대 가는 길


지난해 11월 주변의 건강한 ‘올레’를 찾아 거제의 걷기지도를 바꾸자는 취지로 첫 걸음을 뗀 뒤 올해 4월까지 산책로, 해안길, 둑길, 숲길, 고갯길 등 지역의 다양한 ‘길’을 두 발로 걸었습니다. 선거철로 접어들어 바쁘다는 이유로, 햇살이 따가운 계절이어서 걷기 버겁다는 핑계로 한동안 거제의 아름다운 길을 찾아 나서는 걸음은 제자리에 멈춰서 있었습니다. 이제 다시 무뎌진 걸음에 힘을 보태려 합니다. 새거제신문을 아끼는 독자 여러분과 시민들의 많은 관심을 바랍니다. / 편집자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거제도는 다도해의 풍광이 고스란히 녹아든 보석 같은 섬이다. 해안가 어디든 배어난 경치를 뽐내지만 특히 동남쪽 해안은 ‘눈맛’이 좋기로 정평이 나 있다. 천연해식동굴과 기암괴석의 절경을 자랑하는 서이말은 이 끝단에 자리한다. 고라니의 천국으로 불리며 거제 유일의 유인등대가 서 있는 이곳을 바닷바람 매서웠던 지난 26일 찾았다.

서이말의 지명은 땅 끝의 형국이 쥐의 귀를 닮았다고 하여 ‘쥐귀끝’이라는 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지세포에서 와현으로 넘어가는 누우래재 왼편으로 난 2차로 아스팔트길을 따라 오르자 아름드리 해송으로 빽빽한 숲이 휘감아 돌고, 오른쪽엔 와현 해변의 쪽빛 바다가 눈에 가득 담긴다. 그림 같은 풍경이지만 휘몰아치는 바람이 제법 차갑다. 그래도 상쾌한 맛은 그만이다.

약수터를 지나 좌우로 굽은 길을 찬찬히 오르면 벤치가 드문드문 놓였고, 시야가 트여 전망 좋은 구간이 나타난다. 와현과 지세포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예구마을 앞 가두리가 바다 위를 수놓는 풍경화가 펼쳐지는 것. 수평선 근처에선 명승 해금강이 손짓한다.

사분사분 경사진 길을 차고 오르면 언덕 끝 부분 커다란 안내판이 세워진 곳에서 갈림길을 만난다. 서이말 등대에 관한 설명이 적혀 있어 눈길을 끈다. 그대로 직진해 내리막을 타면 U2 석유비축기지.


여기까진 자동차로 왔더라도 이제부턴 차를 버리는(?) 게 낫다. 본격적인 서이말 코스의 시작인데다 교행이 다소 성가신 좁은 길이어서다. 차로 쭉 달려 한달음에 닿아도 되지만 주변을 찬찬히 훑어보며 걷는 재미가 훨씬 더 큰 법. 오른쪽 숲길로 길머리를 잡고, 잠시 멈춰선 걸음을 재촉한다.

말이 산길이지 서이말 등대까지의 전 구간이 콘크리트로 깔려 발바닥으로 전해지는 느낌은 덜하다. 그래도 길 양쪽으로 우거진 나뭇가지 틈새로 가을 햇살이 비집고 들어와 퍽 운치가 있다.

이런 저런 생각으로 걸음을 옮기던 중 군용트럭 한 대가 모습을 드러낸다. 서이말 등대와 담 하나를 사이에 둔 군부대(레이더기지) 차량일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스쳐 지난다.

완만한 경사의 숲길을 걷다보니 눈에 띄는 표지판 하나가 시선을 잡는다. 글귀는 ‘서행 고라니 출몰’.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은 숲이라 야생동물이 자주 나타나는 모양이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면 곧 포대 진지가 나오고, 고요함이 주위를 감싸는 숲속 풍경이 한동안 이어진다. 따분함이 몰려올 때쯤 왼쪽 숲 사이로 동백섬 지심도의 모습이 간간이 보인다. 조금 더 가면 방향이 나뉘는 길목. 교회 표지판 뒤로 다소 섬뜩한(?) 문구의 경고판이 버티고 섰는데 ‘군사시설보호구역’이란 사실을 알린다.

경고를 찬찬히 숙지(?)한 뒤 군사시설보호구역에 발을 들인다. 사실 예전엔 민간인의 출입이 엄격히 통제된 적도 있지만, 요즘 들어선 서이말 등대를 찾는 발길이 늘어나 자유롭게 드나드는 편이다.

‘숲 내음’을 맡으며 발길을 재촉하면 오른쪽으로 나무에 가려 보이지 않던 해안 풍경이 서서히 시야에 잡힌다. 해변에서 멀어져 쪽빛 바다의 색이 더 짙어 보이고, 물결에 부서지는 햇살이 눈부시다.

주변 경치에 취해 걷다보면 걸음이 가벼워지는 내리막이 시작되는데 끝 지점 언덕에 하얀 빛깔의 서이말 등대가 서 있다. ‘서이말항로표지관리소’ 건물로 들어서면 잔디가 깔린 마당이 우선 ‘도보꾼’을 반기고, 뒤로는 원통형 등대가 우뚝 솟았다.


계단을 밟아 등대 앞에 서니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가을하늘과 에메랄드 빛 푸른 바다가 맞닿은 듯 분간이 되질 않는 광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가 하늘과 바다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는 것. 멀리 왼편으로는 부산, 오른편으로 홍도가 또렷이 담기고, 정면에는 대마도가 아련하다.

특히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소리와 간간이 들리는 새소리만이 정적을 깨울 뿐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한 풍광이 보는 이를 압도한다.

●서이말 등대는?

서이말 등대는 1944년 1월 5일 첫 불을 켠 이후 지금까지 바닷길을 안내하고 있다. 흰색 원형 모양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높이는 10.2m. 이 등대는 20초마다 한 번씩 불빛을 볼 수 있도록 비추고 있다.
대한민국이 일본에서 해방되던 1945년 8월 15일 폭격으로 파괴됐다가 1958년부터 2년 동안의 복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또 외국산 등명기가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데다 예비품 확보도 어려워 2006년 10월 국산 등명기로 바꿔달았다.
국산 회전모터방식으로 등명기가 교체되면서 불빛 도달거리가 기존 20마일(37km)에서 27마일(43.5km)로 길어졌다. 밝기 또한 외국산 등명기의 15만cd보다 15배 밝은 239cd로 크게 개선됐다.
‘서이말항로표지관리소’에서 1996년 무인화 된 홍도 등대도 관리하고 있다.
서이말 등대와 홍도 등대는 거제도 남동부 해안과 태평양, 일본 등지를 항해하는 선박에 뱃길(항로)을 알려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동열 기자  coda2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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