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고기관은 중국 8대 기서 중 하나로 원광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용식씨가 번역해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한 책이다. 중국 8대기서는 삼국지연의, 서유기, 홍루몽, 수호전, 금병매, 유림외사, 요재지이와 금고기관이 포함된다. 금고기관은 중국 강소성 소주에 사는 포옹노인이라고 알려진 무명의 작가가 당시에 유행하던 삼언이박이라는 작품 가운데 재미있는 것만 골라 편역한 것이다.

▲김용식/산촌허브 대표

송나라 인종 때 강남의 장락촌이라는 마을에 꽃을 좋아하는 한 노인이 살았다. 그의 이름은 추선이라 했다. 추선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처와 자식도 없었다. 그는 혼자 살며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몇 뙈기의 논밭과 오막살이를 모두 팔아서까지 열심히 나무와 꽃을 심으며 살았다.

만약 진기한 꽃을 얻으면 추선은 무슨 보물이라도 얻은 듯이 기뻐했다. 길을 가다가도 남의 집안에 꽃이 심어져 있는 것을 보면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더라도 그 일을 제쳐두고 감상했다. 또 좋은 품종의 꽃을 만났을 때에는 몸에 지닌 돈이 없으면 옷을 저당 잡혀서라도 사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이래서 마을 사람들은 그를 꽃에 미친 사람이라고 하였다. 양심 없는 일부 사람들은 추선이 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좋은 꽃을 찾으면 꺾어다가 흙덩이에 꽂아 그에게 높은 값으로 팔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추선이 꽃을 심으면 뿌리 없는 꽃들도 무성하게 잘 살았다.

추선의 꽃은 날이 가고 달이 갈수록 나날이 불어나 여러 해가 지나자 커다란 정원을 이루었다. 추선은 그 정원에 대나무로 울타리를 두르고 울타리 위에는 장미, 방가지똥, 무궁화 등이 어우러지게 가꾸었다.
울타리 밑에는 접시꽃, 봉선화, 맨드라미 등을 심었고 그 안에는 원추리, 백합, 목단 등을 심어 그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꽃이 필때면 정원은 여러가지 화려한 색들로 알록달록하여 보는 사람의 눈이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추선의 집에는 밖이 훤히 내다보이는 높고 커다란 창이 있어서 일년 사시사철 꽃을 감상하기 아주 편리했다.

울타리 밖 맞은 편에는 호수가 있었는데 마을 사람들은 그곳을 하화탕이라고 불렀다. 이는 호구에 연꽃이 아주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연꽃이 필 때면 물 위를 비단을 깔아 놓은 듯 하였다. 소담스런 연꽃과 향기로운 꽃냄새는 사람들을 유혹하기에 충분하였다. 호수에서는 사람들이 출렁이는 쪽배를 타고 연밥을 따며 부르는 노래 소리가 건너편 언덕까지 퍼졌다. 호수의 뚝 위에는 추선이 심어 놓은 버드나무와 복숭아나무가 있었다. 봄이 되면 버드나무 가지에 싹이 트고 복숭아꽃이 피어 초록빛과 붉은 빛이 어우러져 호수에 물그림자로 비치지 그 모습이 서호의 경치에 못지않았다.

추선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제일 먼저 떨어진 꽃잎과 낙엽들을 청소했다. 그런 후에 물을 길어다가 꽃에 뿌리고 저녁이 되면 물을 한 번 더 주었다. 그는 스스로에게 정원에 물을 주는 늙은이라는 뜻으로 '관원수'라고 자기의 또 다른 이름을 지어 불렀다.

그는 꽃이 피려고 하면 작은 술 주전자, 혹은 한 잔의 차를 가지고 꽃 앞으로 가서 꽃에게 절을 한 다음 마셨다. 그러다가 피곤하여 졸리면 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잤었다.

추선은 꽃을 돌봄에 한 치의 빈틈도 없었다. 햇볕이 강하게 내리 쬐일 때에는 종려나무 잎에 물을 적셔 뿌려 주고, 폭우가 쏟아질 때면 삿갓을 쓰고 돌보았다. 비바람에 부러진 꽃가지가 있으면 대나무 막대기를 꽂아 묶어 주고 꽃들이 떨어지면 떨어진 꽃잎들을 주워 쟁반 위에 올려놓고 감상을 했다. 그것들이 마르면 깨끗한 단지 속에 넣어 호수의 제방 밑에 묻었다. 그리고 죽어 장사 지낸 꽃이란 뜻으로 '장화'라고 불렀다. 만약에 꽃잎이 비바람에 떨어져 흙이 묻어 있으면 깨끗한 물로 씻었는 데 그것은 '욕화'라 하였다.

추선이 평생을 도고 가장 싫어하는 사람은 나뭇가지나 꽃을 꺾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을 보면 그는 이렇게 호통을 쳤다.

"꽃은 일년에 단 한 번 꽃을 피우고, 일년 사계절 중에서 오직 한 계절만을 살 뿐이다. 그나마 꽃은 며칠 밖에는 피주잊 못한다. 길고 긴 시련을 거쳐야만 비로소 며칠간의 영광을 얻는 것이다. 그렇게 힘들게 꽃을 피워 바람따라 하늘거리고 춤추며 사람들이게 미소를 보내는 데 그것들을 꺾는다면 아름다운 미녀를 잔혹하게 짓밟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또 그것들을 꺾어 무엇에 쓰겠는가? 화병에 꽂는다 해도 잠깐 뿐이고 여자들의 머리에 꽂아 본들 아침의 햇살과 같을 뿐이다. 꽃은 가지를 떠나면 시들게 마련인데 어찌 그것들을 꺾는단 말인가!"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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