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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거제를 걷다' - 해지는 바닷가 풍경에 넋을 잃다함박금 외길 돌고 돌아오니, 다시 그 자리

사람들은 왜 걷는 것일까. 많은 이들이 “걷는 순간 행복해지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자연을 벗 삼아 걸으며 노는 재미는 다른 유희(遊戱)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게 걷기 예찬론을 펴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얘기. 그렇다면 제주에 이어 대한민국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에는 과연 걸을만한 좋은 길이 없을까? 본지는 이참에 해안선 길이만 장장 700리에 달한다는 거제의 아름다운 길들을 구석구석 찾아보려 한다. 제주 올레와 지리산 둘레길이 부럽지 않은 해안길, 수변길, 강변길, 둑방길, 숲길 등 멋진 걷기코스가 거제에도 많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걷기엔 편하지만 지루하지 않은 얘깃거리(스토리텔링)가 있는 길이라면 그야말로 금상첨화(錦上添花). 우리 주변의 건강한 ‘올레’를 찾아 거제의 걷기지도를 바꾸는 첫 걸음을 뗀다.


동부면 가배리 함박금길


휴일의 달콤함이 일상의 분주함으로 바뀐 월요일 오후 사무실 나서 운전대를 잡았다. 남쪽으로 방향을 잡고 늦가을의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달린다. 목적지는 동부면 가배리 함박금(含朴金). 이름에서 묻어나는 느낌부터 남다르다. 가배(加背)의 서쪽 함미기에서 이곳까지 이르는 기다란 땅 끝의 안개가 함지박 모양이라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장평을 지나 사곡삼거리에서 거제면 쪽으로 차머리를 돌렸다. 지방도(1018)를 따라 두동고개를 넘자 거제만의 풍경이 반기듯 눈에 들어온다. 가을의 정취를 음미할 겨를도 없이 거제면을 거쳐 어느새 동부면으로 들어선다. 동부면사무소를 앞둔 길목에서 우회전 한 뒤 작은 다리를 건너면 오망천삼거리. 여기선 오른쪽으로 난 오르막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대로 쭉 달려 오송을 지나면 비로소 함박금마을 입구가 나온다.


함지박 닮아 함박금

여기서부턴 차를 버려야 한다. 지루할 겨를이 없는 함박금길을 제대로 느끼려면 두 다리가 제격일 터. 비록 속도는 느리지만 몸으로 느끼고 눈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은 더 많아서다.
본격적인 걷기에 앞서 함박금의 지형부터 살펴보자. 이곳은 노자산 자락이 가배량 바다로 뻗어 내려오다가 또 하나의 작은 봉우리를 이루고, 거기서 마치 고구마 뿌리처럼 울퉁불퉁하고 길게 뻗은 모습을 하고 있다. 이 능선이 가배량 오아포와 오송쪽 동호만을 갈라놓은 것이다.

불법주차를 감수하고 시멘트가 덮인 길을 따라 걸으면 활처럼 휘어진 좁은 지형이 시작된다. 이곳의 지명은 활목. 길옆에 들어선 대여섯 가구의 집이 이채롭다. 옛적에 말 타고 활을 쏘았다는 데서 활목으로 불리게 됐다는 얘기도 있다. 조금 더 들어가면 두 갈래로 나뉜 갈림길이 나오는데 T자 모양의 표지판이 함박금길의 시작을 알린다.

하지만 오른쪽이냐, 왼쪽이냐를 두고 크게 고민할 필요는 없다. 어느 길을 택하더라도 계속 걷다보면 한바퀴를 돌아 그 자리로 오는 일주도로이기 때문. 이미 갔던 길을 되돌아서 와야 하는 따분함이 여기엔 없다.


지루할 겨를 없는 함박금길


잠시 멈춘 발길은 주저 없이 왼쪽으로 향한다. 해송(海松)과 후박나무가 반기는 호젓한 길이 이어진다. 굽이진 도로변에선 청소년수련관 신축건물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주위를 둘러보며 경치에 빠져들 즘이면 양식장 부표가 바다 위 촘촘히 박힌 함박금마을이 마중 나온다. 6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아담한 어촌마을. 연안양식을 주로 한다.

봄, 가을에 잡히는 도다리와 숭어는 다른 곳에서 잡히는 것보다 맛이 좋다. 청정해역인데다 물살이 세기 때문이다. 통영시 한산면 추봉도와 마주한 이곳은 임진왜란 때 가배량 오아포(烏兒浦)와 한산도를 방어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했었다.
함박금마을을 뒤로 하고 걷기를 재촉하면 포장된 해안가 임도 옆으로 추봉도와 한산도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숲 사이에 비치는 저녁 무렵 붉은 햇살에 발걸음도 가볍다.

서쪽으로 지는 해를 벗 삼아 한동안 곧은 산길을 걷고 나면 쪽박금마을과 마주한다. 산자락이 좌우로 감싸고 있는 아늑한 포구 마을이다. 호수같이 잔잔한 바다 위에 전마선이 떠 있는 풍경은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 때 마침 한산도와 추봉도 사이로 지는 해가 운치를 더한다. 박목월의 시 ‘나그네’의 한 구절(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이 절로 떠오르는 순간이다.

쪽박금 옆에는 구도(龜島)라는 작은 섬이 있다. 서쪽 한산도 북쪽 산달도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이웃처럼 떠 있는 모습이 정겨워 보인다.
일몰에 취해 무뎌진 발걸음이 다시 바빠진다. 쪽박금 뒤로 난 언덕길을 올라 부지런히 걸으면 ‘시인의 마음’에 닿는다. 따뜻한 차 한 잔에 지친 다리를 쉬어 가는 것도 좋겠다. 나무가 우거진 숲길을 얼마나 걸었을까. 잠깐의 선택에 멈춰섰던 그곳으로 돌아 나왔다.


함박금 지명 유래


함박금은 함박구미로도 불린다. 함박구미란 ‘움푹 꺼지고 돌아져 있는 마을’이란 데서 나온 말. 함박은 움푹한 곳, 구미는 외지고 돌아져 있는 곳을 뜻한다. 지금의 함박금은 함박구미에서 변형된 것이다.
마을 이름과 일치한 함박꽃을 많이 재배하고 있어서 함박구미라 한다는 얘기도 있다. 예전에는 유월이 되면 함박꽃(작약)이 지천으로 피어 그 향기가 마을을 뒤덮을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함박금마을은 함박금 본 동네와 쪽박금, 활목 등으로 나뉘는데 바다에서 보면 산이 두 쪽으로 갈라져 꽃동네를 이루고 있어서 뱃사람들이 지나가면서 불렀던 마을 이름이라고 한다.

본지의 이번 기획시리즈는 새거제신문을 아끼는 독자 여러분과 시민들이 함께 만들어 가는 코너입니다. 옛 풍경을 간직한 동네 골목길도 좋고, 남다른 사연이 담긴 길, 남들이 가지 않는 새로운 산길 등 ‘걷는 길’이라면 어디든 좋습니다. 애정 어린 제보와 많은 참여를 바랍니다.
(☏ 632-6336~9)

이동열기자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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