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수필가, 진주교대 외래교수

10월 9일 학회날, 한평생 ‘국어사랑’ 실천에 앞장서 오신 퇴임 학자의 강의가 있었다. 세종대왕을 향한 남다른 존경심으로 인해 평생 국어로 ‘밥 먹고 살았다’시는 그분은 가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병(?)을 가졌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유는 당신의 언어능력으로 다 표현해 낼 수 없을 만큼 방대한 ‘님’의 업적을 생각할 적마다 가슴이 벅차기 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잘못된 언어습관을 목격할 때도 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다면서 교과서에서 미처 배우지 못한 훈민정음에 얽힌 일화를 정확한 근거를 곁들여 설명을 했다.

강의 내용이 ‘화법(話法)’으로 이어졌을 때 선생은 느닷없이 대중가요를 열창했다. 어머님의 손을 놓고 떠나 올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가랑잎이 휘날리는 산마루턱을/넘어 오던 그 날 밤이 그리웁고나~. 청자들의 졸음을 쫒아주기 위한 서비스인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우리의 정서가 뚝뚝 넘쳐나는 이 구슬픈 가락을 당신께서 끝까지 부르긴 했어도 참 기분 나쁜 노래라며 그 설명을 덧붙였다.

“고모령은 대구 파크호텔 뒤편에서 팔현 마을로 진입하는 구간인데 이 호텔 진입로에 ‘비내리는 고모령’을 기념하는 노래비가 세워져 있다. 이 노랫말을 보면 누구나, 먼 길 떠나는 아들과 모친의 이별장면을 생각할 것이다. 기실 작사자도 그런 뜻으로 지은 줄 안다. 이런 엉터리 노래를 만사람의 애창곡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불리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일이다. 이 노랫말대로 하면, 이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이별하는 장면이다.”

즉 국어 친족어에서는 자기 쪽은 철저히 낮추고 상대 쪽은 높여야 옳다. 그러니까 ‘-님’이 붙는 다음과 같은 경우 -아버님, 어머님, 할아버님, 할머님-는 모두 남의 부모이고, 자기 쪽은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라고 해야 정확한 호칭이다. 대신 들어온 사람(며느리)은 시어르신께 ‘님’자를 붙여야 하니, 여기서 ‘어머님’은 며느리가 시모를 부르는 것이 된다.

이쯤에서 이런 질문이 던져졌다. “남편은 자기 부모를 '아버지' '어머니'라 하는데 며느리는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남존여비의 관습적 호칭이 아닙니까?”
“그렇지 않다. 옛날부터 친자녀가 자기의 부모를 '아버님' '어머님'이라 부르지 않고 '아버지' '어머니'라 부르게 한 것이 바로 며느리의 호칭과 혼동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으로 보면 무방하다. 친자녀가 부모를 부를 때는 예(禮)와 경(敬)보다 친(親)함이 앞서고, 며느리는 혈연관계가 아닌 결연(結緣), 즉 인척관계임으로 친함보다 공경과 예절이 앞서야 하기에 '님'을 붙이는 것이지 남존여비 개념이 아니다. 며느리와 딸이 함께 앉아서 똑같이 '어머님'이라 부르면 누가 딸이고 누가 며느리인지 어떻게 알겠는가. 이때 며느리는 '어머님'이라 부르고 딸은 '어머니'라 부르면 금방 식별이 될 게 아닌가, 우리나라 전통 호칭 법이 어려운 것 같지만 알고보면 매우 합리적이다”

“이 뿐만 아니다. 우리가 흔히 실수 하고 있는 호칭에서 시댁 식구와 관련된 것을 본다면, ‘삼촌’과 ‘고모’가 있다. 대립체계가 엄격한 친족체계는 자신을 기준으로 하여 불러야 옳다. 아이들이 사용하는 호칭인 '삼촌' '고모' 를 며느리들이 시동생이나 시누이를 부를 때 쓰는 데 이걸 바로 자신의 입장에서 고쳐 불러야 한다. 결혼하지 않은 시동생은 '도련님', 결혼한 후에는 '서방님'이라 칭하고 ‘고모’도 ‘아가씨’로 불려야 한다.”
하긴 나도 남자가, 결혼한 자신의 여동생에게 제 아이들 호칭 그대로 따라 ‘고모’라고 하는 기인한 현상까지 본 적이 있다. 먼 친족까지는 못하더라도 일단은 가까운 직계간의 호칭은 바로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은 또 하나의 예를 들었다.

지인의 딸 결혼식에 참석을 한 일이 있었는데, 얼마 후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감사 편지를 받았다는 것이다. “존당에 만복을 기원합니다. 지난 번 소생의 영식 ooo 혼사에 축하를 해주신데 대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 짧은 구절에도 두 개의 오류가 들어있다는 것. 즉 ‘존당’이란 여자에게 해당되며,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 쓴다(아버님, 춘부장(春府丈), 어머님, 자당(慈堂) · 존당(尊堂)). 그리고 ‘영식(令息)’이란 ‘윗사람의 아들을 높여 이르는 말’이라 이런 상식 아래서 위의 내용을 보면, 이 글은 마치 자기 아내를 보고 ‘부인’이라든지, 남편을 먼저 보낸 남의 부인을 보고 ’미망인‘이라고 칭하는 것처럼 자신의 무지를 드러내고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지금도 티이브이 화면에서는 연예인들이 생존하신 자신의 부모를 딴에는 높인다고 ‘님’자를 붙여 죽은 부모로 만드는 불효를 저지르고 있다. 우리글, 특히 호칭을 제대로 알고 써야지 잘못 쓰면 ‘개 짖는 소리가 된다’시던 김종택 교수(경북대학교 명예교수)의 격앙된 목소리가 방송 매체의 위력 위에서는 샛바람 앞의 가랑잎이라, 오늘 밤에는 나마저도 불면을 겪을 것 같다.

새거제신문  saegeoje@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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