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 /국민건강보험공단 통영·고성지사장

얼마전 무려 12년이란 긴 세월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나온 후배가 있었다. 나름대로 이리 저리 다니면서 선배들한테 인사도 하고 경조사도 찾아다니면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보기가 좋았다. 우연한 기회에 그 후배가 요즘 어떻게 사는지 친하게 알고 지내는 사람한테 물어봤더니만 다시 감옥에 가 있다고 한다. 몹시 안타깝기도 했지만 다시 수감된 사유를 보면 정상적인 사람이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많이 있다는 걸 느낀다. 정신과에서 얘기하는 이른바 불행중독증이다. 여기서는 전문가의 의견들을 토대로 자기 자신은 물론이지만 아무 죄없는 가족까지도 불행하게 만드는 이 중독증의 원인과 특징을 이해하고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보자.

앞에 얘기한 후배처럼 우리 주변에는 애써 불행한 곳만을 계속 기웃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행을 원하지 않지만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불행에 중독이 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모든 중독은 중독행위를 통해 심리적 위안을 받는다. 불행중독증도 마찬가지다. 이들은 삶이 안정되거나 행복해질 것 같으면 근본적인 불안에 빠진다. 자신을 지탱시켜주는 기본적인 정서가 우울감과 불행감이기에 행복앞에 쉽게 이질감과 위협을 느낀다고 한다.

자해하는 사람들이 그 안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처럼 이들은 불안정하거나 불행한 상황으로 자신을 몰고가서 그 안에서 묘한 안도감을 느낀다고 한다. 이들은 몇가지 보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들은 근거없는 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자신은 즐거워서는 안되고 자신의 욕구를 위해 행동하면 괜한 죄책감에 시달린다. 특히 어린시절의 불행에 대해서 무언가 자신이 제 역활을 하지 못했다는 과잉책임과 비합리적인 죄의식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강점은 보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단점만을 바라본다고 한다.

그렇기에 이들은 자신의 단점을 감추고 방어하느라 모든 에너지를 써버린다. 정작 그러다 보니 자신의 욕구나 동기에 관심을 둘 여력이 없다. 당연히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를 못한다. 그러므로 이들은 계속해서 불행을 느낀다. 셋째, 이들은 자아의 경계가 쉽게 허물어진다. 이들은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 것처럼 경계가 두터워 보이지만 가까워지게 되면 그 경계가 쉽게 사라져버린다. 그렇기에 가까운 사람들의 고통과 불행에 지나치게 연민을 보이고 함께 허우적거리게 된다.

왜 이들은 불행에 중독되게 되었을까? 원인은 우선 이들은 불행감을 계속 느낄만한 상처를 많이 받고 자라났다. 대개 무관심하거나 가혹한 부모아래 자라나 애정결핍에 시달린 경우가 많다. 또 어려서부터 불행한 느낌에 흠뻑 젖어 자라왔다. 집에서는 늘 불화가 끊이지 않았고 ′너 때문에′ 혹은 ′너만 아니라면′ 이라는 비난과 원망을 받아 온 경우가 많다. 불행감과 그에 대한 과잉책임감 자체가 삶의 바탕정서를 이룬 셈이다.

물론 불행한 과거를 경험한 사람들이 다 불행중독증에 빠지는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들은 불행을 받침대 삼아 더 한층 성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불행했던 과거를 불행중독의 원인이라 할 수는 없다. 더 본질적인 문제는 불행한 과거를 방패로 불행을 자꾸 선택하고 확대시켜온 자신의 태도에 달려있다. 이들은 흔히 자신의 부적절함을 방어하기 위해 더 큰 불행뒤에 자신을 숨긴다. 자신이 이렇게 된 이유는 외부로 부터 찾아온 불행때문이지 자신이 부족해서가 아님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불행중독증을 벗어나는 방법을 알아보자.

첫째, 불행대신 행복을 선택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과거와 칸막이를 걷어버리고 이제 자신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음을 받아들여야 한다. 행복감에서 느끼는 이질성은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것이다. 둘째, 적극적으로 자신을 표현해야 한다. 인생의 불행은 자신이 책임을 다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고 덜 표현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냄으로써 자기세계를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욕구와 강점을 똑바로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다.

셋째, 있는 그대로 바라보자. 자신의 불행을 축소시킬 필요도 과장도 필요없다. 자신의 불행을 미래로 연장시킬 필요도 없다. 뭉뚱그려 얘기하지 말고 자신의 불행이 무엇인지 아주 구체적으로 묘사해서 탈피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넷째, 자신에게 성실한 사람에게 집중해야 한다. 자신은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으며 자신이 사귄 사람들이 떠나는 것은 자신의 결함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애초부터 불성실한 사람을 만나왔기 때문이다. 자신은 그 사람들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 안에 들어있는 자신의 모습에 이끌린 것이다.

불행중독증- 다소 생소한 느낌이 들지만 자신을 납치한 범인을 사랑하는 ′스톡홀름 증후군′처럼 불행의 인질이 되어 불행을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나는 ′더불어′라는 단어를 무척 좋아한다. 우리 사회도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면 너도 나도 행복해질 수 있다. 혹시라도 우리 주위에 불행에 중독된 것처럼 보이면 그냥 내버려두지 말고 지극한 관심과 사랑으로 이 지독하고 무시무시한 중독증에서 하루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배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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