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순련 /신현초교 교사

그 아이를 만난 것이 지금부터 꼭 30년이 된 것 같다. 초임발령을 받은 나는 눈앞에 앉은 쉰 두 명의 아이들이 두려워 눈빛 한 번 맞추지 못한 채 정신없이 수업을 마치고 청소시간을 갖게 되었다. 교실 청소를 지도하다가 골마루로 나간 나는 이제 겨우 일곱 살 쯤 되어 뵈는 여자 아이가 복도를 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언니를 따라왔구나. 청소는 언니들이 할 텐데…….” 하고 나도 몰래 그 아이를 번쩍 들어올렸다. 그 때 곁에 섰던 아이들이 청소용구를 내던지고 까르르 웃으며 여기저기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그 아이 우리 반 아이예요. 우리 반 난쟁이 채린이요.” 아이들의 이야기에 채린이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 내 품안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성장호르몬 부족으로 친구들의 키를 따라잡지 못한 채 성장이 더딘 3학년 2반 우리 반 아이였던 것이다.

이렇게 시작된 채린이와의 만남은 3학년부터 6학년까지 4년 동안 채린이의 담임을 맡으며 이어졌다. 채린이는 정말 자라지 않았다. 키는 친구들의 2/3 정도 밖에 자라지 않았고, 4학년에서 5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부쩍 자라는 친구들과 달리 채린이의 자람은 반비례하고 있었다. 6학년이 되었을 땐 힘센 남자아이를 짝으로 정해 책상을 옮기는 일과 책가방을 메고 가는 일을 그 남자친구에게 맡기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성장이 저조했다.

소풍을 떠나는 날은 채린이의 점심을 들고 가는 친구가 정해지고, 한 30분 정도의 걷기가 끝나면 나는 채린이를 업어야만 했다. 처음엔 업히기를 거절했지만 몇 년이 지나는 동안 소풍 땐 의례히 선생님 등에 업히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터득하게 되었다.
4년이란 긴 세월을 함께 하는 동안 우리 반 아이들은 채린이의 손과 발이 되어주었다. 우리 반 아이들의 돈독한 우정은 교내에도 알려져 도움을 준 아이들이 학교장의 표창을 받기도 했다.

채린이는 졸업 후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전학을 갔고,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 아이를 잊고 말았다. 채린이와 헤어진 지 10년 후, 교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아이 한명이 출입문 곁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 아인 다름 아닌 채린이었다. 채린인 대학 졸업여행을 포기한 채 나를 찾아왔노라고 했다. 채린이는 나와 이틀 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2년 후 결혼을 한다는 소식이 왔다. 결혼식 이틀 전 대전으로 올라갔을 때 채린이 곁에는 근사한 청년이 나를 맞이해 주었다. 교회에서 만났다는 그 청년은 채린이의 초등학교 시절을 세세히 물어 내가 답할 때 마다 입이 귀에 걸리는 웃음을 보였다. 나는 선물로 둘이 함께 밸 수 있는 긴 베개를 가지고 갔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머리를 맞대며 살라는 생각으로 그 선물을 마련한 내 자신의 부족함이 스스로 미안해졌다.

채린인 지금 귀여운 아이가 둘이다. 지난여름엔 남편과 아이들과 거제를 찾아왔다. 채린이의 얼굴은 환하고 밝았다. 남편에게 어리광도 부리고, 투정도 부리며 여느 부부와 다름없는 아름다운 가정을 꾸려가고 있었다.
얼마 전 장애인의 날이 지나갔다. 우리와 함께 어깨를 맞대고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바람은 그냥 다른 사람과 똑같이 생각해 주는 것이지만 솔직히 그들을 우리들과 똑같이 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을 우리와 같이 대하지 못하고 있기에 그들이 아픔을 당하고, 서러움을 당하고, 장애보다 더한 장애를 맛보고 있다.

우리가 두 발로 걸을 수 있고, 남의 말을 들을 수 있고,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껏 볼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남을 감사의 조건으로 생각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보다 나은 조건을 갖추지 못한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 찬 우리들에게 채린이 남편과 채린이 시부모님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러든다.

새거제신문  skj6336@kornet.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