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민 /본지 편집이사

필자는 몇 해 전에 일어났던 '인천 일가족 투신자살' 신문보도를 끝까지 읽지 못했다. 신문을 보는 도중 눈물이 앞을 가렸고 이내 신문을 내던지면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슬픔으로 밤을 지새웠다.

빚 독촉에 시달린 비정한 엄마가 세자녀를 아파트 14층 계단으로 데려고 올라간다. 3세 여아를 가슴에 안고 5세 여아의 손을 잡으며 계단을 오르는 엄마는 뒤에서 겁에 질려 머뭇거리는 7세 남자 아이의 발걸음도 재촉한다. 34세의 엄마는 “아이들에게 미안하다. 살기 싫다. 죽고 싶다” 라고 쓴 유서를 뒷 주머니에 넣고 일단 아이들을 데리고 14층 아파트 계단 창구까지 올라갔는데 여기서 아이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엄마를 붙들고 절규한다 “엄마 나 죽기 싫어.. 안죽을래.. 엄마살려줘.. 말 잘 들을게.. 엄마... 엄마....”

자녀들은 자기들의 운명을 알고 있었는지 엄마에게 살려달라고 울면서 약 5분동안 애원했는데도 불구하고 엄마는 아이들을 차례로 14층 아파트 창문 밖으로 내던진 후 본인도 3세 여아를 안은 채 창밖으로 몸을 날려 절명한다.
젊디젊은 34세의 이여인을 도대체 누가 이렇게 만들었나?
이 비정한 여인은 무슨 자격으로 3명의 자식을 살해했나? 카드회사는 남편카드 빚 3천만원을 왜 부인에게까지 지겹게 독촉을 했는가? 아이들이 무슨죄가 있길래.
이러한 사회면 보도 앞쪽 정치면의 기사를 보면 넥타이 메고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한 정치인이 착복한 뇌물 액수는 수십억 수백억에 달한다. 검찰이 들어오라 해도 외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3천만원이 아니라 3억원이라도 정치인들의 뒷돈거래는 ‘껌값’에 불과해서 거의 기사화 되지 않고 수십억정도는 되어야 독자들이 관심을 보인다. 참으로 불공평한 세상이라는 느낌을 버릴수 없다.

중종때 학자 어득강(漁得江)의 문집을 보면 꾀꼬리도 새끼 때문에 창자가 녹아내린다. 조롱속에서 기르던 꾀꼬리 어미와 새끼가운데 새끼만을 딴 조롱에 옮겨 길렀더니 어미 꾀꼬리가 식음을 전폐하고 울지도 않으며 머리를 조롱에 찧어대어 자학을 하더니 끝내 죽고 말았다,

죽은 꾀꼬리의 배를 갈라 보았더니 창자가 녹아있었다고 한다.
옛말에 과도하게 슬프면 생리적으로 애(창자)가 닳다 못해 끊어지고 녹는다는 것을 금수가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하물며 사람임에야 어찌 살려달라고 절규하는 자기 자식을 제멋대로 죽이는 일이 현세에 일어날 수 있는가?
도덕의 덕목가운데서도 부모와 자식 사이의 덕목은 어느 다른 덕목에 우선 시켰던 우리조상의 피를 이 여인은 이어 받지 않은 오랑캐 혈손인가? 나라와 부모를 택일해야하는 양립 상황에서 자식들에게 효(孝)을 택하는 것이 도리라고 가르쳤던 대한민국에서 오히려 어른들이 못할 짓을 경솔히 자행하고 있다.
한국전쟁이 휴전된지 반세기가 흘렀다. 바로 전후세대인 필자는 어린눈에 온갖 사회적 비정함과 가난한 사회를 수도 없이 봤기 때문에 기억이 생생하다. 이때 가장 배가 고파 가슴앓이를 많이 한 사람이 누구인가. 술과 도박에 찌들고 가정을 등한시 한 아버지 이면에서 고생하는 바로 힘 없는 엄마와 아이들이었다.
1960년대 당시 가정생활을 잘 풍자한 ‘저하늘에도 슬픔이’ 라는 영화를 보고 우리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가? 그렇지만 승복인가 하는 주인공은 나이에 맞지 않는 갖은 고초를 다 겪으면서 열심히 일하며 주정뱅이 아버지를 보필하고 어린 동생들을 보살핀다. 그런데 50년이 지난 지금 또 하나의 ‘저하늘에 슬픔이’는 악착같이 살아가려는 노력보다는 차라리 ‘죽음’ 이라는 순간적인 길을 택하고 있어 가슴이 답답하다.

최근 우리사회는 자살가도로 달리고 있다. 또한 그속도가 매우 빠르다
정치권에서는 더 이상 사리사욕에 눈이 먼 당파싸움을 버리고 함께 어울려 잘 살수 있는 서민경제 부활에 힘을 쏟아야 한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은 부모에게도 있지만 이러한 가족동반자살 풍토를 방관한 정치권에도 더 큰 책임이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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