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문예회관 공연대관팀장

공연 1시간 전부터 입장표를 구입하려고 길게 늘어선 관람객들의 행렬하며 입석마저도 구하지 못해 발걸음을 돌려야 하는 예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난 것이다.
제작비 1억여 원의 독립다큐멘터리 영화인 ‘워낭소리’가 바로 그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영화가 막을 내린 다음날에도 사무실에는 전화문의가 계속 걸려왔다. 대극장에 올려 질 오늘 저녁 공연문의가 아니라 전날 상영된 ‘워낭소리’를 보지 못한 관객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인 것이다.

특별히 대중의 관심을 끌 만한 광고나 홍보가 있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소규모 제작비로 만들어진 ‘워낭소리’는 공연계의 새로운 기록으로 주목 받고 있다.
지난달 관객점유율 22.4%로 아카데미 최다 부문 후보작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제치고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해 뉴스가 되더니 드디어 관객 100만 명을 돌파하였다.

독립다큐멘터리의 이런 ‘성공’은 전례가 없다고 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은 물론이고 누구도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가능한 일로 만든 것은 영화에 대한 관객의 호응이다. 이런 저예산의 ‘워낭소리’의 성공은 바로 관객의 마음을 얻는 감성적인 내용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제작비 1억여 원의 영화가 관객 100만 명을 돌파 했다는 것은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공연물인 셈이다.

내용에 보면 흔히 생각하는 상업적 성공요소가 별로 없다. 눈요기가 될 만 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극적인 재미도 없고, 특히 뛰어난 연기력도 없다. 노인과 늙은 소의 걸음걸이만큼이나 느리고 투박한 시골의 일상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은 영상을 보는 내내 가슴이 찡하다. 감상하는 관객의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감동, 이것이 관객 100만 명을 동원한 저예산 영화 ‘워낭소리’의 힘이다. 더 빨리, 남을 앞질러, 무엇이든 성취하는 것이 사는 목표가 된 디지털 시대에, 촌로의 투박하고 느린, 하지만 지극히 인간적인 아날로그적 감성이 관람객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이 ‘워낭소리’의 성공이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진정한 경쟁력은 감동에서 나온다는 것이 아닌가 싶다. 농사일이 너무 힘들다며 좀 덜 고단하게 농약을 쓰자는 할머니의 성화에 “소 죽어”라고 퉁명하게 내뱉는 영화 속 할아버지의 외마디 대답이 귀에 쟁쟁하다. 우리가 저녁마다 접하는 TV에서 조차 시청률에만 급급한 ‘막장’ 드라마들이 인기를 끌며 인간적인 감성을 다독이는 ‘따스함이 사라지는 TV’로 전락하고 있지 않은가? 농약 같은 자극적인 내용으로 고객들의 관심을 끌려는 ‘막장’ 콘텐츠가 난립하는 사회 현상에 일침을 가하는 장면으로 받아들여진다.

한국영화 평균제작비의 3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예산으로 만든 감동 영화의 기분 좋은 성공을 보면서 이미 광고의 고전이 된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카피가 생각난다. 저예산 영화 “워낭소리” 는 작은 것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술 산업의 또 다른 모습이자 매력이다.
통상적 기준에서 보면 불리한 조건을 두루 갖춘 저예산 독립 다큐멘터리의 성공은 ‘좋은 콘텐츠는 돈이 아니라 사람 즉 감동이 있는 감성으로 만드는 것’ 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주었다.
며칠 전 소극장 가득 울려 퍼지던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워낭소리’는 잔잔한 감동의 파문으로 물결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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