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순련 /신현초교 교사

지난겨울 방학 나는 참으로 귀한 경험을 하였다. 3년 동안 함께 공부하고 있던 외국인결혼이민자들과 그들의 친정방문을 함께 다녀온 일이다. 조선족 결혼이민자 3명과 함께 중국을 먼저 다녀왔고, 다시 학년말 방학을 맞이하여 베트남 누엔티리 가족 3명과, 레티슈언 가족 3명이 베트남을 방문한 일이다.

이들과 동행한 겨울나들이는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었던 외국인여성결혼이민자들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되었다. 2007년부터 3년간이나 그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체험활동을 통한 글쓰기지도를 해 오고 있었기에 다른 사람에 비하여 외국인여성결혼이민자들에 대하여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놀이를 함께 하면서 서툰 언어로 주고받은 이야기 속엔 그들의 한국생활에 대한 어려움이나 눈치 챘을 뿐이지 그들이 진정 누구인지는 알지 못했음을 이제사 깨닫게 되었다. 정말 그들이 태어난 곳, 그들의 부모님, 그들이 살아온 모습,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들이 한국으로 시집와야 했던 속내를 전혀 알지 못하고 그들을 안다고 생각한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중국에서 본 W씨의 가족은 너무나 행복한 가정이었다. 아직도 젊음이 넘치는 아버님과 심양사범대학을 나와 중학교 교사를 지낸 어머님, 그리고 교편을 잡고 있는 언니,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를 대했던 형제들. 우리를 맞이한 그 가족의 모습은 풍요롭고도 안정된 가족임이 몸으로 느껴졌다. W씨가 위생대학을 나와 간호사로 일하며 행복하고 경제적 어려움이 없는 중국생활을 두고 굳이 한국 사람과 결혼한 이유를 알고는 머리가 수그러들고 말았다.

W씨의 가족은 중국에서 상류층의 생활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한 시도 그들이 조선족임을 잊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딸을 중국 사람과 결혼시키지 않기 위하여 한국 남자를 찾았고, 사랑하는 딸이 결혼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른 채 단지 대한민국 남자라는 이유 하나로 한 남자를 딸려 시집을 보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두고 온 북쪽의 고향인 신의주를 못 잊어 압록강변의 21층 아파트를 사 놓고 지금도 고향인 신의주를 바라보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W씨는 자신의 딸이 대한민국국민이 되길 바라는 아버지의 강한 민족혼 덕분에 결혼이민자가 된 셈이다.

베트남 가족인 레티슈언 역시 참으로 행복한 시골집의 셋째 딸이었다. 넓은 들녘 한 가운데에 아담한 양옥집을 지어놓고 고추를 심고, 벼를 심으며 울도 담도 없이 망고나무 한 그루 건너에 삼촌집이 있고, 야자수나무 건너서 고모집이 있어 그냥 소리치면 한달음에 달려오는 인정이 넘치는 그런 시골에서 자란 고운 아가씨였다. 가족 모두가 서로를 위하고 아끼며 대한민국 국민이 겪었던 70년대의 그 모습으로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예쁘게 커온 아가씨였다.

누엔티리도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에서 친정 나들이를 나온 딸과 사위를 위해 온 가족이 공항으로 달려 나와 얼싸안고 부둥켜 우는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며 낯선 사람인 나에게 보여주었던 이웃사람들의 정스러움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아름다운 가정의 아가씨였다. 이들의 한국행은 부모님의 한국인에 대한 선호도가 아니었다. 이들의 한국행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가감하게 자신의 자리를 박차고 나온 위대한 여성들이었다. 경제적 궁핍으로 언제 형편이 펴질지도 모르는 모국의 어려움을 지켜보기 보다는 경제력이 우수한 대한민국으로 시집가 자신의 꿈을 키워보겠다는 대단한 모험심과 적극성과 선각자적인 앞선 의식을 가진 아가씨들이었다.

세계 인류학자들의 의견에 따르면 세계의 인구는 보다 나은 삶의 향상을 위하여 이동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여성들의 이동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으로 시집온 이들도 세계여성의 인구이동에 동승한 사람들인셈이다. 한국으로 시집와 그들의 꿈을 키우고, 가난한 가족도 돕겠다는 장한 의지를 가지고 처음 본 한 남자를 따라서 대한민국으로 시집온 것이다.

이런 건강한 의식을 갖고 한국으로 시집왔기에 그들의 삶은 정말 적극적이고 긍정적이다. 배움에 충실하고, 한국을 하루 빨리 알고자 노력하는 태도가 돋보이는 삶을 살고 있다. 남편을 알뜰하게 잘 모시고, 농촌생활의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노부모를 잘 모시고 있다. 그리고 이젠 대한민국 아줌마가 다 되어 자녀들의 교육을 위해 학원가를 더듬고 다니며, , 한국 문화 속으로 달려가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베트남을 방문한 첫날은 레티슈언의 집에서 보냈다. 가족들과 월남쌈도 만들고 망고열매수액을 바가지에 담아 함께 마시며, 물소와 병아리와 돼지가 함께 살고 있는 뒤뜰에서 사진도 찍으며 정말 즐겁게 보냈다. 레티슈언의 집을 떠나올 때 레티슈언의 어머니는 내 손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딸을 부탁한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이튿날은 누엔티리의 집에서 묶었다. 마침 그날이 누엔티리 친정어머님의 제삿날이어서 베트남의 제사 풍습을 눈여겨 볼 수 있었다. 베트남은 제사를 밤에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낮에 지냈다.

별다른 의식 없이 많은 음식을 차려놓고 장남이 묵념만 올린 후 온 마을의 사람들을 초대해 잔치를 열었고, 마을 사람들은 음식을 먹고 마시며 정담을 나누고 처음 만난 한국 사람인 나를 살갑게 맞이해 주었다. 12시부터 시작한 이 잔치는 3시경이 되어서야 사람들이 모두 돌아갔다.

레티슈언가족과 누엔티리 가족은 친정나들이를 시켜준 나에게 선물을 주겠다는 제안을 했다. 그 선물이 바로 베트남의 전통의상인 ‘아오자이’이다. 흔히 가게에서 판매하는 것을 선물하는 것이 아니라 누엔티리의 친정 올케언니가 직접 만들어주겠다며 여러 사람 앞에서 목덜미부터 몸의 부분 부분을 열심히 쟀다. 3박4일의 일정을 마치고 내가 먼저 돌아오고 두 가족은 한 달간 친정에서 지내고 어제 돌아왔는데, 그 때 치수를 재었던 검정바탕에 황금빛 수를 놓은 ‘아오자이’를 갖고 와 나에게 전하며 이들이 한 마디 했다.

“선생님, 밥 많이 먹으면 ‘아오자이’ 안 예뻐요. 베트남 아가씨들은 아오자이 입으려면 며칠씩 굶어요. 선생님도 굶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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