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우조선해양과 관련된 두 가지 소식이 세인의 관심을 끌고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하나는 노동조합이 새조합장을 선출했다는 소식이고 다른 하나는 회사가 새경영주를 맞이한다는 소식이다. 두 가지 모두 예정된 일이기 때문에 크게 놀랄 일은 아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이를 계기로 지금까지 성공적이고 모범적으로 유지되어온 노사관계에 예기치 않은 변화가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조선분야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적인 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그 원동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노사 간의 공생적 협력이었다. 이런 협력관계에 불만을 갖는 조합원들도 있을 것이고 이들 가운데는 거칠게 투쟁했던 과거의 운동방식에 향수를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상생을 위한 노조의 협력을 더 많은 이윤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고착시키고 싶어 하는 사측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과거가 좋았고 옛 방식이 옳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했으면 생각과 방법도 변해야 살아남고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초기 자본주의는 자본가와 노동자 사이의 불평등 관계에서 출발하고 성장했다. 자본가는 노동자가 창출한 이윤을 독식하려는 욕망에 사로잡혔고 그 결과 자본가는 유산계급 노동자는 무산계급, 자본가는 지배계급 노동자는 피지배계급, 자본가는 노동자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강자 노동자는 노동력을 착취당하는 약자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그래서 맑스가 공산당 선언문을 발표했고,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계급투쟁이 전개 되었고, 전쟁이 일어났고,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찾고 경제적 빈곤과 소외에서 벗어나 인간답게 살아보려는 절박한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노동운동이 확산되었다.

노동자들은 강자인 자본가를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물질로 보상받기 위해 투쟁하는 것을 덕목으로 삼았다. 한 마디로 자본가와 노동자 간의 불평등 관계를 투쟁을 통해 물질로 보상받으려는 욕구가 크게 작용했던 것이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는 노동자에 의해 창출된 이윤을 자본가가 독점하지 않고 상당부분 노동자에게 재분배하는 체제로 변하고 있다. 경제에 대한 국가의 간섭이 강화되면서 자본가의 우월적 지위가 많이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삼성의 이건희 명예회장이나 현대자동차의 정몽구 회장 등과 같은 재벌이 자가용 타고 출근하면 그 회사 근로자도 자가용 타고 출근한다. 다만 차의 크기와 배기량에서 차이는 조금 있다. 외식은 회장님들도 하고 근로자들도 한다. 식당의 크기와 식대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서울에 사는 회장과 지방에서 일하는 근로자가 같은 시간에 연속극과 야구중계를 보면서 하루의 피로를 푼다. 아파트 평수와 TV의 크기가 조금 차이가 있을 것이다.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의 거실에는 오래된 20인치 TV 한 대가 있었다고 한다. 현재도 노동자와 자본가의 경제력에 차이는 존재하지만 규탄하고 투쟁해서 그 차이를 줄여야 할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다. 오늘날 노동자를 물질적으로 착취당하고 소외당하는 계층으로 규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 대신 노동자는 또 다른 형태의 종속관계와 소외상황으로 내몰리는 위험에 노출되어있다. 노동자에 대한 복지정책의 향상으로 경제적 불평등관계는 크게 개선되지만 정신적 불평등관계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배와 피지배, 독점과 분배, 소외 현상과 같은 문제는 과거와는 다른 차원에서 논의되고 해결되어야 한다. 우리사회도 물질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에서 정신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대로 접어들었다.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는 기회가 많고 이를 많이 소유하는 계층은 돈도 많이 벌고 출세도 빠르고 지배력도 높다. 정보와 지식의 독점은 자본과 생산수단의 독점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낳고 더 강한 지배력으로 작용하고 더 큰 소외를 불러일으킨다.

‘단결’ ‘타도’ ‘투쟁’ ‘쟁취’ ‘사수’ 등과 같은 전투적인 구호를 앞세운 노동운동은 근로조건 개선과 물적 보상의 요구를 관철시키고 노조의 결집력을 높이고 정치집단화하기 위한 수단으로는 적합할지 모르지만 지식과 정보력을 키우고 새로운 형태의 불평등 관계와 소외를 해소하기 위한 수단이 될 수는 없다. 지식과 정보가 소수특정인이나 특정계층에 의해 독점되지 않고 모두에 의해 공유되고 자유롭게 유통되는 사회에서 평등적 인간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은 높아지는 반면 억압과 소외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이것이 노동자가 바라는 평등사회구현을 위한 또 다른 방법이다. 가진 것 보다 아는 것이 힘이 되는 세상에서 노와 사는 머리를 맞대고 구성원들의 지식과 정보력을 키우고 정신적ㆍ문화적 소양을 쌓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성공하면 대우조선해양의 모든 구성원들은 빠르게 변하는 현대사회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는 능력을 지닌 원숙한 인격체가 될 것이고 회사는 세계 초일류기업으로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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