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영
/수필가

방학을 맞아 외지에서 제자들이 거제로 왔다. 지난 5월 ‘문학기행’ 때의 불참자들이기에 나는 그들과 함께 ‘포로수용소’로 갔다. 숙제로 읽었을 소설(장용학의 요한시집) 속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서이다.

'요한시집'의 주요 핵심은 ‘진정한 자유는 가능한가?'이다. 서(序) 부분의 ‘토끼의 우화’에서 토끼는, 세상의 전부가 동굴(窟)인 줄 알고 산다. 그러나 어느 날 그 어둠 속으로 스며드는 한줄기 빛을 발견하게 된다. 전자의 삶이 '주어진 대로 사는 삶'이었다면 빛은 진정한 나를 발견한 '실존적 자각'이다. 이 토끼와 동일시되는 ‘누혜’라는 인물은 서서히 세상의 벽을 깨닫고 그 벽을 뚫기 위해 전쟁(인민군)에 참여하게 된다. 그러나 포로가 되어 포로수용소에 갇히는 데, 그곳 역시 이데올로기를 빙자하는 온갖 만행이 자행되고 있을 뿐이다. 또 다른 전쟁터나 다를 바 없는 수용소 안에서의 시간이 ‘디오라마관’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술로 보여지고 있다.

그 P·W 군상들은 이 땅에 태어난 죄 밖에 없는, 우리의 ‘누혜’들이다. 인민의 영웅이었던 ‘그’가 타락한 인민의 적으로 몽둥이질, 발길질을 당하면서 반주검으로 목숨만 붙은 상태가 된다. 틈만 나면 누워 창공을 올려다보며 봉황새나 용이 되어 하늘로 비상하고픈 순수지향적 시인의 꿈이 사방이 차단된 살육의 공간에서 처절하게 무너져 내린다.

마침내 ‘포로폭동체험관’에서 그 인물이 구체화된다. 철조망을 부여잡고 공포와 자괴감에 휩싸인 표정으로 고함을 지르는 모형 앞에 서면 "나를 놓아 달라. 목이 빠지도록 자식만을 기다리는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게 해달라”는 절규가 들리는 것 같다. 진정 누구를 위한 전쟁이며 누구를 위한 희생인가. 움켜쥔 철조망과 손바닥 사이에서 흐르는 선혈을 보면 분노가 슬픔이 된다.

포로수용소를 견학하기 전에 고등학생 이상이라면 반드시 최인훈의 단편소설「광장」이나 장용학의「요한시집」을 읽어 볼 일이다. 그러면 미처 꽃피우지 못한 당대 젊은이들의 한과 자유의 중요성을 피부로 느낄 것이다. 누혜는 깨닫는다. 현실에서 자유를 획득할 수 없음과 이 벽을 자신의 힘으로 뚫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간은 인간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념을 준비하고 전쟁을 일으켰으나, 결국 전쟁으로 인해 얻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동족이 동족을 죽이는 행위만 끊임없이 반복될 뿐이다. 그리고 더불어 절감한다. 실제로 중요한 건 실존 그 자체일 뿐, 신이니 자유니 하는 인위적인 것들은 인간을 자유롭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신과 자유에로의 염원은 결국 또 다른 구속이요 벽임을 절감한 누혜는 진정한 자유를 위해 철조망에 목을 맨다.

소나무 숲 벤치에 앉아 두어 시간 동안 간접 체험한 ‘한국 전쟁’을 재점검 해본다. 입구를 들어설 때 소풍 나온 듯 즐겁던 학생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눈보라 휘날리던 1?4후퇴 장면, 두 동강 난 철교를 붙들고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던 난민들의 행렬, 그 속에서 들리던 아기 울음소리, 수용소 안의 처참한 일상, 그 참담한 역사의 트라우마가 후손들의 의식 속에서 ‘뭉클’하는 모습이다.

나는 그것을 보면서 생각한다. 인생이 영어 성적순으로 매겨지는 이 시대가 저 청년들에게 과연 애국심을 발휘할 자유는 주고 있는 것인가?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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