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돈 묵
/거제대 교수

옛 문헌에 보면 도도(盜道)와 기도(欺道)가 나온다. 도둑질을 해도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고, 사기를 쳐도 꼭 명심해야 할 도리가 있다는 말이다.

그것을 살펴보면 얼마나 우리 인간이 인간이기를 고집하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헤아렸는지를 알 수 있다. 도둑의 도(道)에는 ‘남의 집에 무엇이 어디에 있는가를 아는 것은 지(智)요, 앞서 들어가는 것이 용(勇)이요, 뒤에 나오는 것이 의(義)요, 고르게 나누는 것이 인(仁)이요, 뒤주 속에 한 끼 지어 먹을 양식을 남겨두는 것이 예(禮)다.’라고 되어 있다. 또 사기꾼의 도(道)에는 ‘남을 속이고자 깍듯이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예(禮)요, 속이다가 들통 나면 깨끗이 무릎을 꿇는 것이 용(勇)이요, 속이고 취한 것이 적으면 부지런히 더 벌라고 훈계함이 지(智)요, 과부나 외로운 사람은 속이지 않는 것이 인(仁)이요, 우환을 겪고 있는 사람을 속이지 않는 것이 의(義)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세인들이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도둑질과 사기 행위에도 짐승과는 다르게 인간임을 넌지시 일깨우려했던 지혜를 볼 수 있다. 아무리 큰 비행을 저질러도 인간임은 부정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특히 여기서 인간임을 가장 실감케 하는 것은, 뒤주 속에 한 끼의 양식은 남겨두라는 것과 과부나 외로운 사람이나 우환을 겪고 있는 사람은 속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사욕에 찬 짐승들은 인간과는 달리 작은 것과 나약한 것을 먼저 삼키는 것이 그들 행동의 첫째가 되고 있는 반면에, 사람은 오히려 배려해 주는 인간미가 있다는 것이다.

짐승들이 제 먹이로 나약한 것을 취하는 데는 오로지 힘의 원리에 의존하는 것일 게다. 힘을 적게 들이고 확실히 취하여 내 입에 넣을 수 있다는 실리 앞에서 그들은 전혀 머뭇거릴 이유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짐승이기 때문이다. 목숨을 송두리째 앗아가는 일이니, 상대의 아픔과 절규가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오직 내 눈에 잡힌 먹이만 취하면 되는 것이 그들의 생존방식이다. 이 같이 자기만의 욕심만 채우면 되는 것이 짐승들의 세계이다.

그러나 인간은 다르다. 남을 생각할 줄을 안다. 그래서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에게는 힘을 덜어주려 하는 것이 인간의 인지상정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도둑질을 하고 사기를 쳐서 먹고 살아도 어려운 처지의 사람에게는 전혀 접근하지 않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다른 나약한 자의 소유를 탐하거나 빼앗으려는 행동은 하지 않았고, 오히려 도우려했다.

그래서 제 새끼도 기를 줄 모르는 것을 식물이라 칭하고, 제 새끼만 기를 줄 아는 것을 동물이라 칭하며, 남의 나약한 새끼까지도 보살피고 기를 줄 아는 것을 인간이라 칭한 것이 아닐까.

그런데 요즈음에 와서 짐승들을 닮아가는 행위가 가끔 눈에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결코 사람의 행위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추악한 모습이다. 왜 이런 모습이 나올까? 그것은 쉽게 짐승들의 행위에서 답을 얻을 수 있다. 기왕에 사람이길 저버리고 나면 짐승과 같아져도 물욕만 채우면 된다는 사고방식으로 무장하게 된다. 짐승들이 힘없는 것을 공격해서 제 배를 채우듯이, 이런 무리들은 말 못하고 저항하지 못하는 약자를 후리려 한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초등학생 납치 성폭행 행위에서부터,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 행위, 노인들을 홀려서 인증되지 않은 약품을 강매하는 행위, 어수룩한 시골 사람들과 교통사고로 어려움에 처한 환자들에게 접근하여 사기 치는 행위, 미성년자에 대한 원조교제 행위, 어려운 세입자들의 호주머니를 터는 주인의 대책 없는 전세금 인상 행위, 임대 아파트의 근거 없는 임대보증금 책정 행위 등 나약한 사람들을 상대로 이루어지는 추악한 모습은 이루 다 열거하기에 벅차다.

전에는 아무리 살기가 어려워서 도둑질을 하고, 사기를 쳐도 그 곳에는 반드시 인간이기를 고집하는 도(道)가 있었다. 그 옛날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에도 이 도가 지켜졌는데, 훨씬 살기 좋아졌다는 오늘에 와서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안쓰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아픔은 밀쳐두고 내 것만을 챙기는 세상이라 해도 이것은 아닌 것이다. 적어도 인간이기를 고집해야 한다. 그 위에서 모든 행위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젠 이런 범법자들에게 도도(盜道)와 기도(欺道)라도 가르쳐야 하는 것일까. 적어도 우리 사회에서는 짐승들의 사회에서나 있는 힘 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후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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