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고려대 명예교수
얼마 전의 일이다. 거제의 한 작은 마을에서 그 곳이 고향인 ‘토박이’이자 ‘박힌 돌’ 격인 주민과 거제 인근 지역에서 태어나 오래전에 거제로 이주해 온 ‘외지인’이자 ‘굴러온 돌’ 격인 주민 사이에 작은 말싸움이 벌어졌는데, 그 때 토박이가 외지인에게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때문에 이웃 주민들은 눈살을 찌푸렸고 외지인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여기가 어딘데 굴러온 돌이 감히 박힌 돌을 밀어 내려고 덤비느냐!” 라는 말 때문이었다. 속된 말로 토박이의 텃세가 작동한 셈이다. 홧김에 불쑥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말임에 틀림없다.
20만이 넘는 거제시민들 가운데 거제에서 출생하고 교육받고 생활터전을 잡은 토박이의 비중은 생각보다 그렇게 높지 않다. 경상도 언어를 사용하는 시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이들 모두가 거제 토박이들은 아니다. 같은 경상도 언어를 사용해도 이들 가운데는 상당수가 가까이는 사천 남해 진주 마산 밀양 창원 부산과 같은 거제의 동일생활권이나 대구 안동 김천 포항 울산 등지에서 굴러온 경상도 외지인들이다.
멀게는 호남과 충청권 그리고 수도권은 물론 평안도 함경도에서 굴러온 돌들도 거제 땅에 이미 깊이 박혀있다. 작은 마을이나 대단위 아파트단지를 가릴 것 없이 토박이와 외지인이 이웃으로 어울려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거제의 현실이다. 인연이나 안면도 전혀 없던 사람들이 이웃이 되어 생활하는 과정에서 마찰과 갈등이 발생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현상이다. 집 장만하고 자식 낳아 키우고 생활터전 닦고 세금내고 정 붙이고 살면 그곳이 바로 고향이고 그곳 시민이고 토박이이고 박힌 돌이다.
꿈과 희망을 안고 거제를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는 토박이에게 악의적으로 해코지를 하거나 갈등을 조장하려는 사람들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창문을 열면 신선한 공기와 함께 똥파리도 함께 날아들듯 이들 가운데는 사기꾼 도박꾼 투기꾼 제비족 범죄자 등과 같은 불청객들도 묻어와서 거제의 좋은 공기와 맑은 물을 흐려놓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부류의 인간들은 분명히 거제시민에게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는 쓸모없는 굴러온 돌이기 때문에 이들에 대하여는 모두가 힘을 모아 위세와 텃세를 부려도 무방하다.
오늘날 거제가 이 정도의 성장을 이룩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요인은 토박이들의 강인한 의지와 열정이고 그 다음으론 꿈과 희망을 품고 거제로 찾아든 타 지역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다. 토박이와 외지인의 조화와 협력이 거제를 일지감치 3만 불 시대의 반열에 올려놓은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지리적 여건과 산업구조의 특성상 거제는 현재는 물론 앞으로도 성실하고 능력 있는 외지인들을 많이 필요로 하고 따라서 그들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는 여건과 분위기가 마련에 각별한 준비를 하고 신경을 써야 한다.
이 시각에도 위로는 시장을 비롯해서 모든 공무원들과 시의원들, 지역상공인들과 마을 이장에 이르기까지 외지인들의 투자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크고 작은 증세를 지니고 산다. 증세 가운데 가장 심각하고 위험한 것은 자폐 증세라고 한다. 변화와 현실을 받아드리지 않으려 하면서 외부세계와 단절하고 자신을 닫아버리는 증세, 자신만의 세계에 틀어박히려는 정신질환인 자폐증은 선천적이기도 하지만 후천적으로 발생하기도 하는데 이는 얼마든지 치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자폐 증세는 인간뿐만이 아니라 집단이나 사회나 국가에도 나타나는데 은둔집단 폐쇄사회 독재국가 형태가 바로 그것이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가장 심한 자폐 증세에 걸려 있는 사회가 바로 북한이다. ‘주체’ ‘자력’ ‘민족’ 과 같은 폐쇄성이 짙은 구호로 인민을 최면에 걸었고 사회를 쇠퇴와 파멸의 골자기로 빠트렸다.
통념적으로 섬 하면 외진 곳, 외부세계와 왕래가 적은 곳, 배타적 기질이 강하고 텃세가 심한 곳, 전래문화가 잘 보존된 곳 등으로 인식된다. 그래서 섬과 육지, 섬나라와 대륙국가, 섬사람과 육지사람 사이에는 기질과 전통과 문화에서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거제는 이미 오래전에 섬의 범주에서 벗어났고 섬의 특성도 많이 희석된 상태다.
그렇다고 해서 오랜 세월 동안 간직해온 거제도 특유의 문화와 전통이 모두 사라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섬 기질만큼은 미련 없이 잊고 버리려는 의지와 결단이 필요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 낸다’ ‘우리가 남이가’ 와 같은 말은 토박이 사이에 결속을 다지는 친화력을 높이는 장난기 어린 구호로서는 매력이 있을지 모르지만 텃세를 발동하고 배타성을 강조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자칫하면 자폐 증세를 초래하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지도 모른다. 세계 속의 거제를 실현하려는 시민들은 박힌 돌, 굴러온 돌, 토박이, 외지인 등과 같은 배타심을 조장하는 언어사용을 가급적 삼가 하면서 세계 속의 거제가 되고 세계시민의 일원이 되기 위한 정신자세와 생활습관을 다져나가도록 노력하기 바란다.
이동열 skj6336@kornet.net
<저작권자 © 새거제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영규 시의원 '경남 의정봉사상' 수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