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영 민
/본지 편집이사

필자가 중학교 다닐 때의 일이다. 영어선생님이 본인은 학교를 다니면서 ‘왜놈’들에게 지지 않으려고 영어 사전을 ‘외워먹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외워먹는다’는 말에 호기심이 발동한 학생들의 질문에 선생님은 영어사전을 6개월 동안 다 외우기로 작정하고 얇은 습자지로 만들어진 사전을 한 페이지 외울 때 마다 물에 말아서 먹었다는 이야기다.

영어선생님은 습자지를 물에 말아 먹는 것은 건강에 해로우니 우리들에게 그렇게 하지는 말라고 하면서 얇은 영어사전 한권쯤은 외워보는 것도 사나이의 결심이라고 권했다. 사실 필자는 중학생 3년 동안 수십 번을 결심하고 영어사전 외우기를 강행했으나 그때마다 작심삼일로 끝나고 말았다. 초심(初心)이란 무엇을 뜻하는 말일까. 처음 마음먹은 것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는 뒤풀이 뜻도 누구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기 쉬운 것이 바로 초심이다.

어떤 일을 시작할 때는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에 잠기게 된다. 그러므로 세심한 주의를 하여 바로 태도를 겸허하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초심이라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원리원칙이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원칙대로 행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망각이란 때로는 삶의 지혜일수도 있으나 그 반대로 망각해서는 안 될 것들이 있다. 누구나 정치에 입문 하려고 한다면 결심하기까지 순식간의 충동적 마음으로 결정한 정치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당선 후에는 어떠한 처세를 해야 하고 어떻게 시민을 위해 봉사할 것인가를 구상한 뒤 그 가능성이 엿보였기에 나섰을 것이다.

그리고는 이를 악물고 모종의 결심을 했을 텐데 이것이 초심이다. 그러나 초심으로 돌아가지 못한 한 정치인으로 인하여 거제는 총선열기가 식기도전에 또 다시 선거열풍에 휩싸여 있다.

거제시 제1선거구 경남도의원이 한나라당에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후보 공천 신청을 위해 임기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사퇴했기 때문이다. 도의원의 중도사퇴는 지난 총선기간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부지역에선 시민단체가 주민들의 서명을 받아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내기도 했지만 거제는 시민단체를 비롯해 지역언론과 시민들은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유권자와 한 약속을 깨뜨려 정치불신을 키우고 지방선출직을 국회의원의 도구쯤으로 전략시킨 점을 결코 가볍게 볼일이 아닌데도 말이다. 중도사퇴의 문제점은 우선 후임을 뽑는 선거비용이 만만치 않다. 지역의 면적과 인구 등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도의원 보궐선거는 3억원 정도 들것으로 거제시선관위 측은 추산하고 있다. 또한 선거후 득표율에 따라 선거비를 보전해주는 비용도 1억원에 이를 것으로 선관위는 예상하고 있다. 이 선거비용은 경남도가 전액 부담한다.

행정견제자의 공백도 큰 문제다. 단체장이 사퇴한 곳은 보궐선거 때까지 부시장, 부구청장, 부군수까지 직무를 대행하지만 도의원은 직무를 대행하는 제도가 없다. 도의원이 없는 곳에서 행정견제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래저래 지역주민들만 불이익을 당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초심을 잃은 사람의 개인적 야심을 위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각 지방 보궐선거는 개인의 정치적 포부나 정당의 당리당략에 의해 중도 사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악순환 되는 현실의 선거법 규정에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으나 입법부는 그대로 방치하고 있는 현실이다. 민주사회에서 개인의 선택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 돼야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권력 추구를 위해 주민이 뽑아준 선량의 자리를 헌신짝 버리듯 하는 사람들이 선거에 다시 나오지 못하도록 18대 국회가 무책임한 중도 사퇴와 보궐선거 출마를 제한하는 선거법 개정과 제공자에게 보궐선거비용 책임을 부과할 수 있는 법적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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