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순 련
/신현초교 교사

수업이 끝나면 2학년인 하은이와 현경이, 1학년인 종은이는 어김없이 바다로 갔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기도 하였지만 아이들은 그 시간이면 바닷물이 한참이나 밀려나가 조개를 캐기에 좋은 시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갯벌을 아무리 파 헤쳐도 내 눈엔 새끼 조개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눈엔 갯벌 속에 꼭꼭 숨어있는 작은 조개를 찾아내는 숨은 재주가 있었다.

오늘도 퇴근 시간쯤이면 조개가 반쯤이나 찬 바가지를 가지고 나타나겠구나 생각하는 데, 아직 퇴근 시간이 일렀는데도 하은이와 현경이가 교무실로 들어섰다.
여자 아이들의 손엔 조개바구니 대신 예쁜 꽃으로 만든 목걸이가 들려 있었다. 현경이와 하은이는 내 목을 끌어당겨 그 꽃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었다. 꽃을 따서 얼마나 주물럭거렸는지 아카시아의 작은 꽃망울들이 벌써 축 늘어져 있었고, 사이사이에 함께 엮어 놓은 노란색 민들레 꽃잎들은 떨어져 나간 잎들이 붙어 있는 잎보다 더 많아보였다.

스승의 날이라는 소문이 이 섬까지 날아와 아이들의 귀에까지 도착했나보다. 여자 아이들은 조개를 캐는 대신 선생님께 드릴 선물을 만들기 위해 뒷산으로 올라갔다 왔나보다. 나는 아이들이 걸어준 목걸이를 하고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달콤한 아카시아향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목걸이를 걸어준 아이 둘은 교실 뒤편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고 나는 다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조금 있다가 또 문이 드르륵 열렸다. 이번엔 종은이가 불쑥 들어섰다. 종은이는 함께 가지 않았구나 하고 머리를 드는 순간 그 아이의 손에 잡혀있는 새끼 토끼 한 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회색빛 고운 털에 하dis 점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아기 토끼는 두 귀가 손에 잡혀 몹시 불편한 듯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종은이는 그 새끼 토끼를 내 앞에 내밀었다. 오늘이 스승의 날이어서 토끼를 선물로 내게 준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얼떨결에 그 토끼를 받고는 종은이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하은이 현경이 두 누나들이 꽃목걸이를 만들어 주는 것을 보고 자기는 집에서 키우는 토끼를 가져왔나보다. 나는 토끼 선물에 너무나 황당해서 그 토끼를 받기는 했지만 그 토끼를 과연 어머니께 말씀드리고 가져왔는지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그 토끼를 집에까지 가져가는 일도 사실 걱정이 되었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고 종은이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종은이는 의기양양하게 교무실문을 닫은 후 집으로 돌아갔다. 나중에 카페리를 타러 가면서 종은이 어머니께 아기토끼 이야기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시 일을 시작하는데 또 다시 교무실 문이 열렸다.

학생이라고는 몇 명밖에 아니어서 이 시간엔 올 사람이 없는데 하고 고개를 드니 조금 전에 돌아갔단 종은이가 서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종은이의 손에는 또 한 마리의 토끼가 들려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엔 아기토끼가 아니라 제법 세월을 보낸 듯한 어미토끼였다. 종은이의 손에 잡힌 어미토끼는 종은이와 나를 번갈아가며 두 눈을 껌뻑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어미토끼도 가져가세요. 아기 토끼가 없어지니까 엄마토끼가 풀도 먹지 않고 울어요.”
종은이는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 기가 찼다.
오랜 학교생활을 하면서 여러 번의 스승의 날을 보냈지만 토끼를 선물로 받은 적은 한 번도 없었으며, 또 이렇게 어미토끼까지 데려가라는 종은이의 착하디 착한 마음씨에 나도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슬픔에 어미토끼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 때 종은이 어머니께서 교무실로 오셨다. 스승의 날인데 누나는 읍내에 가서 카네이션을 샀는데 자기는 읍내에 갈 수가 없으니 선생님께 자기가 기른 아기 토끼를 주고 싶다고 하여 그 청을 들어주었다고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 내려온 후 토끼장에서 키억키억 울고 있더란다. 사연인즉 아기토끼를 떠나보낸 어미토끼가 슬퍼서 빙빙 돌며 울고 있다며 어미토끼도 함께 보내달라고 떼를 쓰더란다.

종은이 어머닌 너무나 기가 차서 종은이의 의견을 존중하여 지금 어미토끼를 선생님께 보내기로 했다며 두 마리를 함께 넣어가라며 커다란 바구니 한 개를 들고 오셨다.
나는 도저히 그 두 마리의 토끼를 가져올 수가 없어서 두 마리를 다시 가져가라고 하자 이번엔 종은이 어머니께서 완강히 반대를 하시며 두 마리 토끼를 바구니에 담아주시고 가셨다. 나는 카페리를 타고 나오며 두 마리의 토끼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그 때 그 토끼는 우리 집에서 번식의 축복을 받아 10년이 넘는 지금까지 종족을 유지하고 있다.

오월은 어린이날이 있는 달이다. 어른들은 요즈음 아이들은 정말 인정이 없다고 한다. 말도 안 듣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녀석들이 자라면 어떻게 이 나라를 맡기겼느냐고 걱정이 태산이다. 이것은 어른들의 기우이다. 요즈음 아이들은 참 똑똑하다. 아는 것도 많고, 옛날 우리가 느꼈던 그 아이다운 심성도 절대 잃어버린 것이 아니다. 아직도 어린이들은 봄바람과 이야기를 할 줄 알고, 절룩거리는 강아지를 걱정할 줄 알고, 부모님의 은혜를 갚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어른들이 우리 아이들의 그 고운 마음씨를 찾아볼 수 있는 마음을 잃어버린 것이 아닐까?

현경이, 하은이, 종은이.
해마다 오월이 오면 내 눈앞엔 두 눈에 글썽글썽 눈물을 머금고 어미토끼를 들고 섰던 종은이의 모습이 나타난다. 이어서 내 목에 걸어주었던 아카시아와 민들레 목걸이에서 풍겨나는 꽃 냄새가 솔솔 코끝을 후빈다.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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