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한 주
/변호사(김&구 종합법률사무소)

유신독재시대의 유명한 저항시인이자 생명운동을 주창해온 김지하 선생이 1970년 잡지 ‘사상계’에 발표한 ‘오적(五賊)’이라는 시(詩)가 있다. 재벌, 국회의원, 고위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일제시대의 을사오적에 비유하여 그 시대의 오적으로 꼽았다. 특권계층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와 해학이 돋보인다. 다섯 도적을 표현하는 데 사용한 한자마다 개(犬)자를 넣어 풍자의 극치를 보여 주었다. 서사시에 가까운 분량에다 마치 한편의 판소리를 보는 듯 하다. 물론 이 시를 게재한 사상계는 폐간되었고, 작가와 편집인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다.

국회의원을 표현한 시의 한 대목을 보자.
“곱사같은 허리, 조조같은 실눈, 가래끓는 목소리로 응승거리며 나온다......(중략), 치자즉도자(治者卽盜者)요, 공약즉공약(公約卽空約)이니...”(이하생략).
그 때나 지금이나 국회의원들의 공약은 헛공약 이고, 나랏돈은 눈먼 돈이었던 모양이다.

세월도 흘렀고, 권력을 잡은 사람들도 돌고 돌아 지금에 이르렀다. 오늘의 대한민국에는 도적들이 없는가? 천만 명에 가까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열악한 근로환경과 고용불안에 내몰리고, 물가와 부동산 값은 천정부지로 오르고, 조류독감으로 전국의 닭과 오리가 모조리 산채로 묻히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축산농민의 자살이 잇따르고, 광우병의 공포로 온 국민이 떨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만든 자들이 현대판 도적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이 도적이 아니다. 오히려 나라를 말아먹고, 국민의 마음과 유권자의 표를 속임수로 훔치고, 졸부들과 재벌들을 위해 서민들의 고혈은 짜고, 불로소득과 편법을 이용해 부자가 된 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주는 것이 더 큰 도적질이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병든 소의 수입을 강요하여 굴욕적인 협상을 하게 한 미국도 큰 도적이고, 그 협상에 서명한 자들도 도적이고, 소위 신자유주의주의 정책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한 자들도 도적이고, 이러한 도적들을 비호하고 허물을 축소하여 여론을 호도하는 언론들도 역시 도적과 다름없다. 국민의 고통과 안위에는 관심도 없으면서 세금으로 월급만 받아 챙기는 국회의원이나 장차관, 청와대의 고위 공직자들도 예나 지금이나 도적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오적(五賊)이 아니라 칠팔적(七八賊)은 더 될 것 같다. 물론 일부(一部)다.

앞으로도 수많은 도적들이 나타날 것 같아 암울하다. 물류비용을 줄이고 경제를 살린다는 미명하에(물론 그 효과도 의문이다.) 다수의 국민들이 반대하는 한반도 대운하 공사를 강행하여 환경을 파괴하고, 부동산투기를 부채질하고, 건설업자들의 배만 불린다면 그 또한 도적질이나 다를 바 없다.

국민의 머슴이 되겠다던 저들 앞에 주인인 국민은 정작 길거리에서 촛불을 밝히고 서 있다. 미래의 주인인 청소년들 까지도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누가 우리 아이들에게 까지 눈물을 흘리게 하였는가? 두 말 할 것도 없이 위에서 언급한 도적들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학교에서 주는 단체급식을 안 먹겠다며 엄마에게 도시락을 싸달라고 졸라 됐다. 호들갑 같아서 타일러 볼까 하다가 그만뒀다. 자기 나름대로 항의의 의사표시라고 하니 어쩌겠는가?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짝이 없다.

그래도 민주국가에서 적법한 절차에 따라 선출되고 국정을 맡아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니 마지막 남은 미련으로 춘향전에 나오는 이몽룡의 시(時) 한 수를 권한다. 도적으로 몰리는 것이 억울하다면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주인인 국민을 생각할 때마다 되새겨 보기 바란다.

"금준미주(金樽美酒)는 천인혈(千人血)이요.
금술잔의 아름다운 술은 천사람의 피요
옥반가효(玉盤佳肴)는 만성고(萬姓膏)라.
옥쟁반의 좋은 안주는 만백성의 기름이라.
촉루락시(燭淚落時) 민루락(民淚落)이고
촛불에 촛농이 떨어질 때 백성의 눈물도 떨어지고
가성고처(歌聲高處) 원성고(怨聲高)라.
노랫소리 높은 곳에 원망소리 높았더라"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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