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돈 묵
/거제대 교수

타오르는 화마 앞에 온갖 재물이 쓰러져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도 나 몰라라 하는 것을 우리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고 말한다. 이 말에는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는 사람에 대한 야속함이 들어 있다. 충분히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손을 놓고 있는 사람에 대한 서운함을 짙게 나타낸 말이다.

그런데 희한한 사건이 벌어졌다. 제 집에 불이 나서 난리인데 주위사람들이 들어가 불을 꺼 줄 통로를 모두 걸어 잠그고 접근을 못하게 한 것이다. 사람들은 ‘강 건너 불구경’을 어쩔 수 없이 하고 말았다. 저 강을 어찌 건널 것인가를 곱씹으며, 발만 동동거렸고 안타까워하면서도 바라보고만 있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 사건은 오랫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남아 지워지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잠겨진 문 안에서 그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집안싸움에 제 집 무너지는 줄도 모르고 미쳐 있었던 것이다. 제 가족끼리 멱살이나 잡고 쌈질이나 하다 보니, 처음에는 그래도 안타까워 바라보던 사람들마저 이제는 모두 떠나고 아무도 없다. 이 수치를 주위 사람들에게 어떻게 지우고 살아갈 것인지 걱정이다.

오늘이 4.9총선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이번 선거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은‘강 건너 불구경’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러한 불구경은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강요당한 일이다.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는 철저하게 국민을 외면한 정치인들만의 쌈판이었다. 어떠한 정책을 내걸고 국민에게 호소한 바도 없고, 자신들의 정책의 타당성을 홍보한 적도 없다. 오로지 당이라는 성벽 안에서 패거리 쌈질만 거듭했다. 참으로 희한한 선거 판에 나가 국민들은 투표를 해야 한다. 한 시간 후면 투표가 시작되는데 아직도 누구 하나를 선택하지 못하고 앉아 있다. 이른 새벽 잠자리에서 나와, 망연히 앉아만 있는 내 모습이 우습기도 하다.

나의 게으름에서 비롯된 일이겠지만, 이번에 지역을 대표한다는 후보의 얼굴을 한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누구인지도 나는 자세히 모른다. 겨우 집으로 배달된 홍보지에서 다섯 사람이 출마했다는 사실과 전에부터 얼굴이 좀 알려진 사람이 있다는 정도 외에는 그들이 내건 이슈도 전혀 알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누구를 찍어서 우리의 대표를 선출할 것인가.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지역민을 대변하고, 막중한 국정을 의론해야 할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이렇게 치러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국민을 떠난 정치는 있을 수 없음을 한국의 정치인들은 깊이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선거에서 국민을 외면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행위는 다시 일어나서는 안 된다.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논하려면 국민의 신뢰를 얻는 후보가 국회로 가야 한다. 당의 성벽 안에 가려두고 쌈질이나 하다가 무조건 투표해 달라고 조르는 꼴은 더 이상 있어서는 안 된다.

무슨 낯으로 국민에게 한 표를 달라고 조를 것인가. 무엇을 한 사람이고,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데 당에서 공증했으니 무조건 찍어 달라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짓이다. 연고도 없는 사람을 특정 지역에 공천하겠다는 생각부터 국민을 우롱한 처사다. 정치인들은 우리 국민들의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다.

이번 선거를 바라보면서 우리 유권자들이 앞으로는 더 이상은 우롱당하지 말자고 권하고 싶다. ‘이번에 뽑아만 준다면’ 하고 애걸하는 후보는 뽑지를 말자. 그동안 지역을 위해 그가 해 놓은 결과를 두고 선정을 하자. 적어도 후보가 되기 이전에 지역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는가, 얼마나 큰 애정을 가지고 지역의 일을 해 왔는가를 가름하여 국회로 내어 보내자. 평소에는 지역의 일에 얼굴도 보이지 않다가 선거 때만 되면 큰 일군을 자처하고 나서는 후보에게는 표를 주지 말자.

누가 당선되든 국민들에겐 관심이 없는 선거를 만든 것은 정치인들의 엄청난 잘못이다. 사상 최저치의 투표율을 예상하고 있는 이번 선거는 철저하게 정치인들에게 반성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멀어져 간 국민들의 마음을 하루 속히 달래는 정책이 마련되어 온 국민의 힘이 하나로 뭉쳐지길 소망해 본다. 이번 선거 때와 같은 생각에서 정치를 한다면, 정치인과 국민은 영원히 남남이 될 것이다. 국민은 국민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움직이는 국가는 절망뿐이다. 다 같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힘을 모아야 희망이 있다.

저 멀리 떠나간 국민의 곁으로 다가가 그 동안의 오만을 용서 받고, 신뢰를 얻어내야 정치가 살아난다. 그 동안 강 건너에서 불구경만 시켰던 국민들을 모셔 와야 한다. 당의 성벽 안에서 빚어진 싸움도 국민들의 뜻을 헤아려 해결해야 한다. 진정한 반성이라면 국민은 너그럽게 정치인들을 용서하고 신뢰할 것이다. 온 국민이 내 나라 일을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강을 두고 떨어져 있던 국민과 정치인이 함께 만나야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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