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한 주
/변호사

바야흐로 춘삼월이다. 매화가 봉오리를 열고 화사한 자태를 뽐내던 게 며칠 전 인 것 같은데 벌써 바람에 흩날리고 있다. 그 자리는 다른 꽃들이 경쟁하듯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아마도 얼마지 않아 반팔 옷을 입어야할 것이고 그 다음에는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찬바람에 옷깃을 세워야 할 때가 오는 것이 세상의 이치고 세월의 무상함이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고 했던가! 직역하면 ‘열흘을 붉은 꽃은 없다’가 되겠지만 한 번 성한 것은 얼마 못가 쇠한다는 뜻으로 통하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다.
권불십년(權不十年)이란 말도 같은 의미다. 권력도 흥(興)이 있으면 망(亡)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흥함에 그 배경이 있고, 망함에는 그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천년을 가는 권력이 있는가 하면 불과 며칠 만에 추풍낙엽이 되는 경우도 있다.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우리는 쉽게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또 하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왕조가 바뀌고 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권력의 본질이 바뀌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수많은 왕이 교체를 거듭한다고 해서 사회의 구조가 바뀌는 것이 아니다. 본질은 같은 봉건제도에 터 잡은 봉건왕조일 뿐이었다.
약간의 제도적 차이가 있다고 하여 지배층이 바뀌는 것도 아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세력이 피지배자를 더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수단의 변경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이었다.

진정으로 권력이 바뀌는 경우는 단 한 가지 경우다. 그 동안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소외되어 온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만드는 경우가 그것이다. 기존의 사회질서와는 질적으로 다른 질서를 만들고, 기존의 낡은 가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지향하는 권력으로의 교체야 말로 진정한 권력의 교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사회는 어떤 정당에서 다른 정당으로의 교체는 반복되었지만 질적으로 다른 정권으로의 교체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것을 두고 트집을 잡겠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판단은 당연히 존중되어야 한다. 다만, 부와 정치적, 사회적 권력을 가진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은 출발부터가 불평등하고 그 결과는 예정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함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원래 그렇지!’라고 한다면 할말이 없다. 향후라도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진정한 권력의 교체를 바라는 사람들도 남을 탓하기 전에 후회를 남기지 않을 정도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준비에 실패한 사람은 결국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후회는 항상 뒤늦게 오기 마련이다.

새삼 유학자 주희(朱熹)가 쓴 주자십회(朱子十悔, 인생을 살면서 열가지 후회를 다룬 글이다.)의 한 가지가 떠오른다.
‘춘불경종추후회(春不耕種秋後悔)’가 그것이다. 봄에 밭을 갈아 씨 뿌리지 않으면 가을에 후회한다는 뜻이다. 흔한 이야기지만 새로운 가치와 질서를 지향하는 사람들이 이 시기에 가슴에 새길 만한 글이 아니겠는가!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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