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나라에 김성탄(金聖嘆) 이라는 학자가 있었다. 어느 날 여름 김성탄은 산중에서 장맛비를 맞아 인근 절간에 약 열흘간 몸을 맡기게 되었는데 그 동안에 33가지 인생의 즐거움을 조목조목 적어놓은 글이 전래되고 있다.

고서(古書)에 명기된 글 몇 가지 낙(樂)을 한 칼럼니스트가 발췌하여 일간지에 게재한 내용이 생각나서 받아 써본다.

“저녁 먹은 후 할 일 없이 무심코 옛 문갑을 뒤져본다. 거기에서 옛날 그에게서 돈을 빌려간 수십 장의 차용 문서가 나온다. 그 빚쟁이 가운데는 이미 고인이 된 사람도 있고 살아 있는 사람도 있다. 이 문서 다발에 불을 붙여 타오르는 연기가 멀리 사라져 가는 것을 본다. 그 어찌 아니 즐거울 수 있으랴.”

“10년을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 하나가 찾아온다, 예와 다름없이 빈털터리 친구다. 이 친구 다락에 맞아 앉혀놓고 아내에게 ‘소동파'의 아내처럼 술 좀 사올 수 없나 하고 귀뜸을 한다. 서슴없이 은비녀를 뽑아 팔아 친구를 대접하고도 돈이 남으니 그 어찌 아니 즐거우랴."

“한 가난한 서생이 지묵 값이 없어 찾아 왔다가 말을 못 꺼내고 머뭇거리는데 이를 낌새채고 뒷마당에 데리고 가서 얼마가 필요한가 물어, 비녀판 값 떼어주고 바쁘겠지만 한잔하고 가는 게 어떤가 하고 물으니 아~ 아! 그 아니 즐겁지 아니하랴.”

김성탄이 이 지경으로 살았으니 태어날 때 공자가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었겠다. 실로 김성탄의 집은 공자 성묘 옆에 있었는데 그가 태어날 때 그 성묘에서 한탄하는 소리가 났다 해서 그 이름을 성탄으로 지었다고 한다.

거제에 사는 우리뿐만 아니라 세상 거의 모든 사람들은 남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취(取)하여 그 낙을 삼는 것이 일반적인데 김성탄의 33가지 낙은 모두 남에게 베풀면서 얻는 낙으로 시종을 일관한다.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풍습이 있었다.

‘백팔적덕(百八積德)'이라 하여 우리 할머니들은 1년 동안에 108번 씩 무엇인가 남에게 베풀면 덕(德)이 쌓이고 그 덕에서 낙(樂)이 찾아온다는 것을 믿고 선행을 베풀었다. 돈이 많아 남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주어야 하는 물질적 선행보다 사소한 것이라도 몸과 마음이 합쳐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베풂을 마다한 이가 우리의 할머니들이었다.

이를 테면 놀고 있는 남의 집 아이를 불러들여 해진바지춤을 기워준다든지, 남의 집 갔다가 흩어진 신발을 가지런히 해놓고 온다든지, 길을 묻는 행인에게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 준다든지, 코흘리개 어린아이를 보면 붙잡아 코를 닦아주고 누룽지를 한 움큼 안겨준다든지, 적당한 일이 없었던 날이면 먹다 남은 씨레기 나물이라도 바가지에 담아 다리 밑에 노숙하고 있는 날당패들 갖다 주기라도 하여 그날그날 덕 쌓는걸 거르지 않았던 것이다. 물질만능주위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고유의 미풍양속이 쉽게 이해될지는 모르겠지만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우리의 할머니들은 이처럼 작은 덕을 쌓은 것으로 마음의 평화를 누렸으니 그토록 가난했으면서도 각박하지 않은 인심으로 살아 날수 있었을 것이다.

거제의 대표적인 대형교회로서 그 명성(?)이 자자한 고현교회의 내부갈등과 분쟁이 법정공방으로 시끌벅적 하더니 최근엔 폭력사태로 이어지면서 거제사회일각에서 ‘바람직하지 못한 이상한 잡음을 일으키는 종교단체'란 빈축을 사고 있다.

상대적 빈곤감이며 상대적 배리감이 각계각층에 팽배돼있는 우리사회일수록 이 같은 ‘주는 즐거움'을 실천해야 할 교회에서… 하는 아쉬움이다.
교회를 가리켜 낙원(樂園)이라 한다면, 그곳에는 낙이 있어야만 하고 이 낙은 하느님의 가르침과 조상의 얼을 받들어 성도 (聖徒)들이 스스로 만들어 내야 한다.

이동열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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