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 진 오
/본지 대표이사

S형!
첫 걸음부터 휘청거리는 이 명박 정부의 출발에 국민들이 적잖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가 산뜻하게 출발하기를 바랐던 국민들은 정부조직의 군살을 빼려던 대통령직 인수위의 계획이 무산되더니 ‘조각(組閣)인사’도 누더기나 다름없는 꼴이 되는 것을 보고 말았습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8일 만에 열린 첫 국무회의는 ‘이 명박 국무회의’가 아니라 노 무현 정부의 국무위원 4명을 꾸어다 쓰는 희한한 모습이었습니다.

국무위원이나 대통령실 수석비서관을 둘러싼 의혹이란 게 대부분 재산, 본인과 자제들의 병역, 이중(二重) 국적 문제입니다. 교수들의 등용이 많아지면서 논문 표절 여부가 추가된 것이 새로운 특징입니다.
여당이 된 한나라당 일각에선 인선 작업을 주도한 류우익 대통령실장 등을 거론하며 “한 달간 밤을 새우며 5,000여 명을 검증했다는 결과가 겨우 이거냐”는 볼멘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10년 만에 보수세력이 정권을 잡아 ‘인재 풀’에 한계가 있었다고 하지만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립니다. 흠결 많은 인물들을 내세운 것은 검증시스템 탓이 아니라 말로는 ‘국민을 섬기겠다’면서 국민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한 것이란 지적입니다.

‘530만표라는 표 차’를 믿고 도덕성에 다소 문제가 있어도 일만 잘하면 된다는 오만한 생각으로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였던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이 명박 대통령은 지난 2월말 “우리 자체에도 일말의 책임은 있다”라고 잘못을 시인했습니다. 새 정부는 이번 일로 좀 더 겸손하여야 합니다. 민심은 쉽게 떠난다는 사실도 잊지말아야 합니다.

S형!
국회 청문회는 의원들이 국정을 담당할 사람의 능력과 자질, 그리고 적합성 등을 국민을 대신해 따지는 자리입니다.
정부 요직 후보자의 위법 여부나 도덕성 검증은 정부 내 인사, 사정 시스템이 맡는 것이 옳습니다.
이 명박 대통령의 선출은 국민들이 지난 ‘좌파 정권 10년 동안의 국정 운영 방향’에 대한 교정을 요구한 것입니다.

따라서 국회 청문회는 이를 실천하겠다는 새 정부의 ‘부처별 책임자에 대한 정치철학과 정책방향, 소관 업무에 대한 전문성 검증’을 주로 다뤄야 합니다.

S형!
그런데 이번 국회 청문회를 통해서 일부 국회의원들이 재산 많은 사람에 대한 보통 사람들의 ‘막연한 반감’에 편승해 장관 후보자들을 몰아세우는 장면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이는 정책 검증 능력 수준의 평가와 함께 자유시장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도 국회의원들이 유권자들로부터 철저하게 자질을 검증 받아야 할 대목이었습니다.

문화부장관 후보 인사 청문회장에서 오간 ‘재산 헌납 문답’은 우리 정치수준뿐 아니라 부(富)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어서 씁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유 인촌 문화부장관 후보자는 야당 소속 의원으로부터 “사재(私財)를 출연해 열악한 연극계를 도울 재단을 만들 의사가 없느냐”는 질문을 받고 마지못해 “그럴 의사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후보자의 신고 재산이 140억원으로 장관 후보자들 가운데 제일 많았습니다. 그래서 야당 의원들로부터 재산과 관련한 추궁을 집중적으로 받았을 것입니다. 장관이 되겠다고 청문회에 나온 사람에게 ‘재산의 일부를 내놓을 뜻이 있느냐’는 질문은 사실상 ‘재산 헌납’을 강요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공직 후보자의 재산이 많다면 그 재산을 쌓는 과정에서 불법과 탈법은 없었는지, 세금은 제대로 냈는지를 밝히고 추궁하면 되는 것입니다.
유 후보자는 “35년간 배우로 활동하며 열심히 저축했고, 한푼의 세금도 탈루한 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단지 재산이 많다는 이유로 법을 또박또박 지키며 벌어온 재산을 사회에 바치라고 강요한다면, 재산 많은 사람이 장관이 되려면 몸값을 톡톡히 내야 한다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후보자의 답변은 ‘재산 많은 것 자체가 죄(罪)’라는 매우 황당하고 위험한 인식에 굴복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국회 청문회의 품위(品位)가 말이 아니었습니다.

S형!
국회의 공직자 후보 인사 청문회가 후보자의 ‘정책 검증 청문회’로 업그레이드 되기를 기대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가오는 4월9일 18대 국회 총선에서 여야 정당이 민심을 헤아리는 공천을 해야하는데 아직은 ‘백모 삼년’일 거라고 합니다.

공천은 정당의 핵심 기능입니다. 시대와 민심을 못 읽는 공천을 일 삼는 정당은 죽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가장 후진적인 분야라는 정치를 선진화하는데 공천만한 특효약이 없습니다.
공천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정치 생산성’입니다. 공천이 정당의 기득권 유지 확대의 수단이 돼서는 많은 시민들이 그 정당을 외면할 것입니다.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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