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숭례문 전소 사건을 보고

강 학 도
/거제YMCA이사장

남대문이 불타는 광경을 뉴스를 통해 생생히 접하면서 문득 예전에 읽은 '오래된 미래'라는 책이 떠올랐다.

'오래된 미래-라다크로부터 배운다’는 개발과 진보라는 이름 아래 진행돼 온 산업문명에 반성과 성찰을 담은 소중한 책으로 스웨덴 여성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라다크 현지 체험을 바탕으로 엮어졌다.
1975년 라다크의 토속언어를 연구하기 위해 인도 서북부 히말라야 산록의 라다크를 찾은 저자는 그 후 현지에서 머물며 이들의 생태적 공동체사회와 세계관에 빠져들게 되어 자신의 체류 목적을 잊은 채 무려 16년간을 이곳에서 머물며 이들과 함께 공동체생활을 하게 된다.

라다크는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함을 지닌 도시였다. 세계 경제가 만들어놓은 GNP라는 경제적 기준으로 보면 분명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도시로 분류될 수밖에 없겠지만, 그들의 사회는 더없이 풍성하고 더없이 사랑이 넘쳤으며 마을 사람들 모두가 밝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수백, 수천년을 이어 온 그들만의 전통 유산은 비록 가난하지만 스스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법을 이들에게 전수했다. 그들은 싸우지 않았으며 넘치도록 사랑했고 인생을 충분히 즐길 줄 알았다. 진흙 벽돌로 집을 짓고, 직접 경작한 보리와 통밀을 주식으로 하며, 서구인들이 행복의 조건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 수많은 물건이나 기계기구 없이도 이들의 삶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했다. 무려 1,000년이 넘도록 변화 없이 살아왔지만 1년에 4개월 일하고 8개월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잔치를 벌이는 이들에게 변화는 무의미한 것이었다. 함께 기도하고, 함께 일하고 나누는 공동체사회- 그들에게는 진정 가난과 불행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던 마을에 서구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삶이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자급자족과 공동체생활로 가난을 몰랐던 라다크인들은 편리하고 풍요로운 관광객들을 접하게 되면서 이제 자신들이 낙후되었다고 느끼기 시작했고, 공동체사회는 차츰 붕괴되어 갔다.

모든 교육은 라다크의 전통방식과 다양한 관습과 생태 환경을 가르치는 대신, 다른 세계에 비해 그들의 문화가 얼마나 열등한지가 강조됐다. 세계화의 광풍 속에 주변부 제3세계인으로 전락한 라다크인들은 이제 누구나 가난하고 누구나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

세계 경제와 접촉하기 시작하면서 라다크에 불어닥친 개발의 열풍은 그 전통가치들을 하루아침에 말살시켜버렸다. 모두가 행복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던 공동체사회에 빈부의 격차가 두드러지게 나타났으며 사회의 주축을 감당하던 여성의 역할이 한없이 축소되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문명과 기술이 들이닥치자 존경받던 노인들은 이제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했다.

그러한 상황에서 라다크의 변화를 누구보다 가슴아파하던 저자는 몇몇 뜻있는 사람들과 손을 잡고 '라다크 프로젝트'를 발족하게 된다.
'라다크 프로젝트’를 통해 저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라다크인들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자신의 사회에 대한 강한 자부심이었다고 밝힌다. 갑작스럽게 불어 닥친 서구문명과 개발바람은 그들에게 불필요한 열등의식을 심어줬으나 저자는 그들에게 당신들의 삶의 방식이 더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일깨웠다. 그리고 마침내 이들은 잃었던 전통과 잃어버린 지산을 되찾기 시작했다.
현대 문명의 세례를 받기 이전과 이후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개발과 진보에 근원적인 의문을 던지는 이 책은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행복의 조건과 삶의 틀을 다시 한 번 마음속깊이 되돌아보게 한다.

책을 보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왜 이 세계는 개발이라는 하나의 깃발만을 바라보며 뛰어야 할까? 결코 모든 이에게 행복을 던져줄 수 없는데도 왜 모든 나라가 미개발 상태로 남아있길 주저하는가? 한번파괴하면 영원히 복구되지 않는 것인데도 왜 그토록 개발하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일까?
쉽게 결론을 내릴 수 없는 질문들이다. 이는 사회 시스템과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지며 궁극적으로 이 질문에 온전한 답을 내리는 자는 자신의 삶을 지금 그대로의 모습으로 놔둘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장과 개발이라는 허울 속에서, 혜택을 받아 누리는 소수를 위해 고통 받는 다수를 생각한다면 이런 질문들은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우리의 국보제1호 남대문(숭례문) 소실문제도 그런 점에서 많은 것을 시사한다.
이명박 정부의 출범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너무 경제성과 개발정책, 그리고 성장일변도로는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다는 것을 이번 숭례문 화재를 통해 깨달았으면 한다.
우리의 전통과 문화유산을 잘 보존하고 지키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자존심을 지키는 길임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이동열.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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