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일 환
/통영·거제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

일찌기 IMF를 겪고 WTO를 비롯한 FTA 문제로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우리에게 '세계화'는 이제 일상용어가 되었다. 세계화란 자본, 노동, 상품, 서비스, 기술, 정보 등이 국가의 주권과 국경을 넘어서 조직, 교환, 조정되는 현상으로 어쩌면 지금 세계화를 이야기하는 것은 진부한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세계화의 흐름은 도저히 멈추게 할 수는 없을 만큼 가속화되고 있다. 어제 할리우드 스타가 몸에 걸었던 장신구가 하루만에 ‘머스트 해브 아이템(must have item)’이 되어 쇼핑몰에 내걸린다. 프랑스산 스카프를 두르고, 미국 목화로 중국에서 만든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을 수 있다. 또 저녁밥상은 5개국 이상의 다국적 음식을 차릴 수도 있으며 돈을 좀 쓴다면 샤넬, 구찌, 페레가모 같은 세계적 부호들이 즐겨 찾는 명품으로 치장하고 미국식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다. 오늘 우리는 비행기를 타지 않고도 전 세계의 시장을 누빌 수 있다. 내 안에 지구가 들어서는 순간이다. 경제적 세계시간은 신자유주의적인 시장주의이다. 마침내 시장주의는 고전적 부르주아 자본주의도 극복할 수 없었던 국경의 장벽을 넘어설 수 있게 되었다.

이렇듯 세계화, 즉 자유시장경제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국가간 교역의 증대는 무역의 증대를 의미하고 이것은 국가간 상호이익을 도모함으로써 세계적인 부를 증진시킨다고 주장한다. 세계화로 다른 나라의 다양한 물품을 우리나라 소비자들이 싼값에 살 수 있고, 생산자도 세계의 넓은 시장에서 판매활동을 할 수 있으므로 세계적인 부를 증진시킨단 말은 '일면'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이들은 세계화를 '시장 지향적인 신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라 부른다.

그런데 문제는 세계화 신봉자들이 말하는 '세계적 부의 증가'가 과연 이론적으로 가능한지 의문스러우며 또한 어떻게 배분되는가를 깊이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미래 사회에 대한 탁월한 통찰력으로 전 세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석학 '레스터 서로우'가 주창한 '제로섬 사회'를 대입해 보면 이 주장의 논리적 허구가 발견된다. 평균 이상의 부를 얻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잃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는 지금 가속화되고 있는 세계화에 대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선진국들이 개도국에 대해 정책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게다가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주요 국제기구들은 가난한 나라들의 이익보다 월스트리트와 선진국의 이익을 우선하고 있으며 그 결과 세계화는 개발도상국 경제와 빈민층을 더욱 황폐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세계화 자체의 잘못보다는 미국 재무부, IMF,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 뒤에 숨어 있는 권력들에 의해 결정된 잘못된 행동의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따라서 세계화는 세계를 풍요롭게 만드는 잠재력을 가졌지만, 동시에 국제무역협정들과 세계화 진행과정에서 개발도상국들에 가해졌던 정책 등 세계화가 운영되는 방식에 약자에 대한 강자의 침탈적 요소가 있음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새로 들어설 이명박 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 보다 친시장(기업)적 이다. 스스로 기업친화형 정부가 될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공공영역인 정부에게도 세계화는 기회일까?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이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의미 있는 말을 했다. 국가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100개의 경제기구 가운데 30여개가 국가가 아닌 기업체이고 그중 가장 거대한 기업인 엑손은 세계 45위, 즉 파키스탄 국가 총생산과 비슷한 경제규모를 지니고 있다. 20위권을 넘어서면 오히려 국가보다 기업의 숫자가 더 많아진다. 때문에 권력이 시장(기업)으로 넘어갔다는 그의 주장은 과히 틀리지 않았고 앞으로 시장은 정부의 통제권을 넘어설 것이며 상대적으로 국가가 행사해온 공권력은 점차 설자리가 줄어들 것이다. '국민을 보살피는 국가'라는 전통적인 개념이 퇴보하고 기업의 성장과 기업의 부를 위해 부역하는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우리가 세계화에 올인 하려는 지금, 가장 세계화에 적극적이었으며 수출비중 세계 1위인 독일은 세계와 담쌓기를 시도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국민들에게 이제 '세계화'라는 말은 '더러운 단어'가 되고 있고 반 세계화 기류에 휩싸여 있다고 얼마 전 시사주간지 타임이 보도했다.
10여년 전 세계화를 앞두고 위험이냐 기회냐로 양분되었던 독일 여론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고용 불안정과 부의 불평등을 키웠다는 반감이 커지면서 이젠 세계화를 위험이라고 보는 쪽으로 확실히 기울고 좌파정당이 빠르게 지지세를 넓히고 있다. 최근 글로벌 경제 위기로 인해 세계화를 반성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상황과 무관하지 않은 흐름이다. 독일은 수출이 살아나면서 최근 두 해 연속 2.5%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했고 지난해엔 실업률도 10% 아래로 떨어져 2000년 이후 최고의 성장세를 이어 갔다. 하지만 독일 국민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세계화의 혜택을 부자들만 누린다”는 의견이 1998년 32%에서 2006년에는 50%로 급증했다. 독일 국민 83%가 경제 회복의 혜택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으며 인플레이션과 세금을 감안한 국민들의 실제 소득수준도 1980년대와 비교해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한다. 이제서야 독일인들은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가 결국에는 그 바탕인 사회마저 붕괴시키는 것을 목격한 것이고 세계화의 부작용을 체험한 정치인들도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친기업(시장)정부라고 규정한 새로운 정부가 곧 들어설 지금 우리는 매우 중요한 기로에 서있고 그 결정은 우리 스스로의 판단에 달렸다. "영국인들은 국회의원을 선출할 때에만 자유롭다. 의원이 선출되자마자 국민은 노예화된다"는 루소의 선거민주주의에 대한 비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동열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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