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순 련
/오비초교 교사

제주도를 여행하다보면 ‘생각하는 정원’이라는 분재예술원을 만나게 된다.

제주도의 ‘생각하는 예술원’은 가시덤불로 뒤덮인 황무지를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탄생시킨 한 사람의 철학이 묻어있는 곳이다. 1968년 제주도에 관한 라디오프로그램을 듣고 고향이 제주도인 군대친구를 찾게 된 것을 계기로 40여년을 키 작은 난쟁이나무들에 미쳐 살아온 생각하는 정원의 주인의 삶에 존경과 감사함의 마음을 전했다.
분재예술원이야 그 형태가 조금씩 다를 뿐 각 지방마다 나름대로의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여러 곳 있다. 그러나 ‘생각하는 정원’은 단순한 식물원이나 분재원이 아니다. 자연과 인생과 철학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천상의 비원 같은 곳으로 외국 언론에서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으로 수차례 소개된 바 있다고 한다. 이 ‘생각하는 예술원’은 40년을 이 분야에 혼신을 바친 한 사람의 집념으로 제주도 관광자원의 맥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의 분재분야에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 거제도에도 제주도의 ‘생각하는 정원’에 버금가는 섬이 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외도'이다. 1969년 우연한 기회로 거제도 남쪽의 작은 외딴섬 외도를 사게 된 부부는 섬 개척을 시작했다. 그들은 밀감 농장과 돼지농장의 연이은 실패, 해마다 겪는 태풍과 그로 인한 좌절을 딛고 40여년 만에 ‘불가능의 낙원’ ‘땅 위의 천국’이라 불리는 아름다운 해상공원 외도를 가꾸어냈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007보다 기발한 작전으로 회귀식물과 꽃을 숨겨 들여왔고, 정원에 놓을 조각과 화분을 배로 싣고 오느라 네 번이나 팔이 부러진 막노동꾼으로 산 섬주인. 이 부부 역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겠다는 꿈 하나에 40여년을 매달려 열정의 섬을 이루어 놓았다. 이들의 피와 땀으로 1995년 문을 연 외도해상공원은 현재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남해안 최대의 관광지가 되어 거제관광문화는 물론 세계인의 이목을 모으는 아름다운 섬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나는 여기에서 제주도의 ‘생각하는 정원’의 아름다움과 우리 거제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의 황홀한 모습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을 일구며 흙과 돌과 나무와 꽃들과 씨름을 해온 한 남자의 뒷바라지에 40년 인생을 바친 두 여인의 집념과 사랑을 이야기를 하고 싶을 뿐이다.
‘생각하는 정원’의 입구에 들어서면 정원 주인의 아내인 마정숙 여사가 쓴 ‘영주원’이라는 비석이 첫눈에 띈다.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섬 생활과 실패, 황무지를 일구는 것을 평생의 업으로 삼고 사는 남편의 뒷바라지에 신물이 나 드디어 제주도를 떠나겠다는 결심을 했다. 눈물로 마지막 부엌일을 마친 그녀는 집을 나서려다 너무나 피곤하여 잠시 부엌바닥에 엎드려 잠이 들었다고 한다. 그 때 그녀의 꿈속엔 ‘영주원’이라는 낱말이 떠올랐다고 한다. 남편의 ‘영’자와 아들의 ‘주’자를 붙여 이 섬에서 죽는 일이 있더라도 남편과 아들이 있는 이 정원을 떠나지 않고 나무에 미친 남편의 뒷바라지에 평생을 걸겠노라고 하느님께 맹세한 내용의 비석이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외도’의 안주인인 최호숙 여사 역시 대단한 여장부다. 돼지 농장이 망한 후도, 태풍에 목숨처럼 아끼던 나무가 쓰러질 때도 그녀는 남편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뿐만 아니라, 좋은 나무나 꽃들을 사서 큰 보따리에 싸서 등에 지고 고속버스까지 매다 날랐고, 다시 물길을 헤치며 이동시켜 우리들의 눈을 행복하게 해 주는 지금의 정원으로 가꾸어 놓은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정말 이번에는 외도를 떠나야지’ 하는 결심을 수차례 하였지만 결국은 또 다시 남편을 따라 섬을 지킨 지 40여년. 이런 어려움을 견딘 최호숙 여사의 억척같은 뒷바라지가 없었다면 오늘의 외도가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남자이다. 그러나 그 남자를 움직이는 것은 여자이다’라는 말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을 만드는 일에도, ‘생각하는 정원’을 만드는 일에도 위대한 업적을 이룬 두 사람의 뒤엔 고귀한 두 여인의 삶이 숨어있음을 말하고 싶다. 40년은 참으로 긴 세월이다. 그들에게도 여느 여인들과 같은 소박한 행복이 그리웠을 것이고, 보통의 여인들이 누리는 삶이 얼마나 그리웠을까? 그러나 그들은 자신을 태워서 남편을 세우고, 세상에 업적을 남기는 튼실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나는 이 두 여인이 쓴 글을 읽고는 직접 그들을 찾아가 두 손을 잡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가진 적이 있다. 이름 없는 내 위로가 무슨 도움이야 되겠냐마는 그래도 그들의 그 위대한 뒷바라지에 작은 정을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직접 만나본 그들의 공통점은 바로 남편을 믿고 따른 여인의 사랑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도 사그러 질 줄 모르는 정열과 지금까지 투자한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었다는 확고한 인생관이 있었다.

새해이다.
올해는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자신의 몫에 최선을 다해야겠지만 여인들의 삶이 보다 가치있는 목적의식으로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요즈음 여인들의 삶의 가치가 많이 변화하고 있다. 삶의 기준이 다르고, 목적이 달라지고 있음에 놀라곤 한다. 변화의 물결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변화에는 기본 틀이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부모를 모시는 일, 남편을 섬기는 일, 자녀의 뒷바라지 등 여인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닦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석양의 길목에 섰을 때 지금까지의 내 삶이 가장 가치 있는 삶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하는 여인의 삶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정원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을 일군 안주인과 같은 위대한 여인은 내 자신도 흉내 낼 수 없는 자리이지만 며느리, 아내, 어머니의 위치를 잘 지켜 지혜로운 여인으로서 아름다운 삶으로 내 가정과 주변을 밝히는 노력하는 한 해가 되길 바랄뿐이다.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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