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이수호해양개발연구소 대표

20만 인구를 가진 도시로 성장한 거제에서 조선산업에 직접 종사하는 사람과 그 가족을 합하면 전체 인구의 약 75%인 15만여 명에 이른다. 이들이 조선소를 통해 벌어들이는 봉급소득만해도 월 2000억원에 달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서울의 방송과 신문에서 거제에서는 지나다니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며 너스레를 떠는 것도 불황의 골이 깊어 가고 있는 다른 지역의 입장에서는 부럽기만 할 것이다.
이에 화답하듯 거제시에서 조선해양관광국 신설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 조선기자재공단 조성, 조선특구 지정 등에 대한 여론도 뜨겁다.

그러나 행정에서 체계를 갖추어 지역의 핵심산업을 지원하기로 한 것은 반길 일이지만 도시 전체가 조선산업에 올인하는 듯한 태도는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렇다고 유례 없는 활황으로 중국이 활발한 투자를 계속하고 있고 전국의 해안이 조선소 신증설로 붐비고 있는 마당이니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을 미리부터 경계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도시역량에 대한 분산과 집중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전반적으로 지역산업이 안정적인 토대를 갖출 때만이 지속적인 도시의 성장이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조선산업에서의 역량분산은 크게 이웃도시와의 역할분담과 지역 내 산업구조 측면에서의 역할강화 전략을 의미한다.
따라서 블록생산과 같은 단순조립공정, 특정지역에서 생산시너지를 높일 수 있는 특정 기자재 등은 분산과 유기적 결합 방식을 통해 이웃도시들과의 나눔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지금 인접한 통영이나 고성에서 조선특구를 만들기 위해 대대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을 두고 마치 양대 조선소의 입지로 거점도시의 위상을 가진 거제시의 몫이 줄어드는 것처럼 애석해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과실이 풍족할 때는 서로 나누고, 혹시나 있을지 모르는 경기불황이 닥쳐 올 때는 서로 충격에 대한 분담구조를 형성하는 것은 비록 지금 당장은 손해보는 느낌이 들지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매우 바람직한 전략이다. 대체재의 등장으로 급속하게 몰락했던 석탄생산지역의 사례를 기억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이 가는 대목일 것이다.

물론 지역 내에서 원스톱 생산체제를 구축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극대화하는 것이 제품의 단가를 낮추는 역할도 하고, 지역경제의 단기성장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정된 시장을 대상으로 한 과도한 몸집 불리기는 결국 기업 스스로 자기체중에 눌려 불필요한 비용을 발생시키며, 의사결정을 지연시킴으로써 속도가 경쟁의 핵심이 되고 있는 오늘날의 경영원리에도 위배된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 간 나눔은 기술개발 및 품질, 서비스 향상을 촉진하는 건전한 경쟁의 유발이 가능하고 행정지원을 비롯한 사회적 기반 강화를 유도하는 데에도 기여하게 된다.
생존을 유지하는 데만 하루 1톤의 풀이 필요했다는 공룡의 멸망은 예고된 재앙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도 주변 도시들과의 나눔을 통한 상생전략이 결코 장기적으로는 밑지는 장사가 아님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용지와 인구, 예산 등 도시수용능력에 여유가 있다면 수산업과 농업의 특화, 관광산업의 육성, 교육ㆍ문화 기반의 강화 등을 통해 조선업에 편중된 지역경제의 균형을 바로 잡고 보완하는데 활용하는 것이 안정적인 도시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다.
조선산업에 있어서 역량의 집중전략은 현재의 주력사업 및 미래의 핵심사업에 대한 대응과정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즉, 조선산업에 있어서의 집중전략은 최종조립 및 의장작업, 시운전 등과 같이 대형설비가 필요하고 고급기술력이 중심이 되는 주력사업을 강화하고, 신기술ㆍ신제품으로 대표되는 미래성장동력을 발굴, 육성하는데 매우 유익하다.

아울러 부가가치의 대부분이 선박건조라는 2차 산업에 의존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 특허, 엔지니어링 판매, 기자재 구매대행 등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한 서비스 분야로 무게중심의 점진적인 이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미래성장동력 발굴은 대형화ㆍ대수심화ㆍ친환경화ㆍ융복합화라는 조선산업의 패러다임을 반영한 블루오션 영역의 시장선점 노력과 함께 대우조선해양(주)에서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에너지 및 물류 사업 등 시너지창출이 가능한 영역에 대한 시장진출이 될 것이다.

2006년 산업자원부에서 작성한 조선산업기술로드맵에 따르면 우리나라 조선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2005년 38.4%에서 2015년 40%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지만 고부가가치선종의 비율은 같은 시기 25%에서 2015년 40%를 목표로 하고 있다는 사실에서도 이와 같은 미래성장동력 발굴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업 자체의 노력에 더해 첨단기술이 집약된 연구시설 또는 단지의 유치 및 지역 대학과의 우수인력 공급 및 핵심기술 개발을 위한 산학연계 촉진 등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기본요건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옛말에 ‘벼는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고 했다. 지금 조선산업이 잘 나간다고 까닭 없이 흥청대거나, 미래에 대한 근거 없는 비관론으로 미리부터 불안감을 야기하기보다는, 큰 틀의 전략을 세우고 착실하게 하나씩 준비를 해 나가는 것이 지금 시점에서 거제시와 지역기업들이 해야 할 일이다.

이동열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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