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선 강성중 화백을 추모하며

김 정 희
/거제문예회관 마케팅 팀장

거제예술계에 큰 별이 떨어졌다. 지난 2월 지역향토작가이신 화선 강성중 화백이 불의의 화재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생자필멸(生者必滅) 대자연의 순환법칙이라고 했던가. 장승포 바다를 화폭에 담으며 언제까지나 지역예술계의 버팀목이 되어 주실 줄 알았던 선생님의 모습을 이제는 회억(回憶)으로만 그려보게 되었으니 실로 만감이 교차하여 가슴이 미어온다.

일찍이 거제에 미술의 씨를 뿌려 그 완성의 열매를 맺게 한 거제미술계의 산 증인이자 원로이며 거제예술계의 큰 별이셨던 선생님.
작년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기획한 지역작가 초대전에 선정된 선생님의 개인전 행사장에서, 선생님은 이제 몸이 말을 안 들어서 작품도 못하겠다며 노경에 접어든 쓸쓸한 심회를 들려주더니만 그것이 선생님과의 마지막 대화가 될 줄이야.

전업 작가라는 단어가 자랑스럽게 느껴지기는커녕 애처롭게 느껴지고, 예술가라는 자존심 하나로 창작에 전념해야 할 작가들이 가장 고통스러운 이 시대에 향토작가로서 평생 그림에만 정열을 쏟으신 하선 강 성중 선생님.
선생님은 1950년 민족의 비극인 6·25후 이곳 거제도로 이주, 한 때는 거제 중 고등학교 미술교사로 재직하기도 하였으나, 이후 어부생활을 해 오면서 오로지 지역 후배 미술인들의 지도와 미술 저변 확대를 자신이 이뤄야 할 평생의 목적임을 절감하고 거제미술인들의 대부 역할을 자청해 왔다.

지난 1982년에는 거제미술회를 결성, 지역 미술인들을 지도해 오면서 지금까지 회원전, 장승포 바다 미술제, 타 지역(마산·부산·대구) 작가들과의 교류전 등을 활발히 전개하셨다.
선생님의 이런 업적들이 축적되어 93년 한국 미술협회 거제지부를 인준 탄생케 했다.
이러한 선생님의 눈물겨운 노력이 경남 예술계에서 인정돼 94년 10월 거제예술제 기간에 예총 경남 도지회로부터 「경남 예술인 공로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또한 거제예총에서 예술 활동의 공적이 뛰어난 예술인에게 수여하는 「거제예술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선생님은 지역 미술인으로써의 이런 영광과는 달리 생활상은 늘 궁핍함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선생님과의 기억 중 이제는 영원한 안타까움으로 내 가슴 한 켠에 자리할 아픔이 하나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필자가 거제예총 사무국장으로 재직하던 때였다. 그 당시 문화관광부에서 전국의 유명 예술인중에서 불우한 예술인들에게 평생 동안 생활비의 일부를 지원해주는 일종의 종신연금제도가 있었다. 그때 연금혜택을 받던 전라도의 예술인 한 분이 작고하므로 써 전국의 예술인 중 한 분을 선정한다는 공문을 접하게 되었다. 나는 그 공문을 보는 순간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찡해 옴을 느꼈다. 그 당시 선생님의 부인께서 지병으로 자리보전하게 되어 약값 등으로 생활고에 시달리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그 수혜의 대상이 꼭 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관공서로 뛰어 다니며 증명서를 발급 받고 예술 활동 공적자료를 만들어서 서울로 보냈더니 1차 서류심사에 합격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2차 심사는 담당 부서 공무원들이 거제에 직접 내려와서 예술인이 사는 환경을 정밀 조사 검토 한 후 결정한다고 하였다.

서울에서 내려온 담당 공무원들과 선생님 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포구를 따라 돌면 구멍가게가 나오고 한 사람이 겨우 드나들 수 있는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선생님의 작업실이자 평생 삶을 꾸려 오신 판자 집이 나타났다. 영하를 오르내리는 겨울인데도 허름한 점퍼차림의 선생님은 『나 다된 모양이야, 허리가 아파서 통 외출도 못하고 있어.』
예의 그 카랑카랑한 선생님의 목소리는 예술인의 기백으로 전율이 느껴졌다.

그러나 중앙의 확인과정에서 어선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폐선 한 척과 선생님 소유의 자택이 있다는 이유로 애석하게도 연금혜택은 다른 예술인에게 갔다. 너무 속상해서 몇 번이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해줄 수 없는지 사정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만족할만한 액수는 아니지만 정부에서 평생 동안 지원 받을 수 있는 대상이 되지 못한 그 기억이 지금 또 새삼 가슴 한구석을 저미게 한다.

비록 생활상의 어려움이 있지만 선생님은 예술인으로서 기백은 너무나 당당하였다. 당신의 작품을 지역 작가라고 저가에 흥정을 해 오는 사람에게는 그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일갈(一喝)한다. 비록 내가 돈이 아쉬운 사람이지만 싸구려 예술인 취급은 받고 싶지 않다고 심정이다. 자존심 하나로 버텨온 참 예술인.
작가가 한 시대의 커다란 변혁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영역이나 표현 양식을 세우고 지키기란 쉬운 일이 아닐 것인데, 선생님의 그 자존심은 깊은 예술혼의 원동력으로 작용하였다.

초창기 아직 미술품에 대한 선호도가 낮아 작품의 소비를 기대할 수 없는 분위기에서도 미술품에 대한 심미안을 지닌 몇몇 지인들이 소장하고 있는 선생님의 작품은 가보처럼 애호(愛好)되고 있다.

선생님의 작품은 문학으로 치면 현란한 수사학을 결코 볼 수가 없다. 평범한 소재로 빗은 거제의 봄이면 지천으로 피어나는 설유화 같은 소박한 향내를 느낄 수 있다고나 할까.
선생님의 작품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자잘한 삶의 소재를 통해, 예술은 인생을 즐기는 사색의 거울임을 깨우치게 하였다. 선생님의 작품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 창작물이 아니라 그 자신의 생활로부터 자연스럽게 발원해 나온 삶의 결과물이었다.

선생님의 작품 「자화상」 「셋째 딸」 「아내」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소재를 주로 당신의 가족이나 일상생활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멸치 털이」 「소라」 「전갱이」 등에서는 평범한 일상의 소재들이 우리에게 잊기 쉬운 일상의 철학을 이야기해 준다.
개발되기 전 풍경인 「해금강(거제시청 2층 로비 전시)」 「구천계곡」의 작품 등에서는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의 명소를 애정으로 표현함으로써 구김살 없는 투명함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 숨겨진 삶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미술의 불모지였던 50년대에 거제도를 비롯한 경남지역 화단에 독창적이고 향토적인 작품으로 지역 애를 일깨웠던 선생님은 분명 거제미술사에 한 획을 그은 화가로 자리 매김 되어야 할 것이다.
선생님의 삶은 결코 낙락장송도 고산준령도 부귀영화를 탐내는 범속한 욕구도 아니었다. 붓 하나로 열심히 살아온 인생의 흔적들이 후배예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줌으로써 화단의 후배들은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억할 것이다.

지역 화단에 거목으로 정신문화의 표상인 선생님. 그림으로 살다가 그림으로 가신 화선 강성중 선생님, 부디 이승에서의 시름일랑 다 거두시고 하늘나라에서도 영생하소서.

전의승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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