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가대교 준공을 앞두고

김 경 근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이사장·고려대 명예교수

2010년 12월 10일. 세계적인 명물이 될 거가대교가 개통되는 날이다. 이제 겨우 3년 8개월 밖에 안 남았다. 거가대교의 공정률은 35%를 넘었다고 한다. 육지에는 접속도로 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고 바다에는 거대한 사장교의 교각들이 수면 위로 솟아오르면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엄청난 공사비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시공사들의 신용은 믿을만한지? 해저침매터널 공법은 도대체 무엇이며 안전에는 이상이 없는지? 이런 의구심과 문제점들은 대통령이 착공 삽을 드는 순간 대부분 해소되었다. 이제 부산과 거제를 가로 지르는 다리는 더 이상 꿈이 아닌 우리에게 성큼 다가온 현실이다.

그리고 실시설계 단계에 접어든 통영→거제 고속도로와 계획단계를 넘어 결정을 기다리는 거제→마산 해상도로까지 건설되면 앞으로 몇 년 안에 바다를 가로질러 거제로 향하는 다리가 3개나 더 생기는 천지개벽 같은 현실이 눈앞에 전개된다.
새로 놓인 다리를 건너가서 며칠 자고 오면 장수한다는 속설이 있다. 속설은 단지 속설일 뿐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세계 최장의 해저침매터널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사람들이 거제로 거제로 몰려들 것이다. 그렇다면 거제의 民과 官은 어떤 자세로 이들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는지 한 번 점검해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잠시 스쳐가면서 쓰레기나 버리고 가는 거제가 아닌 며칠 체류하면서 구경하고 즐기고 돈을 쓰고 가는 거제가 되도록 하기 위한 준비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준비는 최소한 거가대교 공사와 비슷한 속도로 진척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 실상은 매우 실망스럽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이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4년 전에 나는 바로 이 지면을 통해 거제의 명소이자 세계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는 장승포-구조라-망치-학동-해금강-여차-홍포-저구로 이어지는 해안도로와 학동고갯길과 같은 명소가 본래의 가치와 명성이 점차 퇴색하는 이유를 지적하고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한 바 있다.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진 이곳의 바다 쪽 도로변에는 아무렇게나 자라는 잡목들과 많은 예산을 들여 심은 가로수들이 병풍처럼 바다조망을 방해하여 거제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기고문이었다.

기사가 나가자 시청 홈페이지 토론방에는 나의 지적과 시정요구에 적극 찬성하는 댓글이 이어졌고 빠른 시일 안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는 시청담당부서의 약속도 발표됐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그 사이 잡목들과 가로수들은 더 높이 자랐고 더 넓게 퍼졌다. 지금 공무원들에게 그 동안 시정이 되지 않은 이유를 묻는다면 『담당자가 바뀌어서...』, 『예산확보가 안되어서...』라는 식의 상투적인 답변만 늘어놓을 것이 뻔하다. 官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이는 官의 자세와 준비상태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해주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民은 어떤가. 소득수준이 놓아지면서 고급숙박시설에 대한 대중적 욕구와 수요도 함께 높아진다. 물론 현재 삼성과 대우가 고급호텔을 운영하고 있지만 규모도 작고 주로 자사 고객 위주로 운영되기 때문에 대중적 수요를 충족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가운데 대단위 고급 호텔과 위락시설에 투자하고 싶은 기업들과 투자가들이 거제를 찾았다가 다시 발길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까다로운 법과 규제도 문제지만 「시민」을 앞세우면서 반대부터 하고보자는 일부 이익단체와 환경ㆍ시민단체들의 벽(거제시민 전체의 의지와는 다를 수도 있다)에 막혀 생각을 접고 떠난다고 한다.

개발이라는 명분으로 자연과 환경을 마구 파헤치고 파괴하는 행위,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반드시 보존해애 할 가치가 있는 장소나 구조물에 까지 파괴의 손길을 뻗는 행위는 거제시민 모두가 나서서 막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자연과 환경은 보호라는 명분으로 방치될 때 보다 활용이라는 명분으로 사람의 손질이 가해지고 관리될 때 더 큰 가치를 발휘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자연을 활용하고 향유할 수 있는 권리는 철새나 야생 동·식물에게만 있지 않고 바로 인간에게 있고 인간이 그 주체가 되어야 한다. 자연과 환경에 대한 인간의 탐욕적인 파괴와 오염을 막으려는 의지와 방법과 제도가 갖추어지고 이를 통제하는 강력한 감시체계가 작동되는 상황에서 조차 인간의 자연 향유권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행위는 옳지 않다.

오늘날 지구상에서 자연을 가장 효율적으로 개발하고 환경을 가장 엄격하게 관리해서 인간과 자연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성공한 나라가 바로 유럽의 스위스다. 스위스 국민들은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알프스 산악지역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찾아가고 살고 싶어 하는 나라로 일구었다. 거제의 民과 官도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친다면 거제를 스위스와 같은 세계 제1의 명승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길 닦고 다리 놓으니까 쓰레기나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 먼저 지나가더라 하는 말은 나오지도 듣지도 않기 바란다.

이동열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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