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돈 묵
/거제대 교수

얼마 전 평가위원으로 시정 업무를 평가한 일이 있다. 각 부서에서 내놓은 업적들을 평가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과연 일선에서 최선을 하고 있는 분들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까. 한 해 동안 수행해 온 업무를 평가 받기 위해 내놓은 자료도 방대하지만, 그 업무 자체를 파악하기가 그리 수월하지만은 않다. 한 부서당 내놓은 자료가 수백 쪽에 달하여 그것을 짧은 기간 안에 읽고 평가한다는 것이 용이하지 않다. 내가 잘못 평가하여 일선에서 노력하는 분들의 사기에 누를 끼쳐서는 아니 된다는 부담감도 무겁게 작용한다.

평가는 왜 하는 것일까. 경쟁사회에서 노력한 사람에게는 그만한 보상을 하여 더욱 힘을 내도록 격려해 주고 아직 미치지 못한 사람에게는 평가를 계기로 새로운 다짐을 하게 하자는 관리자의 숨은 뜻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실효가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오히려 사기를 꺾어버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래서 평가에 가담되어 있는 사람들은 개인적 이해보다 집단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 마음가짐을 해 두어야 한다.

물론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규정을 정하고 그 범주 안에서 실시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야 구성원들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신뢰도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규정이 자칫 피평가자의 업적을 뭉개는 올가미로 활용된다면, 그 또한 문제이다. 평가자의 잘못된 판단이 오히려 구성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계기가 되기에 더욱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평가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어려움이 있는 것이다. 개인적인 감정이 가미되어서도 안 되고, 갈등의 소지가 있는 것은 타기관의 선례도 수집하여 참고하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만에 하나 평가가 잘못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오히려 실시하지 않는 편이 훨씬 조직체의 발전에 바람직하다.

이런 면을 생각하며 긴 시간을 투자하여 평가에 임했다. 한 부서에서 올라온 자료가 보따리로 하나씩이니 각 부서에서 올라온 그 많은 분량을 어떻게 볼 수 있을까. 업무가 진행된 과정을 세세히 알 수 있도록 부서의 공문은 다 복사한 것처럼 느낄 정도였다. 솔직히 그것을 다 읽을 시간적 여유조차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업명과 결과물만 보게 되고, 과정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볼 수조차 없었다. 더러 사업의 취지와 진행에 문제가 있을 법한 것들만 집중적으로 살펴보는 배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평가에 종사하면서 느낀 점은 평가자가 알아야 할 사항만 집약적으로 정리하여 자료를 제출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생각이다. 한 해 동안 이루어진 모든 사항을 볼 수 있도록 제공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무성의하게 부서의 모든 공문을 복사해 내놓았다고도 볼 수 있다.

더러 여론 조사를 한 것이 자료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것들이 평가의 좋은 자료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엄청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다. 거제시 업무를 평가한 예라서 다른 국가기관인 한전의 예를 들어 보겠다.

한국 전력에서는 매년 평가를 할 때에, 18개 지점의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그들의 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론 조사의 해악이 가장 노출되는 경우가 이 경우일 것 같아서 예로 드는 것이다. 이 여론 조사의 결과가 한전 거제지점 구성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려서 이곳으로 배속이 되면 징계 당한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이 구성원들의 공공연한 말이다.

얼마 전 이곳에 태풍 「매미」가 몰고 가서 피해가 난 적이 있다. 그때에 송전탑이 넘어간 것으로 하여 지역민들의 불만이 터져 나와 소송까지 벌였고, 아직도 마무리가 되지 않은 상태다. 그 소송의 당사자들에게 묻는 여론의 결과는 뻔한 것이다. 그 결과로 이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기가 추락하고 있다. 「고객 업무 처리 만족도」에서는 셋째이면서도, 같은 시기에 조사된 「한전 고객만족도」에서는 최하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 보자. 송전탑 무너진 것에 대한 소송의 당사자는 이곳 거제지점이 아니고, 송전 선로를 관리하는 송변전사업소(창원전력관리처)이다. 그런데 이곳의 주민들은 한전과의 소송사건이 뇌리에 남아 「거제지점 고객 만족도」에서는 부정적으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태풍 「매미」로 인한 여론 추락 이후 지금껏 한번도 최하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곳의 근무자들이 대민 봉사활동도 강화하고 몸부림쳐도 여론 조사는 언제나 열여덟 지역 중에서 최하위에 머물고 있다. 이런 여론 조사 결과가 평가의 자료로 쓰인다면 위험하다.

평가는 어디까지나 긍정적으로 활용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평가자의 세심한 배려와 올바른 가치관과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 만약 평가가 잘못된다면 오히려 조직의 발전에 저해 요소가 될 것이다. 이번에도 시정업무 평가를 하면서 어깨의 무거움을 느껴야 했던 것은 나만이 아니고, 평가위원 모두가 절감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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