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한 주
/변호사

아무리 남쪽이라 하더라도 꽃을 시샘하는 추위가 바람과 함께 며칠 제법 매섭다. 꽃들은 채 매무새를 뽐내기도 전에 움츠러든다. 한 며칠 더울 만큼 훈훈하더니 갑작스런 변덕이다.

봄이 왔으되 꽃샘추위에 시달릴 때면 으레 쓰다시피 하는 말이 '춘래불사춘'이다. 당나라 시인 동방규의 시(詩) 소군원(昭君怨)’에서 나온 말이다. 한나라 원제(元帝)의 후궁으로 중국의 4대 미인으로 꼽히는 왕소군(王昭君)이 흉노족의 왕에게 끌려가는 가련한 처지를 빗댄 시다. 시인은‘호지무화초(胡地無花草)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읊었다. 오랑캐의 땅에는 꽃과 풀도 없으니 봄이 와도 봄같이 않다는 뜻이다. 사막을 지나면서 살풍경한 북녘땅을 그대로 표현한 말이다. 흔히 고달픈 인생살이를 비유적으로 일컬을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마지막 스러져가는 불빛도 깜박 숨을 거두기 전에는 한순간 오히려 더 환한 빛을 발하며 제 목숨을 거둔다는 회광반조(廻光返照)도 꽃샘추위의 존재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이유로 겨울의 끝자락에서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속셈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어쩌면 세상의 이치가 다 그런 것이다! 사람들의 세상사도 다를 바 없다.

최근의 신문기사중에서 아파트 건설업자들은 ‘아파트 분양시장 춘래불사춘’, 정치권에서는 ‘범여권 통합 움직임 춘래불사춘’이라고 표현한 머릿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쓸 수 있는 말이지만 서민들의 편에서 표현한 것 같지는 않다.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고용 불안정과 저임금, 농민들의 입장에서는 한미FTA의 여파로 인한 농산물 개방, 젊은이들의 청년실업문제, 도시서민들의 내 집 마련의 어려움. 이러한 것이야말로 ‘춘래불사춘’이다. 아니 지금도 한겨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힘겨운 살림살이에 마음마저도 움츠릴 만큼 움츠려 있다.

특히나 정치권은 연말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권력쟁취에 혈안이 되어 ‘서민들의 봄’에는 관심이 없다. 늘 그렇듯이 말로만 장미꽃을 피우고 있다.

따뜻한 남풍은 언제쯤 지친 사람들의 가슴에 불어와 봄꽃과 더불어 흐드러진 향기를 피워 올릴 수 있을지...... 지친 겨울의 끝에서 미처 무르익지도 않은 봄을 재촉하는 심사가 조급하다.

이동열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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