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덕 규
/거제대학장

우리는 추석(秋夕)명절을 정겨운 우리말로 「한가위」라 부르거나 한자어(漢字語)로 중추절(仲秋節)이라 일컫는다. 가을 한복판에 오는 명절이라는 의미지만 이르면 9월초에 보통은 9월 중·하순(中·下旬)에 주로 오는데 올해 추석은 예년(例年)에 비해 좀 늦게 온 편이다. 음력(陰曆)으로 윤달(閏月)이 7월에 들어 양력(陽曆)과 음력의 날자 차이가 가장 많이 벌어진 때문이다.

그러므로 햇곡식이 나오기 전에 추석이 너무 일찍 오는 해에는 추석상차림을 묶은 쌀로 해야 하는 부담이 있으나 올해같이 늦게 온 해에는 오곡이 무르익어 한결 풍요로운 명절을 맞을 수 있는 것이다. 더욱이 올해는 휴일과 국경일의 앞뒤에 끼인 10월초의 이틀만 연가(年暇) 등으로 잘 활용하면 9일간이나 명절휴가를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여러 가지로 여유로워야 할 올 추석이 얼핏 풍성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일까?

우리의 2대 민속(民俗)명절인 추석과 설(舊正)은 조상의 음덕(蔭德)을 기리는 면에서는 비슷하다. 그러나 설은 새해를 맞아 나이를 한살 더 먹고 성숙해졌음을 웃어른께 고(告)하고 세배하는 예절이 주된 의식(儀式)이며, 추석은 한해 농사를 잘 거두고 조상께 감사하며 가족들이 함께 모여 즐긴다는 면에서 다소 다른 의미를 갖는다. 한 해 동안 농사지어 거둬들인 풍성한 햇곡식으로 떡과 술을 빚고, 잘 익은 햇과일을 구해다가 온 가족이 함께 모여 조상께 차례(茶禮)를 올린 후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저녁에는 밝고 둥근 보름달을 보며 헤어졌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행복을 기원하며 오손도손 정(情)을 나누는 것이다.

한식(寒食)이후 돌보지 않아 여름 내내 자란 풀로 흉하게 덮여 있을 조상(祖上)의 묘소(墓所)를 찾아 벌초(伐草)하고 성묘(省墓)도 한다. 이와 같이 우리의 추석은 서양의 추수감사절과 같이 농경(農耕)사회에 뿌리깊은 관습인데도 우리만의 독특한 전통을 유지하면서 지켜 내려온 민족 최대의 명절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명절풍속도 많이 변화가 보인다. 어린 자식 손에 선물꾸러미를 들려 귀향하는 귀성객들이 열차, 버스표 구하기가 어려워 아우성을 치거나, 고속도로가 주차장으로 변하는 귀성(歸城)전쟁을 치러야 했던 세태(世態)도 다소 변하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부모님들의 역(逆)귀성이 늘고, 연휴의 호(好)기회를 맞아 국내외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사는 것은 나아졌는데 빈부격차(貧富隔差)나 소외(疏外)계층은 줄지 않고 있다. 정부의 복지예산은 늘고 있지만 빈민층과 노령(老齡)인구의 증가를 따라가기에는 역부족(力不足)인 듯하다.

가족끼리 모여 앉아 송편 빚고, 전(煎)부치며 한 동안 못 만났던 동서(同壻)간의 직장이야기에 호탕한 웃음소리도, 궁금했던 자식들 자랑으로 정신 없이 수다를 떨어대는 시집간 시누이, 올케사이의 정겨움도 여성들의 명절스트레스라는 볼멘 불평에 묻혀 가는 듯하다.

시대가 변하니 명절풍습도 변해야겠지만 좋은 풍습은 살려가고 나쁜 풍습은 만들어지지 않도록 사회적인 홍보(弘報)가 필요한 시점이다. 더욱이 늘어나는 소외계층에 대한 장기적인 국가정책도 필요하고, 당장은 가까운 이웃의 따듯한 배려가 우선 요구되는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거제에도 노인과 어린이 그리고 장애자들에 대한 복지(福祉) 시설이 많은 것으로 안다. 예년 같지 않게 명절 때나마 찾아오던 따듯한 정성들이 날이 갈수록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그러나 희망적 흐름도 강하다. 우리 학교에 3년 전에 새로 만든 사회복지과와 그 후 추가한 아동복지과에 아줌마 학생들이 넘쳐나는 것을 보면 미래에는 밝아질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올해에도 우리 학교에서는 아동/사회복지과 학생들이 매년 실시하는 「사랑의집, 어르신 초청, 추석 행복나누기」행사를 열었다. 학생들이 학업의 일환(一環)으로 실습하는 행사이니 모든 것이 풍족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평균 연세(年歲)가 80을 훨씬 넘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이 행사에 오신다고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머리 빗고 몸단장을 하였다고 한다. 3년 전에 처음 이 행사를 가졌을 때보다 더 연로(年老)해진 노인 분들의 외로움이 늘어만 가는 듯했다. 사물놀이를 들으며 즐거워하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보며 만감(萬感)이 교차함을 느꼈다.

특히, 앞줄 끄트머리 의자에 앉았던 90살도 넘었을 할머니 한 분이 옆을 지나가는 그 동안 행사를 죽 치러왔던 한 여선생님의 손을 붙들고 말없이 한참을 놓아주지 않던 모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한가위를 맞아 앞으로는 더 많은 소외(疏外)된 노인들, 어린이들이 명절만이라도 외로움을 덜 느끼도록 많은 정성의 손길이 닿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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