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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정신과 공직자의 바로 서기
서 영 천

꼭 10년전 필자가 지방경찰청장의 수행비서로 근무하던 때 일이다. 새로 부임한 기관장들의 상견례 겸 조찬 모임이 시내 번화가 한 식당에서 있었다. 행사를 주관한 도청 간부직원들이 고급승용차를 타고 속속 도착하는 기관장들을 맞이하느라 부산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모임에 처음 참석하는 법원장이 행사시간이 넘어도 도착하지 않은 것이다. 간담회는 시작되었고 난감한 주최측에서 법원 당직실에 아무리 연락을 해도 관사에서 벌써 출발했다는 대답뿐이었다.

한 20분쯤 지났을 때 자그마한 체구의 검은 뿔테 안경을 낀 50대 중반의 남자가 두리번거리며 행사장 부근으로 와 조찬 장소를 물었다. 바지 가랑이는 짧아 촌스러워 보였고 회색계통의 양복은 남루해(?) 보였지만 단정한 기풍은 살아 있었다. 언뜻 보아 그가 무슨 목적으로 왔는지 알 길이 없었다. 다른 수행원들 역시 별로 관심 없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미안합니다. 법원장인데요. 시내 지리가 낯설어 좀 늦었습니다. 차 세울 장소가 없어 이리 저리 헤매다가 남의 가게 앞에 열쇠를 꽂아두고 왔습니다. 차 좀 바로 세워주세요』라고 하였다.

약간 거만스럽던 영접 직원들이 크게 당황한 것은 물론이다. 그 와중에 마침 식당 입구 가까이 서 있던 필자가 그를 방으로 안내했다. 그리고 다시 나와 벗어놓은 신발을 정리하려는 순간 너무 놀라고 말았다. 몇년을 신었는지 구두 안창은 곳곳이 헤져 있었고 뒷굽은 거의 다 닳았으며 가죽은 윤기를 잃어 볼품이 없었다. 필자는 그때까지 그런 구두를 신고 다니는 공무원을 한번도 본적이 없었다. 그 구두의 주인공이 바로 「청빈 법관」의 대명사 「딸깍발이」 조무제(趙武濟)였다.

1993년 첫 공직자 재산공개때 비록 사법부내에서 최고 가난뱅이였지만 틈틈이 모은 재판수당을 털어 어려운 직원을 돕거나 전별금을 도서구입비로 선뜻 내놓는 넉넉함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재판에서는 합리적인 판결로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었다. 지방법원장으로 부임하자마자 부속실 직원을 원래 부서로 복귀시키고 관용차는 업무시간에만 이용할 뿐 중고 소형승용차를 손수 몰거나 버스로 출퇴근하였다. 이런 기관장에 대한 직원들의 존경과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 후로 도단위 기관 행사나 수행원들의 사적 모임을 통하여 그분의 크고 작은 청빈함과 공직자적 자세를 직접 보고 들으며 몇 번을 더 감복한바 있다.

재작년 삼복(三伏)이 지날 무렵 「딸깍발이(가난한 선비를 농으로 부르는 말)」 영감이 34년간 법관생활을 마감한다는 화제 기사를 접하고 우연치 않았던 인연을 추억해 낼 수 있었다. 쟁쟁한 로펌의 고문직 제의나 변호사 개업도 하지 않고 모교에서 오로지 후학 양성의 길을 택한 마지막 모습에서도 공직자가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지 본받고 새겨야할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요즈음은 공직자들의 처신과 언행이 국민을 피곤하고 짜증나게 한다. 지적(知的) 오만과 아집에 사로잡혀 독선(獨善)의 극치를 보이다가 마침내 초라한 모습으로 공직을 떠난 사람이나, 연일 선거판을 휘젓고 다니면서 공약(空約)만 쏟아놓는 정치인인지 공무원인지 도무지 헷갈리는 사람, 국민적 공분을 불러온 짓거리를 하고도 마냥 버티기로 일관하는 국회의원도 민초들에게는 모두 같은 존재다. 일상에 지친 국민들에게 희망은 커녕 실망과 스트레스만 안겨주니 공복(公僕)이 아니라 고약한 상전(上典)인 셈이다.

선출직인 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주민들로부터 지역살림을 일시 꾸리도록 위탁받은 관리자일 뿐이다. 제대로 된 공무원이라면 늘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지역주민을 편안히 모실 고민부터 해야 한다. 선거를 목전에 둔 지방관가(官街)의 복지부동을 여기 저기서 걱정하고 있다. 현안 업무는 산적한데 공무원들이 보이지 않는다고 탄식한다. 답답해서 하소연해도 들려오는 대답은 한결같이 『선거가 끝나봐야』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자기네들끼리 서로 물고 뜯는 모양새가 정말 가관(可觀)이다. 지역 주민이나 다른 경쟁자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공천 따기」에 목숨 건듯 하다.

정치제도를 탓하기에 앞서 「딸깍발이」는 커녕, 썩어빠진 정신으로 공직에 나가려는 자나, 그들에게 빌붙어 줄을 서는 공무원만 보이니 한숨이 절로 날수 밖에. 이래 가지고 집안 꼴이 제대로 되겠는가. 겨우 있는 살림 거덜내기 전에 두눈 부릅뜨고 이번에는 정말 잘 뽑아야 한다. 다산은 목민심서를 통하여 『무릇 공직자는 공사(公私)에 여가가 있거든 반드시 정신을 모으고 생각을 안정시켜 백성을 편안히 할 방책을 헤아려 지성으로 잘 되기를 강구해야 한다』고 훈계하였다. 지금 공무원들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줄서기가 아니라 「바로서기」임을 명심해야 한다. 공직자의 영원한 상전은 국민뿐이다.

/거제경찰서 부청문감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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