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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에 대한 단상(斷想)

김 한 주

바야흐로 봄이다. 눈가는 곳마다 이름모를 들꽃, 들풀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어느 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고, 그 자태가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네 인간사와 다르지 않다. 꽃에는 꽃 마다 꽃말이란 게 있다.

예컨대, 개나리는 「희망」, 국화는 「청순」, 접시꽃은 「풍요」를 뜻한다고 한다. 장미는 「아름다움」을 상징하나 그 색깔마다 뜻이 다르고 가시(엄격)나 잎사귀(바램)는 그 고유의 뜻이 따로 있다.

누구나 청년시절에 꽃 편지지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하면서 그 마음을 담아주는 꽃과 꽃말을 함께 보낸 기억이 있으리라.

꽃말은 그 꽃의 특징이나 색깔, 향기, 모양에 따라 생겨난 것이라 생각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로부터 꽃에 대한 전설이나 신화는 있어왔고 문학작품도 한 몫을 했을 것이다. 꽃말의 대부분은 서양의 중세시대 기사들이 사랑하는 여인에게 꽃을 보내면서 그 감정을 함께 보내는 풍속이나 종교적인 상징으로부터 생겨났다고 한다.

대체로 서양에서 그 뜻이 유래되긴 했지만 지역이나 나라에 따라서 그 뜻이 다른 경우도 많다. 꽃의 색깔을 예로들면 서양은 노란색꽃을 대체로 질병, 죽음, 퇴폐등 부정적으로 보는 반면, 중국에서는 귀중한 색으로 숭배하고, 일본에서도 황금색의 복수초가 장수와 행복을 뜻한다고 한다.

빨강색은 중국이나 예전의 우리나라에서는 기쁨의 색깔이었다.(남북분단 무렵부터인가는 모르겠으나 우리나라에서 빨강색은 이데올르기의 희생양(!)이 된 색이 되었다. 물론 최근 월드컵축구 응원을 통해 어느정도 「복권(?)」되긴 했지만) 그러나, 인도에서는 빨강은 노여움을 뜻한다고 하니 꽃이나 그 꽃의 색깔은 그 나라와 민족의 문화와 정서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진달래를 좋아한다. 진달래의 꽃말은 「절제」라고 알려져 있다.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 어느 곳에나 봄이면 어김없이 붉게 피어나 산하를 물들인다.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않고 여느 관상식물처럼 꽃가게의 한 켠도 차지하지 못하는 처지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민족과 민중과 함께 고락을 함께해온 꽃이라 감히 말하고 싶다.

어린시절 친구들과 소에게 풀 먹이러 갈 때면 그 꽃잎은 배고픔을 달래 주었고, 때로는 어르신들의 술로 변신하는가 하면, 어머니가 만들어주는 화전(花煎)이 되어 온 식구들의 먹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어떤 작가는 진달래를 배고픔의 꽃이라 불렀던 모양이다.

그 생명력은 또 어떠한가? 낮은 야산은 물론이고 2000미터의 고산에서도, 절벽이나 바위위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운다. 그 뿐인가? 한방에서는 타박상이나 이질의 치료에도 사용한다고 하니, 이만하면 진달래를 우리민족과 민족성에 비유하더라도 넉넉히 그 자격이 있지 않을까?

소월의 시(詩)에서는 애잔함으로, 영화 「남부군」에서도 배고픔과 분단의 아픔으로 우리의 가슴에서 다시 피어난 꽃이 진달래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으나 진달래는 소위 「빨갱이」를 상징하는 꽃이 되기도 했다. 그 것은 아마도 북한의 국화(國花)가 진달래라고 잘못 알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북한의 국화는 목란이다. 또한 그 색깔이 붉어서 그런 「유아적 편견」을 받은 측면도 부정하기 어렵다. 이제 그러한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 당당히 우리 민족의 꽃으로 다시 자리매김 되길 바랄 뿐이다.

우리 거제에서는 얼마있지 않아 대금산에서 흐드러지게 만발한 진달래 와 함께 축제가 열린다. 축제를 맞아 진달래에 대한 독자들의 지난날 아련한 추억과 함께 진달래의 의미도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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