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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이 면장 집 셋째 아들’

유 진 오

S형!
지난 「3·1절 골프」 파문으로 물러난 이해찬 국무총리의 「낙마」는 노무현 정부에는 물론 일반 국민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케 합니다.
우선 이 전 총리는 건국이후 36명의 총리 가운데 둘째로 젊은 총리(2004년 6월 취임 시 52세, 김종필 11대 총리 취임 시 45세)였습니다.
5선 의원에 여당 정책위 의장, 1997년 김대중 후보와 2002년 노무현 후보의 대통령선거 기획을 담당해 두 차례 모두 성공, 정권을 창출한 일등공신이 였습니다.

그는 서울시 정무부시장과 교육부장관을 지낸 행정경험을 바탕으로 해묵은 갈등 과제를 해결하고 여당과의 정책 조율을 주도해 방폐장 부지 선정, 행정수도 건설과 176개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같은 굵직한 국정과제를 해결하는 수완을 발휘하면서 능력을 인정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에겐 실세총리, 책임총리란 말이 따라다녔고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질의하는 야당의원을 주눅 들게 만들 정도의 업무파악 능력으로 과거 「대독(代讀) 총리」와는 비교가 안 되는 실권을 구사했습니다.

특히 「분권형 책임 총리제」란 새로운 국정운영 시스템 덕분에 국무위원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는 등 이해찬 총리의 권한은 한층 강화되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나와 천생연분』이라고 말을 할 정도로 전폭적인 신임을 보내 그는 총리 재임 기간(20개월) 내내 「명실상부한 2인자」였습니다.

S형!
하지만 막강한 권력은 「독선과 오만」을 불렀습니다. 지나친 자신감과 견제 받지 않는 권력행사에, 거침없는 말투와 직설적 성격은 야당과의 잦은 마찰을 빚어 정국의 파란을 불렀습니다.
그는 막말을 자주하는 바람에 한나라당과는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고, 국회에선 야당 의원들에게 호통을 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는 취임 5개월 째이던 2004년 10월 한나라당을 「차떼기 당」이라고 해 국회를 2주 가량 공전시키기도 했고 지난해 10월에는 김수환(金壽煥)추기경이 국가 정체성을 걱정하자 『종교 지도자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 의도를 모르겠다』고 비난할 정도로 안하무인(?)으로 국민들에게 비쳐졌습니다.

그의 처신에 대해 비판이 일자 『일과 사생활은 별개』라는 논리로 대응해 왔으며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라고 하지만 수신은 수신이고 평천하는 평천하지 그걸 왜 연관시키느냐』고 따지곤 했습니다.

철도 파업이 시작되던 날, 3·1절에 부산에 내려가 평소 친분이 있는 상공인들과 골프를 한 것이 그가 물러나게 된 직접적인 배경입니다. 그는 『파업 대책을 세워 놓았다』고 비판 여론을 비켜섰고 그의 측근들은 『총리는 골프도 못하느냐』고 억울해 했습니다.

S형!
문제는 총리는 일만 잘하는 것으로 직분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평소 처신(處身)에서 「근신하는 덕목」을 갖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3·1절은 휴일이라고는 하나 물류대란을 예고하는 철도파업이 시작되는 날이었고 일반 시민들도 옷깃을 여미는 날이어서 고위 공직자로는 골프가 부적절한 시점이었습니다.

군부대에서 오발사고로 희생된 수십 명의 빈소를 조문하기 직전에도, 강원도에 대형 산불이 났을 때도, 집중 호우로 남부지방 수많은 주민이 눈물을 흘릴 때도 이 전 총리는 골프장에 있었습니다.
그는 골프 말썽으로 『근신하겠다』는 약속까지 했으면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이 전 총리는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브로커 윤상림씨와 골프 회동한 일로 로비의혹까지 제기한 야당의원에게 『놀아나지 않았다』고 큰소리 친 바로 다음날 3·1절에 「부적절한 상대」와의 골프를 한 것은 「오만의 극치」라고 비난 받았습니다.
게다가 연일 의혹이 제기되자 「부인(否認)과 번복」을 반복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잃었고 국민들의 마음에서 「이해찬 총리」가 점점 지워졌습니다.

S형!
다음 총리는 「이해찬의 함정」에서 벗어난 사람이기를 기대합니다.
이 총리의 「낙마」는 재(才)의 문제가 아니라 덕(德)의 문제였습니다. 총리가 국회에서 야당의원들에 언성을 높이고 심지어 훈계까지 한 일이 한두 차례가 아니어서 장관들도 덩달아 흉내(?)를 냈습니다. 「이해찬 이후 총리」는 덕이 무엇인지를 일깨워 줄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3·1절 골프 파동」이후 「열두 편의 가슴 시린 편지」라는 책에 나오는 「청양 이 면장 집 셋째 아들」얘기가 화제입니다.
1991년 「샘이 깊은 물」에 이 전 총리가 쓴 그의 부친 얘기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주오(中央)대 법정학부를 나온 이 전 총리의 부친은 6.25전쟁이 나기까지 고향인 충남 청양에서 면장을 지냈답니다.
당시 도쿄(東京)에 유학한 사람들은 대개가 서울에서 관직을 하나씩 차지했지만 이 전 총리의 부친은 『사람이 없다』는 고향사람들을 뿌리치지 못하고 시골 면장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면장은 신망이 두터워 6.25때 쳐들어온 인민군에 당하는 것을 면민들이 나서 막아 줬다고 합니다.
「이해찬에 관한 추억」이란 글을 쓴 이는 그가 이젠 「청양 이 면장 집 셋째 아들」로 돌아가 봤으면 한다고 끝 맺었습니다.

/본지 발행인

새거제신문  skj6336@kornet.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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