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0호

우리는 흔히 남의 성씨(姓氏)를 가지고 농담거리로 삼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글자의 생긴 모양에 따라 윤(尹)씨를 소축(丑)에 꼬리가 붙었다고 하여 꼬리곰탕이라고 하며 서(徐)는 쥐서(鼠)자와 음이 같다고 하여 쥐선생, 쥐생원이라고 놀리기도 한다. 또는 마(馬)씨도 말의 자손이라 하고 정(鄭)씨는 글자의 모양이 당나귀와 닮았다고 하여 "어이! 정당나귀"라고 부르는가 하면 말과 당나귀가 교미를 해서 낳은 것이 노새인데 이 노새는 생식력이 없는 짐승이다. 그래서 마씨와 정씨는 혼인을 기피한다는 말까지 나올 지경이니 실로 농담치고는 지나친 경우라 하겠다. 그런데 옛날 어느 시골 동네에 정(鄭)씨 성을 가진 노인이 살았는데 앞집에 사는 명(明)씨 노인이 항상 당나귀라 부르며 놀려대니 아무리 장난이라고 하더라도 한 두 번이면 참고 견디겠으나 번번이 당하기만 하니 화도 낼 수 없으니 속으로만 끙끙 앓고 있었다. 오늘도 기분좋게 기상하여 마을을 산책하는데 이 명영감이 뒷통수에 대고 "어이! 정당나귀 요즘 잘 지내" 하고 인사를 건네는데 아침부터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며느리가 정성들어 지어올린 아침상도 제대로 받지않고 냉수만 몇사발 들이키고 분을 삭이고 있으려니 마침 젊은 비구승이 탁발을 나와 목탁을 치며 염불을 하고 있었다. 며느리를 시켜 공양미(供養米)를 드리게 하고 그 스님에게 정노인은 하소연을 하였다. "스님 저 앞집에 명영감이란 늙은이가 매일 아침 나만보면 당나귀라고 부르며 내 속을 뒤집는데 저놈의 영감에게 복수할 좋은 계략은 없습니까?" 이 말을 들은 스님은 빙그레 웃으며 "소승에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영감님께서는 지금 즉시 명영감과 같이 계시다가 소승이 탁발하려 그 집에 들어가거든 무조건 소승의 성씨가 무엇인지 그것만 물으시면 될것입니다" 이렇게 약속을 한 정영감은 평상시처럼 명영감 집에 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노라니 그 스님이 탁발하러 들어왔다. 시주를 받아 돌아서 나가려는 스님을 불러 세워놓고 정영감이 물었다. "스님은 속가(俗家)의 성씨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러자 이 스님은 한숨을 크게 쉬더니 "소승의 아픈곳을 물으시는군요. 소승은 사바법계(娑婆法界)에 박복(薄福)하게 태어났습니다. 소승의 속가의 어미는 어느절 밑에서 주막집을 하는 과수댁이었는데 하루 저녁에도 일정사(日精寺) 중놈과 관계를 맺고 다음날 저녁에는 월정사(月精寺) 중놈과 관계를 맺어 저를 낳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승은 태어날 때부터 아비가 확실하지 않았지요. 할 수 없이 그 동네 양반이 이 아이의 아비도 두 중놈 가운데 하나일 것이니 일(日)과 월(月)을 합하여 명(明)가라고 하라고 하여 소승의 성은 명가가 되었습니다" 하고 그 스님은 총총히 사라지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들은 정노인은 생기가 돋아났고 그동안 정노인을 괴롭히는 명노인은 그만 기가 꺾이고 다시는 정노인을 당나귀라고 부르지 않았다 한다. (※여기에 인용된 성씨는 우리 사회에서 심심풀이로 놀 때 하는 농담거리이니 해당 성씨분들의 양해를 바란다.) 박명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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